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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숙 Sep 28. 2024

시작이 아름다운 이유

 

  일시 멈춤. 수영하다 벌떡 일어났다. 너무 아름답고 황홀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내가 가는 수영장은 동쪽 전체가 창이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주로 새벽 미명에 수영을 간다. 여름은 괜찮았는데 요즘은 해가 늦게 뜨니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출발한다. 내가 시골에 살다보니 수영장이 있는 곳까지 운전해서도 15분을 가야 한다. 차가 없을 때는 버스를 타고 30분을 갔다. 오빠가 차를 바꾸며 쓰던 차를 나에게 줘서 요즘은 편리하게 살고 있다.

  오늘은 수영하다 떠오르는 해와 그 풍경을 보고 깜짝 놀라 수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붉은 태양이 떠오르며 그 주위를 비추는데 그 아름다움은 형언하기 어려웠다. 하늘에는 가을이 몰고 왔을 새하얀 뭉게구름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아름답게 채색돼 있었다. 더하여, 가까이에 있는 소나무들까지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하였다. 붉은 일출은 그 주위를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이며 아름답게 수놓았다. 한 폭의 수채화였다.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수영하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벽에 바싹 붙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황홀 지경이다. 

  여명이 아름다운 것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기 때문이 아닐는지. 모든 것의 시작은 아름답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 아기의 모든 모습이 신비롭다. 울어도 예쁘고, 웃어도 천사 같고, 떼를 써도 귀엽다. 모든 아기가 사랑스럽고 예쁘다. 짐승의 아기들도 마찬가지다. 사나운 호랑이나 사자의 새끼도 막 태어난 아기 사자와 호랑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워 감탄한다. 그 모든 이유가 그들의 삶의 출발점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배우는 것이 때로는 너무 멀고 막막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시작이 미래를 기대하기에 즐겁다. 서예를 배우는 것도 그렇다. 그곳에 가면 20년을 넘게 배워 온 사람들도 몇 있다. 그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지금 내가 배워서 어느 세월에 20년을 채울 것이며, 그들처럼 쓸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도 삐뚤빼뚤 써 내려가며 나는 즐겁다. 20년을 넘게 배워온 그 사람들과 비교하면 까마득할 수도 있지만, 시작이 아름답기에 나는 행복하다.

  어느 분이 ‘몸치가 댄스를 배운다’라는 내 글을 읽고 “몸치가 배우는 삶, 그래서 아름답습니다”라고 했다. 참 좋은 말이 아닌가. 배워서 무얼 하겠다는 게 아니다. 배운다는 것, 시작했다는 것, 무언가 나에게서 새로운 것이 시작되었다는 그 사실이 즐겁고, 아름답고, 행복하다.

  시작이 아름다운 이유는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소망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하며 기대하기 때문이다. 몸치도 댄스 스텝을 밟기 시작하고, 악필도 서예를 배우겠다고 붓을 들고, 색에 대하여 문외한이라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색을 입히며, 막연하나마 내일이면 조금 더 나아진 나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오늘의 이 여명은 한낮이 얼마나 화창할 것이며, 힘차고 활기찰 것임을 알려주는 빛이다. 희미한 나의 오늘이 시작되었기에 더 밝은 내일이 있으리라 희망한다. 작은 오늘이 지금보다 좀 더 큰 내일을 가져올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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