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것이 많은 한국이다. 유난히도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한국에 사는 즐거움이 솔솔하다. 복지관에 가면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수채화도 있고, 서예도 있고, 요즘 유행하는 켈리그라피도 배울 수 있다. 물론 그 외에 더 많은, 다양한 과목들이 있다.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싶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조금의 돈만 내면 한 학기를 즐겁게 공부할 수 있어서 좋다.
주로 노인들을 위한 배움이니 건강을 위해서도 많은 프로그램이 있다. 운동하려고 댄스 클래스를 신청하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어느 의사의 말이, 노인들의 운동에는 댄스가 좋단다. 댄스는 일단 너무 무리하지 않으면서 전신운동이 되는 거란다. 거기다 순서를 익혀야 하는 것이 두뇌 활동에도 좋기에 댄스가 여러모로 노인건강에 좋단다. 인기 있는 과목은 신청자가 많아서 추첨해서 들어간다. 라인댄스를 신청했는데 내 대기 번호(waiting number)가 38번이란다. 내가 제일 마지막이냐고 물었더니 대기자가 93명이라 했다. 일찍 포기하고, 다른 댄스반을 알아봤다. 댄스스포츠라는 과목이 있어서 신청했는데 의외로 신청자가 많지 않아 정원미달이다. 쉽게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 신청할 무렵, 포항에 있는 친구와 통화하는 과정에 내가 댄스를 신청하려 한다고 하니 친구의 첫 반응이 “너 몸치인데 할 수 있겠니?”였다. 20~30대 중반까지 가까이 지낸 친구다. 포항중앙교회서 함께 지휘하던 사이다. 만 명 교회가 되다 보니 찬양대도 많고 지휘자도 많았다. 그 친구와 나도 각자 맡은 곳에서 지휘를 하고 있었고, 또 둘 다 미혼이니 특히 친해지는 기회가 많았던 것 같다. 서로 음악을 하니 대화도 통하고, 각자 지휘하면서 서로의 찬양대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하던 그런 사이였다. 속 썩이는 대원들 씹기도 하고, 반주자가 어떠니 불평도 했다. 온 교회가 우리의 사이를 다 알고 있어서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둘을 마스코트처럼 앞에 나란히 세워 이러저러한 일을 진행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옛날 일을 기억하다니. 어떻게 그 옛날 일을 기억하지? 내가 몸치인 것을 잊지 않았지? 놀랍다. 그 친구는 처녀 때 YMCA에서 에어로빅 강사를 할 만큼 댄스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다.
친구의 “몸치”라는 소리를 듣고도 나는 결코 기죽지 않고 당당했다. 뭐, 내가 몸치인 건 인정하지만 배우는 것에는 자신이 있으니 잘 배울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어디까지나 운동인 만큼, 예쁘게 잘하지는 못해도 가르치는 건 다 따라 할 것임을 확신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순서가 잘 기억되지 않는다. 몸이 둔해서 뚜벅뚜벅 걷는다고 선생님뿐 아니라 함께 배우는 ‘할매’학생들까지 온통 야단이다. 일단, 춤인데 사뿐사뿐 걸어야지 그렇게 경보하듯 씩씩하게 걸으면 어떻게 하냐는 거다. 신성한(?) 댄스장을 내가 경보장으로 우중충하게 만들었다는 듯 원성이 높다. 그러거나 말거나 순서라도 잘 익히면 문제가 없을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금방 배운 것을 모르겠다. 선생님이 음악을 틀면서 “자, 지금 배운 것 음악에 맞춰 한번 해보실께요”라고 하면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뭘 배웠지? 어떻게 했지? 다른 사람들은 그럭저럭 따라가는데 난 혼자서 헤매고 있다. 오른발이 나가야 하는데 왼발이 나가다가 읍스~, 급히 발을 바꾸면 한 박자 늦어버린다. 모두들 오른쪽으로 도는 혼자서 왼쪽으로 돌다가 옆 사람 얼굴과 마주치면 쑥스러운 미소로 민망함을 대신한다. 방금 배웠는데도 도대체 기억이 없다.
정말이지 배우는 건 늘 자신 있었다. 무엇을 배워도 빨리 배운다는 말을 들었고, 잘 익힌다고 칭찬을 들었기에 항상 마음에는 자신만만했다. ‘배움이야 뭐~’라고.
그런데 그때부터였다. 산타모니카 대학에서 영어를 배울 때 내가 늘 남들보다 뒤쳐졌다. ‘내가 왜 이래?’라고 답답하면서 그래도 위로받기는, 거기는 주로 어린 학생들이다. 어리게는 18세부터 좀 나이가 들어도 주로 20대 중,후반이다. 그런 어린학생들과 60이 훌쩍 넘은 내가 함께 어울려 공부하니 언제나 뒤지고 따라가기 힘들어 쩔쩔맸다. 교수님이 칠판에 문제를 낼 때 나는 아직 문제를 체 절반도 읽지 못했는데 학생들은 벌써 다 읽고 생각한 후 답을 말하곤 했다. 할매의 자존심을 그렇게 무너뜨리다니, 사가지 없는 어린 것들 같으니라고, 쯧.
하긴 요즘은 한글을 읽을 때도 예전 같지 않다. 전에는 웬만한 문장은 그냥 한눈에 들어왔다. 일일이 읽지 않고 그냥 사진을 찍듯, 스캔하듯, 바로 이해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천천히 한. 자. 한. 자. 읽어야 이해가 된다. 스캔해서는 그 내용이 절대로 머리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글을 읽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는 나보다 젊은 사람도 물론 있지만, 그래도 고만고만하니, 내가 뭐 별로 뒤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도 못 따라가다니! 내가 늙었으면 남들도 늙어야 하고, 내 뇌가 쇠퇴하였으면 남들도 그래야 하는 것이 정상인 것을, 왜 나만 이렇게 늙어가고 남들은 아직도 잘 따라가는지 그게 궁금하며 속상하기도 하다.
외모만 늙어도 한심하기 그지없거늘, 뇌까지, 나의 기능까지 늙으니 정말이지 답답하다. 그냥 몸치에서 끝났으면 그나마 좋았으련만, 더하여, 없던 ‘뇌치’까지 갖게 되었다. 이제는 몸치를 넘어 뇌치까지 가고 있는 나 자신이 못내 서럽고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뭔가를 배우겠다고 복지관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