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을 아주 고상하게 생각하며 가슴에 따뜻하게 묻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미학’이 항상 ‘미학’이 아님을 요즈음 절실히 느낀다. 노을을 바라보듯 아릿한 마음이라 하더라도 기다림은 역시 지루하고 답답함이 있다. 봄 아지랑이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기다림도, 따뜻한 봄볕에 노골 노골 마음이 녹는 듯하다가도 한순간 갑자기 오지 않는 안타까움에 우울해진다. 기다림이 지쳐가는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우체통이 빨간색이다. 빨간색의 의미는 눈에 잘 뜨이라는 의미와 함께 신속함과 긴급 상황을 나타내기 때문에 우체국의 빠른 서비스를 나타내는 의미로 선택한 색깔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는 우체통이 파란색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편지들이 늘 빨리 배달이 되더니 미국에서는 이렇게 더딘 것인가? 9년이 넘는 세월을 이렇게도 간절히 기다리건만 도대체가 소식이 없음은 어찌 된 일일까.
요즘은 우체국을 이용한 편지보다는 이메일이 주를 이루고 있어 거의 대부분의 편지들이 이메일로 오가지만 난 여전히 우편배달부가 배달해 주는 한 통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이메일을 받을 때도 즐거움이 있기는 하지만, 우편배달부가 배달해 준 편지를 들고 그 편지의 봉투를 조심스럽게 가위로 잘라서 펼쳐보는 느낌도 흥분과 긴장이 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우리 아파트에는 오후에 우편배달부가 다녀간다. 저녁이 되면 변함없이 메일박스로 달려가 열쇠 든 손의 떨림을 느끼며 가슴을 진정시키고, 긴 한숨을 쉬고 난 다음 열어본다. 그러나 때로는 텅 빈, 때로는 광고지들로만 가득한 메일박스만 발견할 뿐이다.
세월이 이렇게도 많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제 강산이 모두 변할 시간이 되었다. 강물도 말라서 더 이상 흐르지 못할 것이다. 산에는 진달래가 폈다 지고, 파릇한 새순에서 짙은 녹음으로 변했다가, 곱기는 하지만 한색으로는 너무 단조로워 가지각색의 단풍으로 온 산을 치장하기도 한다. 종국에는 그 또한 한 줌의 흙 되어 땅에 묻히곤 했다. 눈꽃이 피었다가 녹고, 다시 새순이 돋고. 그러기를 아홉 번을 했으니 이제는 산도 그때 산이 아니고 강도 그때 강이 아니다. 내가 처음 이 편지를 기다리기 시작할 그때의 모습들이 아니다.
모든 것이 변하였건만 내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여전히 그 한 통의 메일을 기다리며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혹시 나를 잊은 것은 아닐까? 기다리다 지칠 때는 그러한 걱정이 사실은 가장 많이 든다. 잊지 않고 기억만 하고 있다면 그래도 더 많은 세월이라 하더라도 참아 기다릴 것이다. 가뭇하게 잊히지 않음은 그래도 행복이니까. 그러나 만에 하나 완전히 잊힌 여인이 되고 말았다면 그보다 더한 슬픔이 어디에 있을까. ‘버림받은 여자는 불쌍한 여자, 그러나 잊힌 여자는 더욱 불쌍한 여자’라는데, 혹시 나는 이미 잊힌 여자가 된 것은 아닐까. 가슴이 조림도 그 때문이고, 두려움도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가능한 한 빨리 받고 싶은 마음이야 더 할 수 없이 많다. 그래도 잊지만 않았다면 시간이 늦어져도, 좀 지루하기는 하지만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언젠가 전해질 그 한 장의 편지가 나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리라는 기대로 아침의 햇살에도, 저녁의 노을에도 함께 빨갛게 물들이며 내 볼을 적실 것이다.
물론 가끔은 내가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너무 자주 보내면 귀찮아할까 봐, 짜증만 더할까 염려하여 날마다라도 보내고 싶은 내 속내를 감추고 가끔, 아주 가끔, 나를 잊을 만할 때가 되면 잊지 말라고 보낸다.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고, 당신의 그 편지를 여전히 기다리며 건재하다고, 가능하다면 당신의 소식이 빨리 왔으면 내가 행복할 것이라고 보낸다. 벌써 여러 통을 그렇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식은 깜깜이고 내 애간장만 녹인다. 하기야 답답한 것은 나지, 그야 무엇이 급할까. 난 언제나 짝사랑인 것을.
오늘도 나는 석양을 등 뒤로 하고 메일박스로 가서 언제나 그랬듯이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돌린다. 혹시 오늘쯤이면 9년을 석 사흘로 여기고 기다려 온 그 편지가 다소곳이 메일박스에 앉았다 가늘게 떨리는 내 손끝에 닿을까 하여 가만히 더듬는다. 기나긴 세월을 묵묵히, 한결같이 기다려 온 한 통의 편지.
많은 사람이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기나긴 편지를 쓴다. 그러나 언제나 핵심은 오직 한마디다. 그 한마디를 위하여 많은 미사여구가 필요한 것이며 수식어들로 나열하여 길게 길게 만들어지는 것이 말이며 편지이다. ‘사랑’이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하여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단어들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본론을 말하면 단 한 마디 ‘사랑’인데.
내가 기다리는 것은 기나긴 미사여구를 다 접어두고, 세상에 있는 모든 수식어는 다 뒤로하고 요점만 듣고 싶다. 오직 한마디.
[당신이 신청한 영주권이 승인되었습니다]라는 이민국에서 보낸 그 편지 한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