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집게 빼고 다 있습니다.’ 라는 어느 마켓의 광고 문안을 처음 접한 것은 미국에 와서 금방이었다. 그 말은 연탄집게 외에는 한국에 있는 것이 모두 다 있다는 의미였다. 그 문안이 너무 재미있어 한국의 친구에게 전화하면서 이야기 했다.
친구는 “요즘은 한국에도 연탄집게 없어”라며 나만큼이나 넘어가게 웃었다. 한국에도 연탄을 쓰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니 연탄집게도 당연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겠지.
그런데 오늘 신문에 보니 한국에서 연탄 쓰는 사람이 다시 늘어난다고 했다. 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해 기름을 쓰던 사람들이 연탄으로 많이 바꾸고 있다는 말이었다. 연탄을 쓰면 기름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가격으로도 같은 화력을 얻을 수 있다니. 이 어려운 시기에 가능하다면 연탄으로 난방을 하려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1988년에만 해도 연탄의 사용이 높았는데 1998년에는 거의 20분의 일로 사용이 내려갔단다. 그러다 올해 들어 다시 연탄 사용자가 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기사에는 ‘19공탄’의 추억을 말하면서 흙과 모래가 부족하던 70년대에는 연탄재가 동원되어 그것들을 대신하여 강을 메우는 일도 감당했다고 말했다. 그때의 연탄의 역할은 서민들만이 아니라 온 나라의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나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가 조금 큰 집을 지었는데, 터가 낮아서 흙으로 마당을 메워야 했다. 돈을 주고 흙을 사기는 우리형편이 어려웠다. 그런 연고로 연탄재가 나오면 버리지 않고 마당에다 깨서 발로 꼭꼭 밟았던 기억이 있다. 금방이라도 메워질 것 같았던 마당은 참 오래도 갔다. 아마 근 십 년이 지나서야 우리가 원하는 만큼 메워졌던 것 같다. 그 무렵으로서는 마당이 조금 큰 편이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연탄재를 버리는 곳이 따로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연탄재를 버리는 그 수고를 우리는 피할 수 있었다.
내 나이또래의 한국 사람은 연탄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 잠자다 말고 일어나서 연탄을 갈아야 하는 불편함. 서로 나가기 싫어 미루고 미루다 책임 있는 사람이 나가야 하는 일. 그래서 형제들끼리 순번을 정하여 돌아가며 담당하기도 했다. 깊은 잠에 빠졌다가도 일어나 추운 바깥공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연탄을 갈고 들어오면 옆에서 자는 사람도 함께 한기를 느껴야 했던 그 시절. 연탄을 갈 때가 되면 따뜻하던 방이 식기 시작하여 갈고 난 다음까지 한 시간이상은 추위에 오돌 오돌 떨다가 연탄이 화력이 붙고 나면 다시 따뜻해지는 방. 가끔은 너무 일어나기 싫어 깼으면서도 모른 체, 잠이 들어서 못 깨는 척 하며 그냥 자가다 새벽녘에 벌벌 떨며 몸을 움츠리고 선잠을 자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꺼진 연탄을 보고 엄청난 후회를 했던 시절.
그 무렵에 신문지상에는 하루가 멀다고 떠오르는 ‘연탄가스 중독사고’기사. 나 역시 연탄가스로 인해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엄마와 둘이서 함께 잠을 잤는데, 엄마는 괜찮은데 나만 심하게 중독되어 어지럽고 토하고 난리가 아니었다. 유일한 치료약이 동치미 국물이었던 시절. 유난히도 춥든 겨울,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동치미국물이 추위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도 시원함을 주든지. 막내딸의 고통을 보시고 그날 당장 방구들을 고친 우리 엄마. 참 아련한 기억들이다.
그 탓일까? 아직도 나는 가끔 한 밤중에 연탄 갈아야 하는 일을 꿈꾸기도 한다. 연탄을 갈려 나갔는데 불이 이미 꺼져있다. 아니면 갈려하는 연탄이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않아 그것을 부엌칼로 끙끙대며 뜯어내는 꿈을 꾸기도 한다. 어떤 때는 밑에 있는 연탄재가 부셔져버려 그 연탄재를 퍼내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는 꿈을 여전히 꾸고 있다. ‘기름보일러’라는 것이 들어오고 얼마나 편해졌는지. 밤에 자다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추운 밤공기에 오돌 오돌 떨지 않아도 되고, 불이 꺼져 떨고 있어야 하거나 후회하는 일도 없어졌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신문을 읽다가 가뭇한 추억에 “아, 연탄이 다시 돌아온단다.”라며 혼자 말처럼 중얼거리는데 딸이 곁에서 “연탄이 뭐에요?”라고 물었다. 아, 맞다, 딸은 연탄을 모르겠구나. “응~ 연탄이란……. 이렇게 동그랗고, 까맣고, 가운데는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연료로 쓰였지. 방을 따뜻하게도 했고, 밥을 지을 때도 연탄을 썼고 그랬다.”라며 나의 온 기억과 지식을 총 동원하여 딸에게 연탄을 설명하며 딸을 엄마의 그 추억 속으로 끌어드리려 했다. 그러나 딸의 반응은 “그랬군요.”라며 간단한 한 마디로 말을 끊었다. 내 말을 다 듣지도 않은 것 같고, 들을 필요도 안 느꼈나보다.
내 설명이나 표현력이 너무 부족했나? 약간은 서운한 마음에 “얘, 엄마가 어렸을 때 연탄은 평범한 한국 사람들에게 아주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온 것이란다.”라고 한껏 강조했다.
“아~, 네” 근성으로 대답하는 딸의 귀에는 이미 아이팟이 꽂혀 있었다. 어떤 음악이 흐르는지 딸은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연탄과는 전혀 관계없는 음악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