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화초 세 개가 늘 내 거실에 있다. 구 년 전에 구입한 것이 지금까지 내 곁에 함께 있다. 처음 미국에 와서 무엇인가 필요할 때, 언제나 가는 곳이 ‘99센트 스토아’였다. 일 달러로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먹을 것을 비롯하여 삶에 필요한 것들. 특히 살림에 필요한 것을 웬만하면 다 구비되어 있으니 편안히 가서 별로 큰돈을 들이지 않고 이것저것 구입해서 오곤 했다. 어려울 때라 그 조차도 마음 놓고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하는 시기였지만, 가끔 눈 딱 감고 꼭 필요치 않은 것도 사오기도 했다.
한번은 물건을 가러 갔다가 조그마한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화초가 나에게 오면 이상하리만큼 잘 자랐다. 내가 특별히 해주는 것도 없는데도. 그저 때맞춰 물이나 주는 것이 전부인데 남의 집에서 시들 새들 쓰러져 가던 화초들이 나에게만 오면 무럭무럭 자라 아름답게 꽃도 피우고 살 곳을 만난 듯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는 화초들이 고맙고, 저 애들은 내가 참 좋은가보다 착각 속에서 혼자 행복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여기저기서 화초를 구입해서 크지도 않은 베란다며 거실 등 집 안에 두고 지내왔다. 문득 그 생각에 일 달러짜리 화초가 잘 살지 의심이 들면서도 큰맘 먹고 세 개 사다놓은 것이 아직까지 변치 않고 내 거실에 자리하고 있다.
잘 관리하지 못해 가끔 시들시들 할 때까지 물을 주지 못했다가 쓰러지기 직전에야 엄청 미안한 마음으로 급하게 물을 주기도 했다. 그러한 나를 그 화초들은 잘도 용서했다. 때때로 천덕꾸러기처럼 관리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긴 세월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켜준 화초가 그저 고맙다. 아름답지도 않고, 겨우 ‘일 달러짜리’라 그리 보잘것없기에, 어떤 때는 죽으면 아무런 양신의 가책 없이 버리리라 생각다보니 화초는 온전한 관리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 긴 세월에도 많이 자라지 않아 아직도 처음 가지고 온 그 작은 화분에 그냥 담겨있다. 이제 보니 화초들의 몸집이 커졌다. 아무리 관리를 잘 하지 못했어도 구 년의 세월은 참 길긴 긴가보다 저렇게 자란 것을 보면. 이제는 화초가 자라 화분이 너무 작아 터질 듯하다.
문득 미국 와서 바로 나와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변치 않고 내 곁에서 나를 지켜보아준 그 화초가 가슴 찡하게 파고든다. 나의 모든 아픔도, 서러움도, 이민생활의 그 모든 희로애락을 다 결에서 보아왔고, 아니 함께 겪은 그 화초가 이제는 내 가족이다.
네 번의 이사를 함께 했다. 내가 이민의 온갖 스트레스 쌓여 죄 없는 아이에게 괜히 소리 지를 때, 아이가 가엾어 나에게 눈을 흘겼다. 영어 몇 마디 못했다고 무시당하고 속상해 들어와 혼자서 울먹이며 영어책 꺼내놓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영어 들여다보고 있을 때 말없이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마음아파 한 화초. 딸 다음가는 나의 가족이다. 일터에서 당한 억울함을 감당하기 힘들어 막상 당사자에게는 표정한번 굳히지 못하고 집에 와 혼자 욕을 하며 소리 지를 때도 함께 아파하며 곁에서 한숨처럼 조용히 산소만 계속 뿜어대 온 내 화초들. 내 눈물의 양도 다 알고 있고, 별것 아닌 작은 것에 터져 나온 내 웃음도 보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어떤 종류의 이야기를 하던 묵묵히 듣고 밝은 미소로 응대한다. 남을 욕할 때도, 화를 낼 때도, 슬퍼하며 울적한 마음을 그냥 열어 보일 때도 가만히 곁에서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준다. 한번도 나를 나무란 적이 없다. 욕을 한다고 교양 없다 말하지 않는다. 눈물을 보인다고 헤프다 말하지 않는다. 별것 아닌 일에 기뻐 뛴다고 실없다 나무라지 않는다. 얼마나 고마운 화초들인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을 다 알고 있는 대나무들처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내 화초들. 그러나 바람이 불어도, 아무리 세게 바람이 불어와도 착한 내 화초들은 그 모든 것들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꼭꼭 숨기고 자기들 가슴에 품고 있다. 결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기들만 알고 쉬쉬하고 지내온 모습도 참 고맙다.
그런 화초들에게 내가 선물을 하고 싶다. 화원에 가서 화분을 큰 것으로 갈아주고, 새 흙을 넣어주고, 아름답게 새 단장 해주리라. 새 봄을 맞은 선물로. 화초를 샀을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들여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 남들이 보면 값비싼 좋은 화초가 아니고 그냥 잎이 푸른, 길거리 어디에나 있을법한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내가 그들의 귀함을 알고 얼마나 소중한가를 인정하니 내가 지켜 주리라. 보이는 가치만이 전부는 아니니까. 남들이 보지 못하는 숨은 가치가 때로는 더 큰 것이기에. 다른 이의 눈에 우습게 보이는 화초들을 아름다운 화분으로 갈아주고, 잘 자라도록 거름도 주고, 성장하여 아름다운 화초가 되록 내가 도와주리라.
어려울 때 같이 아파하고, 울어야 할 때 함께 운 그 세월을 내가 인정하고, 그 함께함을 고맙게 여겨 기억하리라.
함께 가자. 먼 훗날, 또 다른 9년의 세월이 흐른 후, 멋지게 변해있을 너의 모습을 기대하며 나는 너를 다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