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겨울이 싫다. 초겨울의 초저녁은 더 싫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자그마한 언덕 위에 있었다. 어둑어둑 어두움이 몰려올 땐 왜 그렇게도 외롭던지. 그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모든 형제가 대도시로 나가고 막내인 나는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가고 있었다. 장사하시는 어머니가 돌아오시기 전, 혼자서 엄마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우울하고 쓸쓸했던지 모른다.
우리 집은 서향집이었다. 혼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엄마가 올 시간을 점찍으며 기다릴 적엔 번져가는 노을 따라 외로움이 온몸으로 퍼져갔다.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와야만 불을 키든 그 시절. 막 해가 지고, 전등을 켜기 직전의 그 시간. 나를 압박해 오는 어두움만큼이나 내 마음을 덮치는 외로움, 너무 싫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해지기 직전에는 그렇게 외로울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나는 해가 중천에 떠있어도 방이 어둡다는 이유로 미리 불을 켠다. 그 외로움이 또다시 나를 찾아오는 것이 싫어서다.
해가 완전히 지고 온 세상이 검은빛으로 두루 덮여 있는 그 시간. 엄마와 함께 저녁상을 차리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그 시간이 좋았다. 불을 끄고 나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엄마와 함께 누워 있는 시간은 행복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깜깜한 밤은 무섭지 않다.
첫 추위. 싸늘하게 불어오는 찬 바람. 온몸을 감싸며 오돌오돌 돋아나는 소름. 그것이 참 싫다. 한겨울이 되어 살을 에는 추위가 밀려와도 차라리 견딜 만하다. 당연히 추울 것이라 인정하고 마음에 대비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코트도 준비해 두고, 목도리도 꺼내 옷걸이에 걸어두고, 따뜻한 난로도 있으니 아무 염려가 없다. 그러나 초겨울의 첫 추위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여서인지 낯설기만 하다. 따뜻함에 익숙해져 있는 내 몸이 첫 주위에 낯가림하는 탓일까?
첫 추위가 익숙지 않아 더 춥게 느껴지듯, 밝음에서 금방 돌아서 막 시작한 희미한 어두움도 내게는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아예 캄캄한 밤이 오면 당연한 듯 어두움에 적응한다. 환하게 켜놓은 전등. 뻔히 알고 있는 밤의 어두움은 두려울 것이 없다. 초저녁이 편하지 않은 것은 환한 밝음 속에 익숙해진 몸이 서서히 내 곁을 다가오는 어두움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서이리라.
나는 작은 아픔이 싫다. 작은 외로움이 견디기 힘들다. 소소하게 다가오는 그 아픔들과 외로움들이 한없이 나를 움츠러들게 하고 지치게 만든다. 큰 아픔은 도리어 이기기 쉽다. 작게 다가오는 아픔. 살짝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외로움. 그런 것들을 견딤이 더 어렵다. 큰 아픔에는 준비가 있다. 큰 고통에는 차라리 덤덤히 대응할 수 있다. 맞서서 싸울 준비를 하고 이를 앙다물고 눈을 부릅뜨고 준비하고 있음이니. 겨우 감지하며 가볍게 지나가는 아픔. 그 고통. 그때 나는 울고, 화내고, 소리 지르며 견디기 힘들어한다. 큰 아픔 앞에서는 가슴을 펴고 당당히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다. 작은 아픔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자그마하게 다가오는 고통에 맞서 대응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주로 작은 아픔들에, 조그마한 외로움에 무너질 때가 많다.
큰 병은 느끼지 못한다. 살짝 베인 칼자국이 더 아프게 한다. ‘손톱 밑의 가시가 염통에 쉬슨 것’보다 더 아프다. 조용히 다가오는 작은 아픔. 살짝 찾아오는 가벼운 통증. 나를 우울하게 하고 아프게 한다.
나는 초겨울이 싫다. 초저녁이 싫다. 자잘한 아픔, 오롯이 찾아오는 작은 외로움이 나는,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