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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숙 Sep 15. 2024

쓰레기통 뒤진 날 아침

 프린터를 하나 샀다. 5년 전에 싼 것을 하나 사서 가지고 있었다. 딸은 그 프린터를 쓸 때마다 잔소리를 했다. 느리고, 소리만 요란하고, 종이는 자꾸 걸리고. 색깔이 선명하게 나오지 않을 뿐더러 어떤 때는 아예 글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프린트가 잘 되지 않아 너무 자주 헤드클린을 해야 하니 귀찮고.... 등.

 요즘은 정말 가격이 많이 내렸다. 이제는 프린터, 팩스, 복사, 스캔까지 다 되는 것도 60달러 정도면 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잉크 값이 만만치 않다. 칼라와 흑백, 두 개를 구입하니 거의 프린트 값과 맞먹었다. 프린트 안에 기본으로 잉크가 있지만 직원의 말이 그것은 아주 조금이기에 금방 없어진다고 해서 따로 한 세트를 샀다.  

  딸과 나는 마음이 들떴다. 가끔씩 어딘가에 팩스나 복사를 해야 할 때는 늘 스테이플스에 갔었는데, 이제는 그런 수고를 덜게 되었다. 안내서대로 연결하여 복사도 해보고, 스캔도 하고, 프린트를 해보았다. 모두 선명하게 잘 나왔다. 어디 팩스 보낼 곳도 받은 곳도 없어서 그것까지 확인하지 못함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다 됐다. 연결도 문제없고, 작동도 잘 되고, 너무 크지도 않아 작은 우리 집에 딱 맞았다. 행복한 꿈을 꾸며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딸과 함께 특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흡족한 마음으로 새 프린터를 다시 만지다가, 아참, 영수증은 어디다 뒀지? 만약 잘못되면 영수증이 있어야 하는데. 아마 잉크가 있는 봉지에 같이 있을 거야. 잉크가 든 봉지는 어디 있지? 넓지도 않은 우리 방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잉크를 어디 뒀지? 이제는 영수증이 문제가 아니라 잉크가 없는 것이 더 기가 막힌다. 한참을 찾았다. 없다.  

 아차, 어제 설치를 끝낸 후 이런저런 쓰레기와 함께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기억이 났다.  

 깜짝 놀라 쓰레기통으로 달려갔다. 물론 아직 쓰레기차가 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스테이플스 봉지만 찾으면 되니 간단하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룻밤 사이에 많은 쓰레기들이 쌓여있었다. 쓰레기통이 옷에 닿는 것이 싫어 몸을 움츠리며 가져간 꼬챙이로 뒤적이다가 안 되겠다 싶어 집에 왔다. 집게가 마침 있기에 그것을 가지고 나갔다. 그 사이 홈리스가 언제 출근(?) 했는지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사람은 상황판단을 잘 해야 돼. 얼른 다시 집에 와서 플라스틱 병과 캔이 든 봉지를 가지고 나갔다. 우리 교회서 재활용품 모으는데 가져가려고 준비 해 둔 것들이었다. 홈리스에게 공손히 다가가 당신을 위한 선물이라며 주었다. 몇 개의 쓰레기통은 족히 뒤져야 얻을 만 한 것을 받은 홈리스는 퍽 기뻐했다. 그러곤 내가 말할 차례다. 사실은 내가 어제 물건 산 영수증과 잉크가 든 봉지를 버려서 그것을 찾고 있다고. 그는 아, 그러냐며 그의 직업의식을 십분 발휘하여 쓰레기통 안으로 펄쩍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며 차례로 봉지를 들어보였다.  

 갑자기 어디서 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맑은 공기와 풋풋한 풀냄새, 푸르디푸른 물의 냄새도 함께 맡을 수 있었다. 깊고 깊은 산속 연못에 내가 와있었다. 앞에는 수염이 허연 산신령이 금도끼와 은도끼를 들어 보이며 “이것이 네 것이냐, 저것이 네 것이냐?”라 묻고 있었다. 황금에 눈이 어두워진 나는 모든 신앙도 양심을 저당 잡혔다.  

  “그 번쩍번쩍 빛나는 금도끼, 그것이 바로 내 것이옵니다.”라고 소리 지르려했다. 횡제를 놓칠 이유가 없었으니까. 순간 다시 큰 소리로 “이것이 네 것이냐?”라고 영어로 묻는 소리를 들렸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깊은 산속 청아한 연못이 아닌, 냄새나는 쓰레기통 앞에 내가 서 있었다. 나의 환상을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한순간의 착각에서 깨어, 아쉬움과 묘한 기분으로 눈을 두어 번 껌뻑이고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눈앞에 스테이플스 봉지가 어른거렸다. 그것이 아마 내가 찾는 것일 거라고 하자, 산신령이 아닌 홈리스가 건네주었다. 손을 대기 싫어 집게로 뒤져서 꺼내서 보니 그 속에 영수증과 함께 잉크, 자그마치 60달러 가까이 되는 잉크가 다소곳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홈리스와 ‘Thank you'와 'You are welcome'을 주고받고 난 후 집으로 왔다.

 그래, 금도끼나 은도끼가 아니면 어떠랴. 남의 것이 아닌 내 것, 되찾은 60달러, 그만해도 너무 행복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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