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는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되었다. 제단을 뒤덮은 국화 장식의 한가운데 있는 영정 사진을 본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곳에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히 웃는 얼굴의
선애가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었다.
“선애야...”
장례지도사로서 수없이 많은 영정사진을 봐왔지만 이토록 가슴 아픈 적은 없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다니. 하얀 웨딩드레스는 축복의 상징이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수의가 되어버렸다.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김 교수 부부가 내가 아닌 선애를 데려간 그날.
그때 선애가 나였다면, 나였더라면...
지금 저 관에 누워있는 건 내가 아니었을까.
진공청소기를 머릿속에 가져다 대고 돌린 것처럼 생각이 하얬다.
일훈은 중환자실에 있었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나는 장례 기간 내내 선애의 곁을 지켰다. 어떻게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모든 게 공허했다.
그렇게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문득 생일 선물로 받았던 그 쇼핑백이 떠올랐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내버려 둔, 이제는 선애의 유품이 된 그 쇼핑백.
뒤늦게 열어 본 쇼핑백 안에는 명품 반지와 함께 반으로 접힌 쪽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helpmekillme@daum.net
kimjuyeon0410
이게 뭘까? 하는 생각도 잠시,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을 켰다. 포털사이트로 들어가 메일함에 접속하자 읽지 않은 메일이 쌓여 있었다.
모두 '내게 쓰는 메일'로 저장된 편지들.
가장 첫 메일은 장례식장에서 우리가 다시 만난 그날부터였다.
처음으로 일기를 쓴다.
예전에 심리상담 선생님이 권했다. ‘글로 표현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거’라고.
하지만 난 이미 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란 걸.
다만 이 일기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이다.
오늘 주연 언니를 만났다.
장례식장에서 라니.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15년이 지났는데도 단번에 알아봤다.
까만 정장을 입은 채 문상객 안내를 하는 언니의 모습에 왠지 마음이 울컥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한밤중에 혼자 울던 어린 날의 나를 안아주던 그 손길.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그 따스함. 순수하고 깨끗한 그 온기.
언니의 연락처를 알아내느라 애썼다. 상조회사마다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서도 내내 떨렸다. 혹시 언니가 나를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그리고 카페에서 만났을 때, 언니는 내게 상조 가입 서류를 내밀었다. 그 순간 웃음이 났다. 얼마나 언니다운 선택인가. 관계를 거래로 풀어내는 이 냉정함이.
하지만 괜찮아. 나는 그래서 더 언니가 좋았으니까.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단단함이 좋았으니까.
◆◆◆
어제 그곳을 다녀왔다. 자애보육원.
15년 만이다. 나를 입양해 간 그들과 함께 떠나온 그곳.
원장님이 물으셨다.
“선애야, 잘 지내고 있니?”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잘 지내요’라는 거짓말과
‘살려주세요’라는 비명 사이에서
나는 그저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을지 모를 마음속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 상처를 들여다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내가 운이 좋았다고들 했다.
교수 부부의 귀한 딸이 되어 좋은 집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그 집에서 내가 겪어야 했던 것들을.
내 인생은 열세 살 그날 밤부터 지옥이었다. 엄마가 학회 때문에 집을 비운 그날부터.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이던 그 밤, 아버지라고 부르던 남자는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 선애, 무섭지?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 하지만 그건 진짜 악몽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양부는 날이 갈수록 대담해졌고, 그의 손길은 더욱 추악해졌다.
처음엔 엄마에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면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불임으로 고통받던 그녀에게 난 마지막 희망이었으니까.
“이런 걸로 엄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지? 넌 원래 고아였어. 다시 고아원으로 보내질 수도 있는 거야.”
그의 협박은 효과적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착한 딸이 되기로 했다. 하루하루를 버텼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스스로를 치료하려 했다. 자기 최면을 걸었다. 이건 다 꿈이야, 곧 깨어날 거야.
그리고 두 달 전, 암투병을 하던 엄마가 세상을 떴다. 마지막 순간, 앙상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속삭이듯 말했다.
“선애야... 미안해... 엄마가 정말, 너무, 미안해...”
그제야 알았다.
엄마도 알고 있었구나.
그 사람이 내게 무슨 짓을 하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는 걸.
미워하고 싶은데, 미워할 수가 없다.
엄마도 결국 나처럼 피해자였으니까. 그래서 모든 걸 외면할 수밖에 없었겠지.
엄마가 없는 이 집은 더 춥다. 문은 더 자주 흔들린다.
도망쳐야 해.
더는 이대로 있을 수 없어.
엄마가 남긴 통장이 있다. 그 돈이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사람이 날 그냥 놔줄 리가 없다.
도망치는 데는 돈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보호막이 필요해.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가장 완벽한 방패가 있다.
◆◆◆
주연 언니와 일훈 오빠.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대화, 무심한 듯 챙기는 마음들. 그래서 더욱 질투 났다.
나는 왜 그런 사랑을 가질 수 없는 걸까. 왜 나는 남자의 손길에 몸서리쳐야 하는 걸까.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일훈 오빠에게 끌린 건, 정말 사랑해서가 아니라 주연 언니의 것을 빼앗고 싶어서였던 것을. 그녀처럼 정상적인 사랑을 해보고 싶어서. 그녀처럼 행복해지고 싶어서.
주연 언니의 생일이었던 그날. 일훈 오빠가 취하도록 술을 권했고, 모텔로 데려갔다. 내가 먼저 옷을 벗었고 술에 취한 척 키스를 했다.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견뎌야 했다. 이것만이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오빠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오빠가 필요한 돈, 내가 줄게. 대신 일 년, 일 년만 나랑 살아줘.”
결혼을 통보하자 예상대로 양부는 분노했다. 집안의 체면을 생각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압박했다.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그제야 그는 입을 다물었다.
드레스 피팅을 마쳤다. 처음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내가 거울에 비치는데,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순수하고 깨끗한... 그런 신부의 모습이라니.
양부는 오늘도 내 방 앞을 서성인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아니야.
내일이면 끝나.
이 지옥 같은 날들이.
당신의 욕망과 집착으로 점철된 이 사슬을 끊고 나는 떠날 거야.
주연 언니.
나는 지금 일훈 오빠와의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이 글을 쓰고 있어.
내 불행한 과거를 생일선물로 주었는데, 언니는 아직 열어보지 않았더라.
왜 언니에게 솔직히 말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냥, 내 작은 심술에서였다고 할게.
언니를 보면서 생각했어.
만약 그때 입양된 게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면 언니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저항하고 싸웠을까?
아니면 결국 나처럼 무기력하게 순응하며 살았을까?
그래서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어.
지금 언니가 누리고 있는 평범함 그 삶.
그 평범한 삶의 주인이
나일 수도 있었다고.
하루 담당자님께.
어떤 신부의 마지막 하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그날은 그녀의 결혼식이자, 장례식이 된 날입니다.
우리는 보육원에서 함께 자랐고, 그러다 그녀는 교수 부부의 선택을 받아 입양되었고...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15년이 지나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내 남자친구를 빼앗아 결혼하려 하는지.
왜 그토록 급하게 결혼을 서두르는지.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침묵 속에 묻혀버린 그녀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회적 저명인사라는 탈을 쓰고 추악한 행동을 일삼았던 자에게 합당한 처벌이 내려질 수 있도록.
그래서 그녀가 가던 날의 기록을 남기려 합니다.
PS.
만일 이 글이 선정된다면 받게 될 1억 원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에 기부하고 싶습니다.
그녀처럼 침묵할 수밖에 없는 누군가를 위해.
부디 그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길 바라며.
<나일수도 있었다, 完>
두 번째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나름 반전을 도모했는데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1월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
조금 더 탄력 있는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라이킷 해주시고 댓글 남겨주시는 브런처님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