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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Sep 13. 2024

어떤 개미와의 한때

장구봉 다섯 바퀴를 한 시간 안쪽으로 돌고 내려오다가 우리 아파트 104동 벽을 타고 오르는 개미 녀석을 보았다. 밝은 색 아파트 벽에 까맣고 크기도 큰 개미인지라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중에도 내 눈에 들어온 듯했다, 녀석은 자기 덩치의 반 정도 되는 개미를 왼쪽 끝에 있는 다리로 잡아끌고 벽을 타고 있었다. 소인족 개미는 수분기 하나 없이 바짝 말라있는 것처럼 보였고, 거인족 녀석은 낑낑대며 끌고가고 있었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거인족 개미는 소인족 개미와 어떤 관계일까. 종족은 달라도 라이언일병 구하듯 소인족 개미를 구해 데리고 가는 것일까, 아니면 소인족 개미를 잡아 거인족 개미 집단의 단백질 공급을 위해 그러니까 사냥감을 가지고 원대 복귀하려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인족 개미는 소인족 개미를 끌고 아파트 벽면을 오르다 떨어지고 오르다 떨어지고를 반복했다.  거의 1m까지 벽을  올랐을 즈음엔 나도 집에 갈 생각도 잊은 채 속으로 "아자아자, 개미야 조금만 더 힘내봐!' 하고 응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궁금해졌다. 도대체 저 녀석은 왜 그리 벽을 오르려 애쓰는 걸까.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파트 벽면을 타고 올라 옥상을 가로질러 반대쪽 벽을 타고 내려가는 지름길을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같은 부류의 종자인가...


개미가 굴러 떨어졌다.  한참을 기다려도 개미가 벽을 오르지 않았다. 벽 아래 나무와 풀들이 자란 곳 어딘가 개미가 떨어졌을 법한 곳으로부터 터 조금씩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며 찾던 중 마침내 거인족 개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개미들이 자기들 몸보다 몇 배나 더 크고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다 해도 너도 지쳤겠지.. '

의리나 애정 때문이라면 소인 족족 개미를 묻어주고 길을 떠나든지.. 먹잇감이었다면 자신의 에너를  먼저 보충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개미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참으로  뭣도 모르는 인간의 시선이라고 개미가 혀를 찰 것만 같아야 생각을 그만뒀다.


거인족 개미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니 주변에 크고 작은 개미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즉 내가 거인족 개미라 여겼던 개미는 나의(?) 개미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개미가 떨어진 곳을 훑다가 가장 먼저 눈에 띈 개미를 그 개미라고 여겼던 어리석음..

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지만 소인족 개미를 질질 끌고 가는 거인족 개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없이 거인족 개미라 여겼던 개미를 따라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개미가 흙 위로 올라온 나무뿌리를 타고,  풀잎 사이를 헤치고, 누군가 버린 휴지 조각을 피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 딴생각이라도 하게 되면 나는 이 부지런하고 몸놀림이 깃털만큼 가벼운 녀석을 놓치기 십상이었다. 녀석이 아닌 또 다른 녀석을 녀석이라 철석같이 믿으며  따라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녀석은 104동을 벗어나려고 마음을 먹은 듯했다. 104동과 103동 사이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있었다. 아파트 내의 도로라고 해야 하나. 녀석이 도로 위를 걷기 시작했다. 간간이 차들이 다녔고 사람들도 지나갔다. 노부부가 내가 뭘 그리 열심히 보나  궁금했는지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다가 딱히 도로 위에 보이는 게 없자 그대로 느릿느릿 가버렸다. 유치원 가방을 멘 아이와 손을 잡은 애 엄마가 아이에게 빨리 가야 한다고 재촉하며 개미 곁을 스쳐 갔다. 아이도 노부부와 마찬가지로 나의 시선을 좇아 호기심을 부린다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부러 핸드폰을 꺼내 핸드폰을 바라보는 척 개미를 놓치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였다. 개미가 도로 한가운데를 항해하듯 걷는다면 개미는 곧 압사당할 운명인지라 나는 한 발로 개미가 가는 방향을 돌려놓기 위해 툭툭 막아섰다. 하지만 개미는 그만 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내 신발을 피해 빙 돌아 어떻게든 도로 위로 방향을 잡았다.


개미를 손가락으로 집어 올려 풀숲에 놔줄까 하다 그만두었다. 개미가 그 머나먼 어딘가를 가기 위해 도로를 항해를 해야 한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을 터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계획이 개미에게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 나는 깜짝 놀랐다. 개미가 바로 그 거인족 개미였다. 어떻게 알았냐고? 거인족 개미의 다리 여섯 개 중 왼쪽 끝에 있는 다리가 굽혀지지가 않았다. 다른 다리들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지를 못했다. 나는 이 개미가 그 개미인줄 알았다가 다시  그 개미가 아닌게벼,, 했는데 알고 보니 그 개미기 이 개미가 맞는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왠지 재밌게 느껴져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개미가 슬쩍 나를 보며  "나는 내 할 일 하고 내 갈 길 가는데 어디서  하릴없는 인간 하나가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구나"  하며 그래도 좀 귀엽다는 듯 웃지 않았을까?! ㅋㅋ


거인족 개미는 운이 좋았는지 다 계획이 있었는지 도로를 무사히 횡단했다. 개미는 103동 쪽 나무와 풀들 사이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이내 모습을 감췄다.


더 이상 녀석을 쫓고 싶지도 않고 계속 기다리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서 나도 내 갈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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