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라면 한 묶음과 호빵 한 줄, 섬초 한 단, 어린아이 팔뚝만 한 무 한 개, 1.8리터 들이 우유 한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농협 사거리에서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무겁다 싶어 차도와 인도 사이에 박아둔 기둥-볼라드-에 잠깐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이 내 주변으로 자전거를 탄 소년 서너 명이 오더니 한쪽 다리로 땅을 짚어 자전거를 지지한 채 저희들끼리 뭐가 재밌는지 낄낄댄다.
내 뒤로도 사람들이 모였는지 두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 애기 몇 살이에요?" 한 여성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두 살요. 애기는요?" 두 살배기 애기 엄마가 묻는 소리에 나는 여성이 상대방 아이를 눈으로 가리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우리 애는 다섯 살이에요. 조금 작죠?" 그러고 보니 내 뒤로 유모차가 굴러와 서는 소리가 났던 것도 같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의 대답으로 보아 아마도 사람들이 다섯 살 아이를 볼 때마다 작다는 말을 덧붙였던 모양이다.
"어머, 송이야, 아줌마한테 인사해야지?!" 다섯 살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아이는 숫기가 없는지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다섯 살배기 아이의 엄마는 두 살짜리 아이가 딸인지 아닌지를 물을 때도 그렇고, '어머'라는 말을 을 습관처럼 쓰는지 이후로도 어머 어머를 말 첫머리에 붙여 썼다.
두 살배기 애 엄마가 물었다. "아디다스 운동복이 애기한테 넘 잘 어울리네요. 근데 그거 어디서 샀어요?"
아이를 가진 엄마들인지라 쉽게 말을 걸고 쉽게 대화를 이어간다. 무심코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쏜살같이 앞으로 나간다. 나도 덩달아 장바구니를 추슬러 집어 들고 한 발을 내밀며 신호등의 파란불을 확인한다. 그 사이 아이들 엄마들이 내 옆을 스쳐 간다. 그때였다. 유모차 앞 쪽에 두 손을 올리고 나를 돌아보는 송이와 눈이 마주친 것은.
어라.. 송이는.. 분홍색 아디다스 운동복의 후드를 눌러쓴 송이는 내가 상상한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까맣고 복슬복슬한 털과 구별이 안될 만큼 까만 눈동자를 가졌다. 엄마를 닮아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먼저 눈 깜박이는 사람(?)이 지는 거다.. 눈싸움이라도 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