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와 은석의 이야기 6
농촌의 하루는 도시의 그것보다 이르게 시작하고 이르게 마무리된다. 동이 터오기도 전에 시작되는 하루는 이슬처럼 맑지만 바닥에 떨어져 이슬에 젖은 나뭇잎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착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은석의 엄마는 아침 일찍 은숙이와 재봉이를 흔들어 깨운다. 은숙이는 재봉이 보다 네 살이 적지만 은석의 엄마는 재봉이보다 은숙이를 먼저 일으킨다. 은숙은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의 말을 귀에 담으려 애쓴다.
"은숙아, 오빠랑 은석이랑 밥 먹고 빈 그릇은 자싯물(개숫물)에 담가 둬. 남은 반찬은 솥 안에 넣고 솥뚜껑 꼭 덮어놔야 한다. 그리고 학교 갈 때 오빠가 뛴다고 같이 뛰지말고. 차 위험하니까. 알았지?"
은석의 엄마는 재봉이와 은석이에게 얼른 일어나라고 채근하면서도 은숙이에게 할 말이 많다.
"학교 끝나면 곧바로 집에 와서 은석이랑 같이 밥 찾아 먹고 같이 놀아주고. 엄마 말 알아들었어?"
"응, 알았어.." 은숙이 순하게 대답한다.
은석의 엄마는 아이들이 빨리 졸음을 물리고 일어날 수 있도록 아이들이 덮은 이불을 걷어 갠다. 대충 갠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 생긴 공간에 오봉 상을 들인다. 여전히 눈꺼풀에 졸음이 끼어있지만 아이들의 눈이 밥상을 훑는다. 아이들은 늘 고만고만하게 상에 오르는 푸른 잎새들에 시큰둥하다.
은석의 엄마는 재봉이에게도 당부를 한다. "재봉아, 밥 먹고 여기 도시락 꼭 챙겨가라. 학교에 너무 일찍 출발하지 말고. 동생 좀 잘 데리고 가고. 알았지?"
"엄마는 이제 일하러 간다!" 아이들이 숟가락을 드는 걸 보고 나서야 분주한 새벽을 일단락하는 엄마의 마지막 한마디다.
은석의 엄마는 이사 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은수의 엄마를 따라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은숙이는 은수의 작은 누나 경애와 같은 2학년으로 등하교를 함께 할 친구가 생겨 학교 다니는 일이 여간 신나는 게 아니었다. 이사를 오면서 함께 학교에 갈 친구가 생겼다는 건 학교를 오가는 길에 더이상 오빠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오빠와 둘이서만 학교를 다닐 때는 오빠의 심중을 살피느라 매우 고단했다. 오빠가 제 맘만 있는 것처럼 뭐든 제멋대로 하려고 해서 은숙이 속상해 울음을 터트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엄마는 늘 은숙에게 오빠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은석이 가만히 엄마에게 안긴다. 엄마는 은숙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혼자서 적적할 은석이 못내 가슴에 밟힌다.
"우리 은석이 착하지? 은석아, 밥 먹고 졸리면 더 자고, 심심하면 은수 오빠한테 가서 놀아.."
은석은 팔에 힘을 줘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는다.
"재봉이 엄마, 준비 다 됐어?" 은수의 엄마가 마당을 기웃거리며 묻는다.
"예, 나가요!" 은석의 엄마가 대답과 동시에 은석을 내려놓으며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우리 은석이 착하지.."
서둘러 가는 엄마의 등 뒤에서 은석이 풀기 없는 무명처럼 주저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