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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Oct 16. 2024

복자씨의 별사탕

은수와 은석의 이야기  7

은수의 작은 누나 경애가 사립문 밖에서 종숙의 귀에 닿을 똥말똥 어정쩡한 목소리로 종숙을 부른다. 종숙이 보다 재봉이 먼저 알아듣고 후다닥 문을 열고 나오더니 내처 달음박질을 친다. 마치 내가 없어도 종숙이랑  함께 갈 친구가 왔으니 나는 동생을 위해 할 만큼 했노라 항변할 수 있게끔 경애가 종숙이를 부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경애가 종숙이를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부르는 데에는 재봉이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은석의 아버지의 몫이 컸다. 재봉이 경애를 본 척 만 척했다면 은석의 아버지는 마루 끝이나 마당가에 쪼그리고 앉아 신문을 읽다가도 뭔가 미심쩍은 눈으로 경애를 쳐다보곤 했다. 경애는 잘 못한 것이 없는데도 뭔가 죄를 지은 것처럼 주눅이 들곤 했는데 언젠가 엄마가 이웃 아주머니들과 주고받는 이야기 중에 은석의 아버지가 누렇고 탁한 눈으로 괭이처럼 사람들을 바라보는 건 원체 사람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종숙은 얼른 가방을 둘러메고 조심조심 방을 나와 문을 닫으려 했다. 은석이 종숙에게  꼬리처럼 들러붙는다. 종숙이 난감한  표정으로 은석을 바라본다.

"은석아, 언니 학교 갔다 금방 올 게. 그니까 너도 가서 한 잠 더 자든지 은수한테 가 놀아. " 종숙은  엄마가 은석을 달래던 말을 떠올리며 은석을 달랜다. 은석이 몸을 베베꼬며 끙끙대자 종숙이 꾀를 낸다.

"은석아, 언니가 빨리 오려면 얼른 가야 해. 늦게 가서 지각하면 학교 끝나고 남아서 선생님한테 벌 받는단 말이야"

경애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너 때문에 나까지 벌 받으면 어쩔 거야? 니가 책임질래?!"

은석이 아무 말 못 하고 언니들의 말이 옳은지 가늠해 보려 애쓸 때 이때다 싶게 경애가 종숙의 팔을 잡아 끈다.


은석은 방 안으로 들어가지만 딱히 할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미닫이 문을 살짝 밀어 옆방에서 자고 있는 아버지를 보아도 아버지는 자느라 여념이 없다.


은석은 미닫이 문을 조심스레 닫고 엄마가 개켜놓은 이불을 펴고 베개를 인형 삼아 놀다가 이내 시큰둥해져 이불 위에 누워버린다. 이불 한쪽 끝으로 가 이불을 꼭 쥐고 이불과 함께 데굴데굴 구른다. 마치 번데기가 된 것 같다. 둘둘 말린 이불속에서 몸만 쏙 빠져나오려고 버둥버둥대다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자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데굴데굴 구른다. 이불속에서 놓여난 은석의 가늘고 노란 머리카락이 하얀 얼굴에서 민들레 홀씨처럼 부풀어 올라 날아갈 듯 나풀거린다.


은석은 이불을 갠다. 예술행위를 하듯 엉금엉금 이쪽 끝과 끝을 맞추어 접고 저쪽 변을 이불 중간쯤으로 끌어다 놓고..  대강 그렇지만 혼신을 다해 개 놓은 이불 위를 올라타 숨을 고를 때 방문틈으로 폭이 좁은 띠 모양의 햇살이 은석의 얼굴 위로 새어들었다. 햇살 속에 먼지가 작은 나비들처럼 날았다. 은석이 먼지를 잡으려 애썼다.


은석은 마루 끝에 앉아 은수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읽다가 대충 접어둔 신문이 눈에 들어온다. 은석은 신문을 펄럭이며 한참을 바라보다가 도로 신문을 접어 한쪽으로 밀어둔다.


온기 가득한 아침 햇살 속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려니 눈꺼풀 안의 세상이 온통 빨갛게 불타고 있다. 시뻘갰다가 검었다가 진했다가 흐렸다가 층을 이뤘다가 시시각각 요동을 친다. 동그란 작은 눈과 그 눈을 덮은 눈꺼풀 사이에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는 붉은 세상이 꿈틀댄다.


은수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은석은 눈을 뜨지 않았다. 은수는 발소리만큼 숨도 줄이고 은수를 놀라게 해 주려다 그만두고 은석이 옆에 앉았다. 은수도 은석이 처럼 햇살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은석이 보는 시뻘건 세상에 언뜻 은수의 형체가 보였다. 은석이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 은수를 바라보았다. 은수는 빨간 세상 속에서 무엇이 재미있는지 눈을 감은채 싱글싱글 웃고 있다.


사진출처 : https://t1.daumcdn.net/cfile/blog/9993144F5CC9026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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