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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Oct 20. 2024

복자씨의 별사탕

은석의 아버지_은수와 은석의 이야기 8

방 안에서 은석의 아버지가 잠결에도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린다. 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던 은석이와 은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루에서 몸을 일으켰다. 둘은 조용히 은수의 집으로 향했다.


은석의 아버지는 새벽의 시린 기운과 함께 들어와 담배와 술에 쩐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은석의 아버지는 술, 담배로 위가 경련을 일으키고 구역질로 머리가 핑핑 돌 지경에 이르지 않는 한 결코 술과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술과 담배가 은석의 아버지를 좀 먹도록 부추기는 것 중의 하나가 화투였다.


동네마다 화투판이 벌어졌다. 화투놀이가 일부 특별한 사람들의 놀이는 아니었으나 은석이의 아버지는 놀이의 수준을 넘긴 지 오래였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돈을 딸 거라 믿었고, 다음 판에는 다음 판에는.. 하면서 잃은 돈을 되찾고 남의 돈을 내 돈으로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은석의 아버지는 은석의 엄마가 날일로 벌어 조금씩 모아둔 돈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장판 밑에 숨겨둔 돈은 물론이고 베갯속이나 심지어 보리쌀 속에 숨겨둔 돈도 금세 은석이 아버지의 손에 떨어졌고, 나뭇단 속이나 하다못해 땅을 파고 묻어둔 돈조차 은석의 아버지 앞에서는 모습을 쉽게 드러냈다. 집에서 더 이상 돈이 나올 구멍이 없다는 걸 확인하면 은석의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쫓아갔다. 그럴 때의 은석의 아버지의 눈은 확실히 은석의 아버지의 눈이 아니었다. 뭔가에 미쳐 회까닥 돈 사람의 눈은 유난히 빛났고, 유난히 번뜩였다..


은석의 아버지는 노름 앞에서 잼병이었다. 이유는 뻔했다. 술이 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은석이 아버지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노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노름같이 은석의 아버지를 사로 집고 심사숙고해야 하는 일은 더욱 그랬다. 한잔 한잔 술을 마시다 반쯤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아버지의 손을 거친 돈은 이내 다른 사람들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모르긴 해도 노름판이 커지고 동네 사람들은 물론 읍내 사람들까지 은석의 아버지를 노름판에 끼워주려 애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듯했다. 매번 노름으로 돈을 잃는 은석의 아버지를 딱하게 여긴 동네 노름꾼 하나가 참다못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술에 취해 화툿장을  만지는 사람을 속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나 그뿐이었다.


어느 동네나 노름의 판을 깔아 주는 집이 있었는데 주로 술과 담배를 파는 구명가게인 경우가 많았다. 구멍가게 주인은 장소를 제공하고 술과 담배를 팔았고, 개평을 뜯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전해졌는지 이사 오기 전부터 전해진 은석이 아버지의 무용담 같은 일화는 유명했다. 


그날도 은석의 아버지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저녁 어스름이 내릴 때쯤 집을 나서 황씨 아저씨네 구멍가게로 스며들었다. 한 명 두 명 꾼들이 모여들고 화투패를 가지고 점을 치고 운세를 보고 재수 떼기를 하던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노름에 열을 올릴 무렵 바깥에서 "경찰이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노름꾼의 가족들 중 누군가가 경찰에 찔렀을 것이었다. 다들 혼비백산하여 우왕좌왕하면서 후다닥 문을 열고 나가기도 하고, 창문을 넘기도 하고, 방에 달린 다락에 숨기도 했지만 결국 다들 경찰에 붙잡혀 갔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위기를 모면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은석의 아버지였다.


은석의 아버지는 밖으로 도망치기보다 현장-노름판이 벌어진 방-을 벗어나되 현장을 완전히 벗어나지도 않았다. 은석의 아버지는 노름방 바로 옆, 그러니까 황 씨 아저씨의 오늘내일하는 늙은 부모가 기거하는 방 안의 이불속 늙은 부부 사이로 숨어들었다. 그때 은석의 아버지의 손은 빈손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정신없이 출구를 찾을 때 화투패를 별치기 위해 깔아 둔 담요 속 꾼들의 노름 자금을 챙겼다. 그렇게 은석의 아버지는 꿩 먹고 알 먹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발견된 판돈이 크지 않아 노름꾼들은 바로 훈방조치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은석의 아버지가 돈을 홀라당 날린 어느 날, 은석의 아버지는 함께 화투패를 돌린 사람들에게 금방 돈 가지고 올 테니 절대 어디 가지 말고 그 자리를 지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은석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희번덕한 눈으로 돈 냄새를 식별하기 위해 옷장의 옷들을 끄집어냈고, 부엌에 깨끗이 씻어 엎어둔 그릇 사이를 들춰보기도 하였다.  마침내 불이 꺼진 부뚜막 아궁이 속 재를 헤집고서야 찾은 은석엄마의 비상금을 들고 겨우 노름판으로 복귀했을 때 정작 판돈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장씨가 집에 가고 없었다. 은석의 아버지는 그 길로 장씨의 집으로 달음박질했고 씩씩거리며 그의 방문을 열고 이불을 확 들추었을 때 장씨와 그의 아내는 벌거벗고 있었다.


장 씨와 그의 아내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이런 홍두깨가 없었다. 은석의 아버지는 줄행랑을 쳤고, 장 씨는 눈이 돌아 은석의 아버지를 찾아 몇 날 며칠을 돌아다녔다. 은석의 아버지는 집 안에 없는 척 집안에 틀어박혀 술과 노름 다음으로 좋아하는 신문만 열심히 읽었다. 한참이 지나고 장씨의 노여움이 가라앉았다 싶었을 때가 되어서야 은석의 아버지가 장 씨를 찾아가 사과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았다.


이래저래 은석의 아버지는 개차반 같은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은석의 엄마에겐 철천지 원수요, 막돼먹은 남편이 아닐 수 없었다. 은석의 엄마는 은석의 아버지를 붙잡고 사정도 하고 눈물로 호소도 해보고, 은석의 아버지를 찾아 노름판을 헤매기도 했지만 어느 것도 소용에 닿지 못했다.


은석은 아버지가 깰까 두려워하며 은수를 따라 은수의 집으로 갔다. 할머니는 부쩍 기침이 심해진 할아버지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은수와 은석은 장독대 옆에 고이 모아둔 병뚜껑과 깨진 사기조각, 둥글고 넓적한 돌멩이를 펼치고 소꿉놀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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