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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도깨비 뿔에 호랑이 이빨을 가진 괴물이었어

[미스터리 추리소설] 나는 미쁘고 의로우사

by 해달 Feb 15. 2025

“아아!”

“괜찮으세요?”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은 가인에 놀란 수현이 그녀를 부축하려는 찰나였다. 다가오려는 수현을 가인이 막아섰다. 이미 풀려버린 다리와 순식간에 차오른 식은땀이 영락없이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병원 먼저 가셔야겠어요.”

“아니, 아니야.”



곧 정신을 차린 가인이 식은땀을 닦으며 깊은 호흡을 내쉬었다.



“이제, 경찰에 신고하자.”

“이대로 괜찮으시겠어요?”



수현이 물었다. 행여 외부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나 숨기고픈 현장이 없냐는 의미였다. 물론 가인도 물어오는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예측이 안 돼.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원한이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스토커 짓은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물벼락을 맞았을 때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 방을 보니까 아니야. 스토커였다면 날 기다리고 있었겠지.”

“정원과 연결된 주방 뒷문을 아는 걸로 봐서는 이 집에 한두 번이라도 드나들었던 인물이 아닐까요?”



수현의 추측에 가인이 고개를 저었다.



“기껏해야 정원관리사나 도우미아주머니, 가끔 부르는 수리기사 정도가 다인데 그분들이 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다고?”



어이없어하는 가인에 수현은 반박하지 못했다.


가인의 저택은 대부분 도우미아주머니를 통해 관리되고 있었다. 가인이 낯선 이와 대면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탓이었다. 하지만 우연이라도 외부인과 마주치는 날이면 가인은 그들에게 세상 더없이 친절했다.


일당 또한 과분하다 싶을 만큼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런 즉 아주머니 포함, 인부들에게 있어 가인의 죽음은 곧 평생 꿀직장이 날아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사실 수현은 과거 가인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인물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인간은 때때로 의도와 상관없이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늪에 빠트리기도 하니까.


확인이 필요했지만 수현은 끝내 묻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본 바, 가인을 늪에 빠트리려는 입방정은 많이 봤어도 정작 이가인이 누군가를 향해 도발하는 것을 본 기억은 없으니.


일체 감정을 숨기는 무표정한 얼굴만큼 말을 아끼는 이가인이었으니 수현은 굳이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런 현장이면 경찰이 알아서 파헤칠 터였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근데 한 가지 걸리는 게…….”



말끝을 흐리는 가인이 초조한 눈빛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거 말이야”


가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침대 위에 죽어있는 자신, 그 가운데 그녀의 얼굴이었다.



“연쇄살인범이 나를 노리는 걸까……?”

“아니요. 분명 혼선을 주기 위해 모방했을 겁니다. 겁주기에 딱 좋은 수법이니까요.”



수현의 대답에 가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수사가 시작되면 엄청나게 많은 경찰들이 내 집에 드나들겠지?”



가인이 초조한 또 다른 이유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녀는 28년 전 그때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율동에 맞춰 노래하는 자신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님과 한쪽에서 자동차 장난감을 갖고 놀던 남동생 서인이 있었던 완전한 가족.


그러던 어느 날 난생처음 경찰이라는 낯선 어른들이 가인을 찾아왔다.


6살 아이 눈에는 당시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들이 도깨비 뿔에 호랑이 이빨을 가진 무시무시한 괴물로 보였다. 마치 아이를 잡아가 한입에 꿀꺽 삼켜버릴 것만 같은…… 부모님이 계셨음에도 6살 아이는 공포 속에 얼굴을 들지 못했었다.


그 후 가인에게 경찰이란 존재는 괴물이 되었고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그녀는 다시 경찰과 마주 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괴한의 짓으로 인해 수많은 괴물이 집에 드나들 수밖에 없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 거였다.


가인은 벌써부터 사지가 떨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절대 괴물 앞에서 주눅 들지 않겠노라고 그녀는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중이었다. 침대 위에서 살해당한 자신의 모습이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괴한을 잡기 위해서는 괴물이 필요했다.



“그동안 대표님께서는 어디에 머무실 생각입니까?”

“호텔. 현장조사 끝나고 인테리어를 바꾸려면 시일이 좀 걸릴 거야.”

“그럼, 여기서 계속 거주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물어오는 수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미 수법이 잔인한 누군가에게 노출되었고 머지않은 미래에 범죄현장이 될 수도 있는…… 수현 기준, 평창동은 더 이상 안전한 집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고집을 부리는 가인을 수현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수현에게 있어 ‘집’이라는 의미는 그녀의 가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제든 떠날 수 있고 바꿀 수 있고 버릴 수 있는 곳. 수현에게 집이란 그런 의미였다.



“여긴 내 삶의 모든 것이 묻어있고 또 묻어가고 있는 유일한 곳이니까.”



단단히 결심이 섰는지 가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가족의 모든 흔적이 담긴, 그녀에게는 전부인 이곳에서 왜 이런 끔찍한 가상 살해사건이 벌어졌는지…… 가인은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 묻겠다는 다짐이었다.


왜 그렇게 나를 죽이고 싶어 했는지.



**



채 10분도 되지 않아 경찰이 도착하자 가인은 경찰에게 비공개 수사를 요청했다. 언론에 뿌려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잠시 후, 경찰서에서 진술을 마친 가인이 수현과 함께 걸어 나왔다. 쌓인 피로에 쳐진 가인의 어깨는 한껏 내려앉아 있었다. 귀가 후 장장 3시간을 시달린 새벽 2시가 넘어간 깊은 밤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가인을 룸까지 가이드한 후에야 밖으로 나온 수현은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구입한 후 가인의 차량에 올라탔다.



“후-.”



수현이 짧은 호흡을 뱉어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얼굴이었다.


시동을 걸기 전, 수현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만 무려 30통이 넘게 찍혀있었다. 발신인은 단 한 명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사실 3시간 전부터 그녀의 폰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단지 무음모드를 해놓았을 뿐.


저택에서 일어난 기상천외한 사건을 수습하고 가인을 보호하느라 수현은 정작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했다.


본래 수현은 간만에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무려 2주간 거의 잠들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간의 수면 시간을 다 합해도 채 4시간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수면제에 의존하지 않으려 수현은 잠을 자지 않는 쪽을 택했었다.


그런데 어젯밤, 수현은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수면 욕구를 느꼈다.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본능적 생존 욕구가 드디어 발동한 거였다.


서둘러 암막커튼을 친 수현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오늘이야말로 잠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마치 알람이 울리듯 요란한 폰 벨소리가 울리기 전까지는.


이가인이었다. 그리고 2주 만에 찾아온 강력한 수면 욕구는 기약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현은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무려 30통이 넘게 전화를 걸어온 발신자 때문이었다. 이가인 덕에 전화를 받을 수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실 수현은 이가인의 저택에서 그녀를 살해한 범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며칠 전 담벼락 뒤 쪽문을 기웃거리고 있던 검은 마스크…… 분명 그 괴한 짓임에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수현은 가인과 경찰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다.



“이제, 이가인 차례인가?”



뜻 모를 미소를 지은 수현이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침대 옆,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외투와 뒤집어진 슬리퍼가 휑했던 바닥에 여백을 채웠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니트 속 셔츠 목 단추만 풀어헤친 채 잠든 재림의 오피스텔이었다.


조금 전 집에 들어선 재림은 간신히 외투만 벗어던지고는 그대로 침대 위로 추락해 잠이 들었다.


그렇게 깊은 잠을 자나 싶었지만 악몽을 꾸는 건지 몸이 좋지 않은 건지…… 얼마 안 가 잔뜩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곧, 꽤나 고통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안 돼…… 안 돼!!”



양팔을 휘저으며 소리친 재림이 눈을 떴다.


깜깜한 어둠 속, 반짝이는 그의 두 눈은 두려움에 갇혀있었다. 온몸 가득 식은땀마저 차올랐다.


눈을 뜬 재림은 마치 사방에 적이 있는 듯 쉴 새 없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를 공격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주먹 쥔 재림의 두 손은 지극히 날카롭고 공격적인 그의 내면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난 후였다. 문득 정신을 차린 재림이 주먹을 풀며 긴 숨을 내쉬었다.



“후우…….”



몇 시간 전, 가인을 데려다주고 곧장 귀가한 재림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괜찮아지겠지 싶어 버스정류장까지 걸어도 보고 편의점에 들러 소화제도 사 먹은 후였다. 하지만 꽉 막힌 그의 속을 뚫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재림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음식이 체한 게 아니라 집착이 체한 거였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온 재림은 갑갑한 외투만을 겨우 벗어던진 채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마치 몸 안의 모든 에너지가 방전된 사람처럼.


이가인을 만나고 올 때면 재림은 항상 이랬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더 버거웠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모든 기가 이가인에게 옮겨가듯 힘을 잃었을 뿐.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재림에게는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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