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소설] 나는 미쁘고 의로우사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재림이 바닥에 내던져진 외투주머니에서 손목시계와 함께 폰을 꺼냈다.
새벽 2시 18분.
“해 뜰 때나 깼으면 조깅이라도 했을 텐데, 하필 애매한 시간이네.”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탓에 욕실에서 세수를 한 재림은 홈웨어로 옷을 갈아입은 후 침대 머리맡에 베개를 세워두고 앉았다.
그는 여전히 불을 켜지 않고 있었다. 아까와 같은 두려움은 사라졌으나 이번에는 지독한 그리움이 그의 눈을 파고든 까닭이었다.
기쁨이자 고통이 되어버린…… 희미해져 가는 가족과의 시간들이 이 순간 그를 마구 잡아당겼다.
재림은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7~8살쯤 된 어린 재림이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놀러 가는 꿈이었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의 꿈에 가족이 모두 등장한 건.
비록 꿈이었지만 잡은 손을 타고 느껴진 부모님의 온기와 촉감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된 순간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싶은 꿈속, 그리고 꿈밖의 재림이었다.
그랬던 행복이 곧, 악몽으로 바뀌었다.
별안간 하늘이 어두워지고 놀이공원 속 사람들이 한순간 연기처럼 사라진 거였다.
어린 재림 역시도 공포에 떨고 있었다. 하늘이 어두워진 탓은 아니었다.
재림의 양손은 여전히 잡혀있었다. 그런데 그 촉감이 부드럽지 않았다.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되레 뭔가 거칠고 단단한 가시가 아이의 손바닥을 자극했다.
길쭉하고 가는 꼬리가 산만하게 움직이는 두 마리의 흉측한 악마가 아이 손을 잡고 있던 거였다.
깜짝 놀란 재림이 울부짖으며 발버둥을 쳤다. 엄마 아빠를 찾았지만 그곳에는 악마의 손에서 아이를 구해줄 그 누구도 없었다.
거칠게 자신을 끌고 가는 악마들을 향해 재림은 온몸으로 저항했고 악마가 날개 짓을 하기 전, 그는 간신히 눈을 떴다.
그리 놀랄 만한 꿈은 아니었다.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형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재림은 줄곧 이런 꿈을 꿔왔다.
꿈의 시작은 언제나 가장 행복했던 그의 지난 시절이었다. 반면 그 끝은 늘 재림의 양손을 꽉 잡고 있는 악마들의 등장이었다.
재림은 단 한 번도 악마를 본 적이 없었다. 천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꿈속에서 자신을 끌고 가는 형상이 악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악마는 항상 그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으로 아이를 유혹했고 정체가 드러난 검은 날개를 펄럭이는 순간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 악마들이 어둠의 지옥으로 자신을 끌고 들어갈 거라는 것을…….
꿈은 분명 악몽이었다. 그러나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기에 재림은 내심 악몽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곳에서만큼은 적어도 세상에 혼자 남겨진 아이가 아니었으니.
“하아…… 왜 이렇게 자꾸 서두르는 거야. 정신 좀 차려.”
어느새 꿈의 여운에서 벗어난 재림이 스스로를 다독이듯 중얼거렸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자꾸만 앞서가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좀처럼 컨트롤이 안 되는 조급함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충돌 힐 게 뻔했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모든 일은 늘 찰나의 순간 벌어지니까.
벽에 머리를 기댄 재림의 시선이 tv 선반 위에 놓인 액자 속, 가족사진을 향했다.
불을 켜지 않은 탓에 사실상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사진 속 가족들의 얼굴이 너무나 선명했다.
“……빌어먹을.”
살면서 그가 버리기로 다짐한 세 가지가 있었다.
강박, 절망, 집착.
그 가운데 그는 두 가지를 버렸다. 다만 한 가지, 아직 버리지 못한 게 있었다.
집착이었다.
***
주차를 마친 수현이 차에서 내려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섰다. 그 사이 폰은 울리지 않았다.
7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3시를 향해가고 있었지만 복도를 걸어가는 수현은 딱히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본능적 잠의 욕구가 미세하게나마 아직 느껴졌다는 거였다. 살짝 무거워진 눈꺼풀에 수현은 만약 잠이 든다면 일요일 저녁에나 눈을 뜨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 잠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오피스텔 문 앞에 한 여자가 쭈그리고 앉아있는 것을 목격한 후였다.
꽤 오래 있었던 듯 찬 바닥과 서늘한 밤공기에 노출된 여자는 잔뜩 몸을 웅크린 가운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자를 바라보는 수현의 눈빛에는 자비 없는 냉기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왜 왔어?”
수현이 여자에게 묻자 고개를 파묻고 있던 그녀의 친모, 송미호가 고개를 들었다.
이미 새빨갛게 얼어있는 기미 낀 양 볼과 차디찬 냉기에 게슴츠레하게 뜬 두 눈, 싸구려 파마머리에 유행 지난 외투가 수현 눈에 띄었다.
6개월 만에 만난 모녀는 서로를 보고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수현의 눈빛에는 자비가 없었고 송미호의 눈빛에는 사랑이 없었다.
“아이고~ 아이고 다리야!”
주먹으로 다리를 툭툭 쳐가며 간신히 일어난 송미호가 깔고 있던 목도리를 들어 올려 털었다.
수현은 여전히 모친과 거리를 두고 서있었다. 마치 가인이 수현과의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넌 어딜 그렇게 빨빨거리면서 싸돌아다니니?! 전화도 안 받고.”
“비켜. 문 열게.”
송미호가 옆으로 비켜서자 도어록 커버를 연 수현이 비밀번호를 눌렀다. 덩달아 어깨너머 송미호의 시선이 수현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문이 열리자 수현이 말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버릇없는 년.”
딸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송미호가 문이 닫힐세라 냉큼 뒤따라 들어왔다.
잠시 후, 소파에 앉은 송미호 앞에 굳은 얼굴의 수현이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딸이 생모에게 최대한 자비를 베푼 데운 보리차였다. 여느 때라면 푸대접을 한다며 육두문자와 함께 잔소리를 늘어놨을 송미호였다. 그런데 밖에서 꽤나 떨었는지 그녀는 불평 한마디 없이 잔을 들어 올렸다.
거리를 둔 수현이 간이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시선은 6개월 만에 만난 생모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깊은 새벽만큼 낮게 깔린 수현의 음성이 어색하기만 한 모녀 사이를 건드렸다.
“문자만 보내면 될 걸, 왜 온 거야?”
“넌 엄마랑 마주치기도 싫지?”
“어차피 돈 떨어져서 온 거잖아. 우리가 다른 얘기 할 게 있는 사이였던가?”
드디어 마주친 서로의 눈빛은 팽팽했다.
누구 하나라도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는 순간, 그 결말을 알 수 없는 신경전이었다.
“그리고, 엄마? 당신이 내 엄마야?”
“뭐? 이런 싸가지 없는 년! 내가 너 안 낳았으면 네년이 이렇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것 같아?!”
쾅! 순간 주먹으로 식탁을 내려친 수현에 송미호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발톱까지 무뎌진 건 아니었지만.
“똑똑히 들어. 그쪽은 날 버린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차오르는 분노에 수현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탁자를 내리친 고통도 그녀는 느끼지 못했다.
수현의 생부 이상호와 생모 송미호는 각각 27살, 22살의 나이에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송미호가 임신 3주 차인 때였다.
씀씀이가 헤픈 이상호를 먼저 쫓아다닌 건 송미호였다. 그녀는 목적대로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나 신혼집을 차린 후 송미호는 채 3개월도 되지 않아 싫증을 냈다. 부모가 건물주라는 이상호의 거짓말이 들통난 이후였다.
남편의 부모가 건물주가 아닌 산골 가난한 농부임을 알게 되자 송미호는 당장 아이를 지우고 이혼하기를 원했다.
그런 그녀를 찾아와 무릎을 꿇은 건 시부모였다. 그들은 아이를 지우는 것은 살인과 다를 바가 없다며 아이만 낳아주면 당신들이 키우겠다는 각서를 쓰기까지 했다.
간절한 시부모에 송미호는 대가를 요구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빌미로 돈을 뜯어낸 거였다. 며느리 요구에 시부모는 결국 땅을 팔아 마련한 돈을 건네주었고 집을 나간 송미호는 몇 개월 후, 지인을 통해 아기를 보내왔다.
그렇게 생모에게 버려진 아이가 수현이었다. 한편 뒤늦게 땅을 판 돈이 송미호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호는 한바탕 난리를 쳤다. 자신이 받아야 할 유산을 이깟 아이 값으로 주었다는 것에 분노한 거였다.
그날 이후 이상호와 부모의 인연은 끝이 났다. 그리고 2년 후, 이상호는 주검이 되어서야 부모 앞에 나타났다. 오토바이 교통사고였다. 당시 수현의 나이 불과 3살 때였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후, 장에 나가 손녀에게 입힐 겨울옷을 사가지고 온다던 할머니가 식당 앞을 지나시던 중 가스폭발로 인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신 거였다.
그리고 한 달 후, 남의 집 밭일을 해주고 품삯을 받아오던 수현의 할아버지마저 비닐하우스에서 명을 달리하셨다. 그렇게 다섯 살에 혼자가 된 수현은 이후 낯선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더 낯선 보육원으로 보내졌고 생모 송미호는 단 한 번도 딸을 찾지 않았다.
수현은 자신의 과거를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수현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가인이 이 모든 사실을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수현에 대한 모든 조사를 마친 가인 또한 송미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현은 생모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수현 앞에 어느 날 갑자기 송미호가 나타났다. 불과 2년 전이었다.
쾌락에 청춘을 흘려보내고 고생길에 생계를 이어간 듯 50줄이 가까워진 송미호는 형편이 녹록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까뭇까뭇한 기미와 곳곳 잔주름이 베인 송미호를 바라보는 수현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수현의 눈에는 거친 세월이 묻어난 생모가 조금도 불쌍하지 않았다.
송미호 또한 딸을 버린 죄책감이나 별안간 샘솟은 모성애로 수현을 찾아온 건 아니었다.
그간 송미호는 사기꾼 집단의 미끼 역할을 해왔었다. 그런데 지명수배가 내려지며 더 이상 사기를 칠 수 없게 되자 수소문 끝에 딸을 찾아낸 거였다.
무려 25년 만에 수현 앞에 나타난 송미호는 ‘엄마’라는 권리를 내세우며 자신에게조차 없는 모녀의 정을 앞세워 돈을 요구했다.
물론 수현이 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 하지만 집요한 송미호의 협박에 결국 수현은 적지 않은 돈을 생모 손에 쥐어줬다.
이후 송미호는 6개월마다 수현을 찾아오는 중이었다. 문자가 더 편하긴 했지만 이렇게 한 번씩 와서 난리를 쳐야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가 찾은 새로운 생계수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