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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18살의 나라는 하얀 도화지 같았어

[미스터리 추리소설] 나는 미쁘고 의로우사

by 해달 Feb 27. 2025

낯빛이 어두운 조승남이 그의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의 얼굴과 몸 곳곳에는 짙게 올라온 멍과 딱지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승남을 진료한 병원에서는 육체적 상해뿐 아니라 정신적 충격까지 고려해 절대적 안정과 함께 입원치료를 권유하기도 했지만 승남은 이를 거절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그의 어머니가 들어섰다. 손에 들린 쟁반 위에는 도가니탕과 공깃밥, 김치가 놓여있었다.


모친의 등장에도 목까지 이불을 걷어 올린 승남은 두 손을 바들바들 떨며 허공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눈빛이 아직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다.



“승남아, 이것 좀 먹어봐. 도가니탕이 회복에 좋다더라.”

“…….”

“엄마가 직접 사다 우린 거야. 잘 먹어야 빨리 낫지.”

“…….”



여전히 대답이 없는 아들에 침대 옆 간이 테이블 위에 쟁반을 내려놓은 어머니가 깊은 한숨과 함께 방을 나갔다. 그나마 아무도 없어야 반 숟가락이라도 밥을 뜨기 때문이었다.


문이 닫히자 코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린 조승남이 초조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열흘 전, 서울의 한 모텔 침대 위에서 눈을 뜬 그는 곧이어 밀려든 엄청난 통증과 함께 비명을 지르다 모텔 직원의 신고로 병원에 실려 갔다.


전신 타박상과 함께 상처와 출혈이 깊은 조승남을 경찰이 의심하지 않을 리 없었다.


모텔 내부 cctv를 확인한 경찰은 지난 새벽 그가 한 남자의 등에 업혀 모텔로 들어온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깊게 눌러쓴 야구모자에 눈 밑까지 올려 쓴 마스크 탓에 모텔 직원은 남자 얼굴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은 cctv 동선을 근거로 남자를 추적했지만 금세 옆 골목으로 사라진 남자를 쫓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치료를 받은 승남이 안정을 되찾자 경찰이 물어왔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 그게…… 제가 술 마시고 집에 가다 그만 시비가 붙었습니다.”

“시비가 붙은 장소가 정확히 어디죠?”



한눈에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조승남에 경찰이 추궁했다. 하지만 경찰은 상처보다 끔찍했던 악몽을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의 속내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구의동 그린마트 옆 사거리 골목입니다. 중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길래 술김에 훈계한답시고 제가 먼저 싸움을 걸었어요.”

“그럼 그 학생들이 이렇게 만들어놨다는 겁니까?”



고개를 떨군 채 눈빛을 감춘 조승남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저도 맞섰는데 옆 공사장에서 벽돌과 쇠파이프를 들고 온 여섯 명이 한꺼번에 덤비니까 못 당해내겠더라고요.”

“그럼 조승남 씨를 모텔로 데려온 이는 누굽니까?”

“모르겠습니다. 아마 지나던 길에 쓰러져있는 절 보고 모텔로 데려간 것 같습니다.”

“음…… 그런데 왜 병원이 아닌 모텔로 데려갔죠?”

“그건…… 저도 알 수 없죠.”



승남이 대답하자 경찰이 당시 모텔 내부 cctv 녹화 장면을 그 앞에 내밀었다.



“이 남자,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경찰이 화면 속 남자를 지목하자 조승남이 뚫어져라 남자를 바라봤다. 영상 속 자신을 업고 온 남자는 그를 차에 밀어 넣은 납치범 가운데 하나였다.


순간 승남은 엄청난 갈등에 휩싸였다. 납치와 폭행 그리고 협박을 당했다는 말이 그의 혀끝에서 맴돌았다. 놈들을 잡아내 똑같이 응징해주고 싶은 분노가 솟구친 거였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의 간질거리는 입을 틀어막는 중이었다.


「“어떤 꿈도 꾸지 마. 넌 네 인생에 모든 걸 걸었겠지만 난 너한테 모든 걸 걸었거든.”」



“모르는 사람입니다.”



조사를 마친 경찰은 곧 돌아갔다.


뭔가 깔끔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승남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진술과 함께 가해자들의 처벌도 원치 않았기에 경찰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경찰이 돌아간 후 승남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어디선가 납치범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망상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거였다.


잠시 후, 소식을 듣고 달려온 승남의 아버지가 방에 들어섰다.



“너, 꼴이 이게 다 뭐야?”

“다, 다가오지 마! 가…… 가! 으아아악!!”



아버지를 보자 승남은 마치 경기가 들린 듯 괴성을 질렀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아들의 행동에 당황한 가족이 모두 뒤로 물러섰다.



“승남아! 정신 차려!”

“나, 나가!!”



고성을 지르는 승남에 모두 방을 나가자 잔뜩 어깨를 움츠린 그의 귓가에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밤, 재림이 그에게 속삭였던 그의 부친에 관한 이야기였다.



“조길석. 네 아버지이자 기쁨은행 홍제 1지점 팀장.”



지칠 대로 지쳐 점점 감겨오던 승남의 눈꺼풀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다.



“네 부친이 과거에 이미 한 아이의 엄마를 살해했더라고. 너와 똑같은 방법으로.”

“…….”

“5살짜리 딸을 둔 평범한 워킹맘이었어. 조길석이 상사로 오기 전까지는……. 근데 불치병에 걸렸지. 성호처럼.”

“거, 거짓말.”

“그럼 직접 알아보시든가. 참고로 시간은 이번 달까지야. 공개 sns로 네 죄를 자백하는 시간. 시일 어기면 다음은 네 부친 차례다.”

“모…… 뭐라고?”

“잊지 마. 난 너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여전히 생생한 목소리에 고개를 흔든 승남이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몸을 웅크렸다.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거였다.


이번 달까지 공개 자백을 하지 않으면 놈들은 분명 아버지를 납치할 테니까.


다음 날이 되도록 승남은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책상 앞에 앉은 승남이 노트북을 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10월의 마지막, 31일이었다.



***



다음 날.


수현의 안내를 받은 한 여자가 대표실에 들어섰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당차고 명랑한 23살, 홍나라의 음성이 차분했던 적막을 깨웠다.


나라의 인사에 반가운 미소로 화답한 가인이 책상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가인이 앉자 나라가 3인용 소파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았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만큼이나 그 발걸음도 당돌한 홍나라였다.



“수현 씨, 차 좀 부탁해요.”

“네.”



수현이 나가자 시선을 돌린 가인이 나라를 응시했다. 그러자 나라가 특유의 밝은 웃음을 보였다.


가인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라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잘 지냈니?”

“네. 대표님 덕분에 무난히 보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래.”



여전히 밝기만 한 나라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가인이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예정된 연출이었다.


가인이 처음 홍나라를 알게 된 건 용산의 한 보육원 원장이 보낸 편지 때문이었다.


5년 전, 설립 초기의 노아복지재단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였다. 가인 앞으로 도착한 장문의 편지는 곧장 그녀가 홍나라를 찾아가게 만들었다.


보육원 내 명석한 두뇌와 재능이 뛰어난 고2 여학생이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대학에 가지 못할 형편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보육원 원장은 재력가인 가인이 복지재단을 설립했다는 소식에 혹시라도 미래 인재를 위해 후원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편지를 보낸 거였다.


편지를 읽은 가인은 직접 용산 보육원에 찾아가 당시 고교 2학년이었던 홍나라를 처음 만났다.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에 남색교복을 입은 홍나라는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이었지만 가인은 남다른 그녀의 눈빛을 주시했다. 절대 상대 눈을 피하지 않는 또렷한 검은 눈동자가 한 눈에도 아이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아보게 한 거였다.


나라는 그녀가 8살이던 해, 엄마 손에 이끌려 보육원에 왔다고 했다.


도박에 손을 댄 부친이 전 재산을 잃고 집을 나간 후 이삿짐을 싼 그녀의 어머니가 짐을 싣고 가는 트럭에 딸 나라의 자리는 마련하지 않은 탓이었다.


원장 말에 의하면 당시 나라는 며칠 후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를 붙잡지도 칭얼대지도 않은 채 원장 손을 잡았다고 했다.


8살 나이에도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사연을 전해 들은 가인은 별다른 질의 없이 나라에게 후원을 약속했고 1년 후, 나라는 명문대 의대에 합격했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나라는 가인의 전폭적인 후원 하에 학기 내내 학비나 용돈, 생활비를 벌기 위해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 물론 나라가 머물 오피스텔도 가인이 구해주었다.


단, 가인이 나라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은 데에는 조건이 있었다. 의대에 입학한 후 존경받는 의사가 되길 바랐던 거였다.


그런 가인의 의견에 잠시 고민했던 나라는 얼마 후 그 제안을 수락했고 무난히 의대에 입학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동안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예정인 가인을 만나기 위해 그녀가 재단을 방문했다.


물론 자발적인 방문은 아니었다. 가인이 수현을 통해 2년 만에 불러들인 만남이었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 가인은 찬찬히 나라를 관찰했다.


나라의 헤어는 가인과 똑같은 귀 밑 턱선까지 오는 일자형 단발머리였다. 대학 입학 후 나라는 길었던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빨강, 파랑, 노랑, 청록, 은색이 고루 섞인 염색을 했다. 그녀가 대학 4년 내내 고수한 스타일이기도 했다.


어두운 톤에 주근깨가 있는 얼굴은 창백하리만큼 화장으로 커버되었고 빨간 립스틱으로 포인트를 주며 생기를 살렸다. 옷 욕심도 있어 보였다. 다만 머리색 때문인지 주로 흰색을 즐겨 입는 듯했다.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독특함이 패션이 된 시대에 인기는 꽤 많은 모양이었다. 양쪽 귀에 각각 다섯 개, 열 개의 피어싱을 한 그녀에게 더 이상의 화려함도 필요 없어 보였다.


하얀 도화지 같았던 18살의 홍나라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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