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by p id

여러 부분에서 균형이 잘 잡힌 물건들은 우리에게 통제감을 줄 수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알맞은, 적당한, 중도, 중용 이런 키워드를 내포한 사물들이 균형을 갖추고 있다. 다다익선이지만 과유불급이다. 인류는 대대로 어떤 것들이 지속성 있는 가치를 가지는지 알고 있었다.


의자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식당에 가서 자리를 안내받고 의자를 테이블 아래에서 꺼내려는데 잡을 곳이 마땅치 않고 너무 무겁다면 의자를 꺼내려는 우리의 의도를 실행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간신히 잡을만한 곳을 찾고 힘을 내서 의자를 꺼낸 뒤 의자에 앉으면 다음은 착석감이 문제다. 좌판과 등받이가 우리 몸의 크기나 모양과 동떨어져 있다면 몸을 편한 상태로 두고자 하는 의도가 무산된다.


균형이 잡혀있지 않은, 그러니까 너무 무겁거나 너무 조형성에 치중해 있거나 하는 물건은 이런 식으로 우리가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한다. 균형이 잘 잡힌 물건은 사용 전반에서 사용자의 행동을 고려하고 테스트되어 만들어진다. 정말 우리의 통제력을 보존하는 의자는 의자를 꺼내고 앉아서 작업을 수행하고, 용도에 따라 기대고 올라서고 쌓는 등 일어날 수 있는 여러 행위를 고려하고 적절한 수준을 찾은 의자이다.


공간은 어떠한가. 콘텐츠에만 쏟아부은 나머지 동선은 신경 쓰지 못했다면 사람들은 콘텐츠에 도달하지 못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너무 친절해도 문제, 불친절해도 문제다. 상대에게 전부 내주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아껴도 안 된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대상은 적절한 균형을 필요로 한다.


생산자가 균형을 맞추려면 추구하면서 동시에 절제해야 한다. 더 많이 쏟아부어야만 한다거나 오직 덜어내기만 해야 한다거나 둘 중에 정답이 있지 않다. 우리의 삶은 그리 단순하게 이분화되어있지 않다. 균형을 맞춘다는 일은 결국 인간이 사용하고 경험하는 차원에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문제이다. 단지 감각에 의존해서 가늠해 볼 따름이다. 정말 좋은 물건은 시장에 나오기까지 여러 번의 시제품을 거치며 부족하지 않은지, 과하지 않은지, 더하고 덜어내며 개선을 거친다. 시장에 나오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로서 정말 좋은 소비를 하고 싶다면 사물의 탄생 뒤에 숨은 이러한 노력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물건을 직접 써보고, 공간을 경험해 보고, 불편하진 않은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사용자를 혼란하게 만들지 않는지 생각해 보면 생산자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만들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균형을 맞추는 일이야말로 인공지능의 발전이 침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디자인의 정수에 가까운 일이다. 디자인이란 단순히 보기 좋게 꾸미거나 엔지니어링과 같은 기계적 설계의 개념이 아니라 보다 인문학 수준에서 벌어지는 설계 행위이다. 디자인은 인간이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지 등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심리학과 오감과 장인 정신에 의존해야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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