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의 공통점을 꼽자면, 그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들, 가족이 있다는 것이다.
맥시멀리스트인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미니멀리스트 선언을 한다고 해서 집 전체가 미니멀로 바뀔 수 있을까? 나 혼자만의 소소한 실천들이 최선이리. 늘 나에게 옷이 많다고, 흰 블라우스만 몇 개냐고 타박하는 남편이 나보다는 미니멀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짐 정리를 하며 깨달았다. 그는 옷이 아닌 다른 것들에 맥시멀을 추구하고 있었음을.. 우린 역시 한통속이었음을.. 괜히 죄책감 가질 뻔했잖아?ㅎ
맥시멀리스트 집의 가장 큰 조력자는 아이들이다.
-아이들 인형을 한데 모으면 우리 집 거실의 1/3을 차지한다.(+친정에 보관 중인 인형들도 한 보따리..) 침대에 다 품고 자는 인형들인데 주객전도라 아이들은 인형 옆에서 쭈그리고 자는 게 보통이다. 어느 날, 큰 아이 얼굴에 뾰루지가 생겨서 이 때다 싶어 인형들을 몰아낼 생각으로; 빨래를 했다. 아이들과 이제는 보내줄 인형을 정해 보려 했지만.. 인형 하나하나 보면 왜 이렇게 귀엽게 생긴 건지.. 인형의 유독 커다란 눈망울이 불쌍해 보여서 이번에도 실패다.
- 인형이 안 되면, 둘째 자동차라도 좀 버릴 수 있을까.. 싶어서 아이에게 물어보는데 하나하나 또 사연이 있다. (중간에 몰래 버린 것도 많음 ㅠㅠ) 이건 Pedro가 준 건데. 이 자동차는 Ben이 생일파티 때 준 건데. 프랑스 학교 생활하면서 받아 온 추억들이라 사연 들어주다가 또 못 버린다; 둘째는 기억력이 안 좋은 편인데 물건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어디서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기억한다. 여행지도 장난감으로 기억해서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을 샀던 곳이 곧 기억에 남는 여행지이다. ㅎ
- 에잇. 아이들 물건을 버릴 수 없다면, 내 물건이라도 더 버려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50리터 종량제 봉투에 하나 둘 담기 시작했다. 흠.. 검은색 종량제 봉투는 없는 걸까. 봉투가 비치니까 애들이 또 귀신같이 보물찾기 하듯 물건을 주워 온다. '엄마, 이거 버릴 거면 나 주라~~.' 심지어 내가 버린 쓰레기를 서로 갖겠다고 싸운다. '얘들아, 엄마가 안 버리고 그냥 갖고 있을게.. 싸우지 말자, 우리'. 이런, 내 물건 버리기도 쉽지 않구마. ㅎ
맥시멀리스트 가정의 두 번째 조력자인 남편,
내가 세일 상품을 좋아한다면, 남편은 사은품 킬러다. ㅎㅎ; 축제나 행사가 있을 때면 어디서 그렇게 행사 깃발을 구해 오는지.. 애들 두 명이라고 굳이 한 개 더 구해와서 두 개를 꼭 채운다. 집에 굴러다닐 때 버리는 건 내 몫.. 사은품뿐만이 아니다. 기념품/시즌 한정 제품에도 눈 돌아간다. 맥도날드 해피밀에 괜찮은 캐릭터가 나오면, 여러 군데 방문해서라도 캐릭터를 모아 아이들에게 선물로 준다. 여보.. 그거 없어도 우리 집에 장난감 충분히 많은데..ㅎ; 더 웃긴 건 애들이 그걸 꼭 구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는 거다. 이렇게라도 한정판을 모아 보고 싶은 아빠의 취미인 걸까; 레고 재테크를 한답시고 옷장 위나 구석구석에 레고 박스를 박아 두는데.. 이것도 내게는 불필요한 물건인지라 자꾸 눈에 거슬린다. 팔아야 재테크가 될 텐데 문제는 아까워서 팔지도 못 한다. 좁은 집은 레고테크 하기엔 충분한 공간이 아닌 것 같다.
프랑스에 살 때, 파리 올림픽 보러 가서 홀린 듯이 기념품을 사들여댔다; 기념품 살 때만큼은 남편의 제한이 없어서 나도 프랑스에서 억눌려 있던 소비욕을 마음껏 표출했었는데 지금은 약간 후회가 되기도 한다. 머그컵이야 쓰면 된다 쳐도 옷은 왜 이렇게 많이 샀을까. 사진에 없는 기념품도 많고, 아이들 옷만 열 벌이 넘는다. 재판매도 안 될 텐데.. 어쩔 수 없이 올여름 아이들 옷은 파리 2024 패션이다 !! ㅎ
우리 가족 모두가 맥시멀리스트였음을 인정하며, 나의 조력자들과 약속했다.
조력자 1, 아이들) 인형과 자동차는 더 이상 사지 않는다. 꼭 사야 한다면 기존 아이와 작별한 후에 새 친구가 들어올 수 있다.
조력자 2, 남편) 아무리 공짜더라도 집에 필요 없는 사은품이나 기념품은 들이지 않는다. 남편에겐 굉장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공짜라고 막 나눠 주는데 '전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할 용기.
작은 것부터 실천합시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