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내가 현재의 너에게
미래의 내가 현재의 너에게. 버텨주면 버텨준 대로 애썼다고. 도전하면 도전한 대로 용기 있었다고. 그렇게 고마워할 테니 너는 내 걱정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이유가 뭐든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그 선택을 최선으로 만들어 줄 준비가 되어있고 너 역시 나이니 네가 얼마나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있겠지. 그러니 너는 부디 두려움과 불안에서 자유롭게 너만의 걸음을 내디뎌 줘.
2021년 10월 25일 (교사 4년 차, 조각글 계정에 남긴 글)
어렸을 때 '해리 포터'를 좋아했다. 해리와 함께 자란 세대로서 번역본이 원서의 출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때는 원서를 사서 이해가 되지 않는 글자들 사이로 ‘볼드모트’를 찾아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결론을 짐작해보곤 했다. 영화는 당연히 전편을 여러 번 봤고. 그런 해리 포터 시리즈를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아즈카반의 죄수' 편에서 디멘터(마법사 감옥인 아즈카반의 간수로 삶에서 끔찍한 기억만 남기는 존재)로부터 해리와 시리우스를 지켜주는 누군가의 패트로누스(행복했던 기억을 매개로 하는 보호 마법)가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해리의 예상과 달리 패트로누스 마법을 사용해 해리를 살려준 건 아빠가 아니었다. 시간 여행을 한 자기 자신이었다. "지금쯤이면 나올 거야"라며 한참을 기대에 찬 눈으로 풀숲을 바라보다 어떤 깨달음 끝에야 '그게 나구나'라는 표정으로 지팡이를 들고 나서는 해리의 모습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강렬했던 건 해리 포터의 장면이지만 이런 식의 서사는 꽤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스즈메가 길을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자신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거나. 아이유의 '이 지금'에서 아득한 미래에서 날아온 자신이 그곳도 바보들 투성이라며 반짝이는 건 오히려 지금이라고 알려준다거나.
같은 맥락에서 기록의 가장 큰 장점은 과거의 나와 만나 그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지난 시절의 사진을 보면 "와, 나 진짜 예뻤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분명 내가 기억하는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힘들었는데. 객관적으로 외모가 어떤지와는 상관없이 사진에서도 그 나이 특유의 해사함이 새어 나온다. 아이들에게 어려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나이를 밝히지 않았던 초임 교사 시절 - 지금은 아이들이 나이를 물어보지도 않는다! -의 사진도 지금 보면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 통통한 게 귀엽기만 한 것처럼. 사진을 자주 보지는 않지만 그래서인지 사진 속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고 느낀다. 지금도 너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나 예쁘다고. 그 안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이 가장 찬란한 순간이라고. 그래서 자꾸 사진을 남기게 된다. 되도록이면 기억을 더 생생하게 불러일으키는, 내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남기기도 한다. - 대머리가 되었을 때도 프로필 사진을 찍었는데 정면에서 매끈한 뒤통수가 잘 보이지 않아 작가님께 부탁하고, 그 결과로 목이 꺾일 듯한 불편한 자세로 한참을 촬영한 끝에 마음에 드는 대머리 사진을 건졌다. 재밌고 웃긴 시간이었는데 이 사진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얼마나 멋질까! -
과거의 나는 글로서 더욱 분명한 목소리를 전달하기도 한다. 어떤 시절에 내가 쓴 글을 읽으면 "와,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라며 신기할 때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에게 닥쳤던 시련을 어떤 자세로 대했는지, 직업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랑, 행복, 분노, 슬픔, 외로움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표출했는지 등등. 많은 경우 "이것도 이겨냈는데 이번이라고 못 하겠어."라는 자신감까지 차오른다.
똑똑 떨어지며 시간을 늦추는 드립 커피와 고소한 커피 향, 움직이기 싫은 날 거울에 비친 운동복 입은 나의 모습과 땀 뻘뻘 흘리다 마시는 시원한 물 한 모금, 녹아내린 하루 끝의 샤워, 헛소리가 대부분인 대화와 미움받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읽을 수 있는 마음들, 대청소가 끝난 후 물 준 화분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기지개 켜듯 가지를 위로 뻗는 우리 집 식물 관찰, 돌려 읽는 책 아닌 사랑, 해가 저문다고 표현함이 자기중심적이도 괜찮고 예쁘기까지 한 노을이라는 시간, 나를 알아주고 보듬어주는 손길. 아, 그리고 음악.
2023년 7월 21일 (교사 6년 차, 조각글 계정에 남긴 글)
그렇게 잊고 있었던, 내가 좋아하며 그래서 나를 지켜주는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의 나도 글을 쓴다. 지금의 나를 잘 돌보는 한편 미래의 나에게 말을 건네는 하나의 방식으로.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구부러진 선이라면 어떨까. 모르는 새 과거와 현재, 미래가 수없이 교차하고 있다면.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가 나만 아는 아픔을 다독이고 손을 잡아 오늘로 데려올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라면. 또 미래로 이어지는 한 갈래의 가능성이라는 문을 열어주거나 다른 쪽의 실을 잘라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도 현재의 나뿐이라면. 구원자를 기다리는 대신 내가 나 스스로의 유일한 구원자라고 믿는 순간 삶의 순간순간이 내게로 다가와 눈부신 선물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