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나 Sep 26. 2024

도시쥐의 시골 적응기

러스틱 라이프의 시작

해 질 녘 운전은 참 좋다. 눈앞의 구름은 핑크빛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지는 태양이 눈 아프지 않을 만큼 친절하게, 서서히 진다. 고속도로에서 나와 집까지 오는 길은 처음부터 마음을 파고드는 구석이 있었고, 이제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빠르게 달릴 수 있고, 적당히 커브가 있어 50킬로 넘게 직진만 하던 지루한 마음을 환기해 주고, 무엇보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도시와 멀어지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 고개를 들이밀면 메말라 있던 흙이 뒤집히고 물이 차고, 벼에 이삭이 나고 키가 자라 고개를 숙이는, 계절의 변화를 뽐내는 풍경이 그곳에 있다. 집에서도 좋아하는 구석구석이 생겼는데, 그중에는 벽난로가 있다. 벽난로 자체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아 익숙하지 않은 듯 초조하게 불씨를 지키는 마음이 있어 따뜻하다. 탁탁, 하며 타는 장작 소리와 도란도란 주고받는 말소리, 열기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시간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리고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던 화장실의 천창은 맑은 날에는 물줄기를 부수며 무지개를 보여주고 비 오는 날에는 빗줄기를 맞는 것 같은 낭만을 준달까. 어쩌면 이 쪽이 주말의 삶이 아니라 평일의 삶이어도 괜찮겠다.
2021년 10월 22일 (평일에는 대도시의 자취방에 살고 주말에는 부모님의 전원주택을 오가던 시절, 조각글 계정에 남긴 글)


올해 3월에 본가로 들어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자취를 시작했으니 꼭 7년 만이었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하기도 했지만, 자취를 했던 유일한 이유는 '직장이 가까워서'였고, 그 '직장'이 병 휴직으로 의미를 잃자 자취의 의미도 함께 사라진 거였다. 가족들은 나의 항암 치료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서울에 집을 알아보았다. 치료를 시작하면 병원에 자주 가야 할 텐데, 지금 집은 너무 먼 것 아니냐는 걱정 때문이었다. 애매한 시기였기 때문인지 전세 물량도 없는 데다가 조건이 맞는 집을 찾기가 어려워 중도에 포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 된 일이었다. - 이런 식으로 당시에는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이만한 행운이 없었다 싶은 일들이 가득한 게 삶인 것 같다. - 실제로 병원에 가는 횟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고 길었던 수술 후 회복 기간과 항암 치료 기간에 아파트에 갇혀 있었다면 정말 갑갑했을 거다. 돈 문제는 둘째 치고서라도. 대신 나는 비교적 넓은 집 안에서 나를 위해 마련된 2층 공간을 오르내렸고 - 이마저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내가 가진 근육이 모두 사라졌을 것 같다. -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하루에 한 번씩 집 앞으로 산책을 나갔다. - 경사도가 무지막지한 마을이지만 운동이 필요한 입장에서 불평할 필요는 없었다. -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드물고 마주치더라도 모두 안면이 있는 사람들인 시골에서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대머리가 된 것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곤 했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의 공원에 모자나 비니 하나 쓰고 나갈 수 있었을까? 나가기는 했겠지만 어쩐지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이유 모를 외로움을 느꼈을 것 같기도 하다.


급한 수술 일정으로 8월 말이 되어서야 자취방을 정리했다. 그간 친구를 만나는 일정이나 가져올 짐이 있을 때 종종 자취방에 들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대체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살았던 걸까'라고 놀랄 만큼 빠르게 시골 삶에 적응했다. 자취방에서는 실외기, 차, 문을 여닫는 이웃들과 어제의 저녁은 잊었다는 듯 오늘의 저녁을 축하하는 창문 밖 사람들의 소음과 식지 않는 아스팔트의 열기, 분명한 공간의 시작과 끝에서 오는 답답함이 가슴을 옥죄었다. 아, 분명 햇빛이 잘 들고 붉게 물드는 노을을 보기에 명당인 남서향 방이었고 나만의 공간이라며 처음으로 꾸미고 가꾼 공간이었는데도, 어쩌면 심리적인 원인도 한몫했을 것이다. 매일같이 쫓기듯이 아침을 먹거나 싸고 - 아침을 안 먹는 동료 선생님들이 신기했던 기억이다. 말하는 직업이다 보니 아침을 안 먹으면 수업할 힘이 없었는데. - 퇴근하고 돌아오면 기운이 없어 한참을 누워있던, 어쩌면 '교사 김유나'가 '인간 김유나'로 내려오는 공간이자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교사 김유나'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도 많은데 최근에는 개학이 다가오는 게 예년보다 지나칠 정도로 두려웠다.


'시골 특유의, 소박한'이라는 뜻의 단어 'rustic'이라는 단어를 품고 있는 러스틱 라이프는 일반적으로 4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떠나기', '머물기', '자리 잡기', '둥지 틀기'. 나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 머무는 단계에 있는 게 아닐까. 매일 알람이 아닌 새소리에 잠에서 깨고, 눈을 돌리면 푸르름이 있는 곳에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면사무소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광역 버스를 갈아탄다. - 차를 끌고 바로 서울로 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운전이나 주차의 피로도를 덜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를 30분가량 기다리고, 4-50분 정도의 시간을 지나 강남역에 도착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울 약속은 강남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또 버스나 지하철을 갈아탄다. 집에 올 때는 여느 경기도민이 그렇듯 방향만 바꾸어 같은 여정을 되풀이한다. 시골에 젊은이들이 없는 이유는 인프라뿐만 아니라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니 프리랜서가 되지 않는다면 결정이 필요한 시기도 올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자연이 주는 치유 능력은 분명히 있다. 도시에서 살 때는 초록이 그리워 주말이면 근교로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막상 시골에 살면 근교가 아니라 도시의 편리함이 그리운 것처럼. 이제는 초록을 찾아가지 않아도 될 만큼 마음속에 초록이 가득해져 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하면 대부분의 일이 해결되는 아파트와는 다르게 전원주택의 삶은 부지런히 땀을 흘려야 굴러가기도 한다. 뽑지 않으면 잡초가 키보다 커지는 건 순식간이고 데크 색깔이 변한다거나, 잔디가 썩는다거나, 길고양이가 나타나 똥을 싼다거나 등등, 예상치 못하게 엉덩이를 떼고 해야 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어쩌면 인간에게 단순 노동은 힐링의 역할을 해주는지도 모르겠다. 잡초를 뽑고, 데크에 페인트를 덧칠하고, 잔디를 갈아주고, 고양이 똥을 치우는 아빠의 모습이 어쩐지 만족스러워 보이는 건 나의 바람만이 아닐 것이다. - 부끄럽지만 사실 아빠 덕분에 내가 윤택한 전원생활을 누리고 있다. - 자극적인 쇼츠를 한참 동안 넘기는 손가락의 움직임보다 땀을 흘리는 노동으로 어떤 마음을 해소할 수 있도록 우리는 설계된 건지도 모르겠다.


한창 항암 치료를 받으며 언젠가 제주 요가원에서 만나고는 참 예쁘다고 생각했던 배롱나무를 마당에 심었다. - 역시 엄마가 구입하고 아빠가 심었으며 난 모래 조금을 덮고는 내가 심었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 7월에 핀다더니 새로운 땅으로 옮겨 심어서 이번 해는 적응하느라 에너지를 쏟아 건너뛰나 보다 했는데 8월이 되어서야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이렇게 역경을 딛고 만개하는 한 생명에는 자꾸 나를 대입하게 된다. 나는 이다음에 어디로 갈까를 고민하기 전에 이 시골을, 그 속에 가득한 생명력을 조금 더 즐겨보려고 한다. 집 안에서도 양말을 신고 패딩을 입고 담요를 두르는 차가운 겨울이 오기 전에 마당에 자주 나가 좋은 공기를 마음껏 마셔야지. 다음에 어디를 가더라도 이만큼의 초록과 초록만이 주는 감각을 함께 가지고 싶다고 소망해 본다.

이전 12화 슬기로운 소비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