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나 Sep 17. 2024

슬기로운 소비생활

나만의 미니멀라이프 찾기

"우리는 오늘 집 앞 마트에 가면 가장 신선한 재료를 구할 수 있는데, 왜 냉장고에 각종 재료들을 쟁이다가 제때 소비하지 못해 신선도가 떨어진 음식을 먹거나 힘들게 쓰레기로 처리할까요?" 언젠가 학교에서 환경 관련 사업을 맡았을 때 초청한 강사님이 아이들에게 한 질문인데, 꽤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나는 자취를 하고 있었고, 혼자 먹는 양은 적을뿐더러 하루쯤은 약속이 있어 외식을 하다 보면 주말에 집밥을 해 먹겠다며 호기롭게 장 본 재료가 상해있곤 했다. - 특히 오이! 정말 잘 무르기 때문에 자취러가 장을 볼 때는 기피 대상이다. - 조금 더 부지런하면 환경을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조금 더 신선한 음식을 대접할 수 있구나, 그때 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깨달음은 잠시고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가는 건 참으로 쉬는 일이라서, 얼마 전 이사를 준비하며 끝없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집안 곳곳에는 사놓고 까먹거나 방치해 둔 물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뜯지도 않고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샴푸와 린스도 있었다. 자주 쓰이는 장소에는 둘 곳이 없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다 보니 일어난 일이지만, 버리는데 참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게 다 돈 주고 산 것들인데. 환경에도 좋지 않을 텐데. 그렇게 이사를 할 때마다 혹시 내가 쓰레기더미에 공간을 내주느라 얹혀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로 물건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이사에서는 멀쩡하지만 손이 가지 않는 옷들을 나눔 가게에 기부하였고, - 직접 가기 어려운데 세 박스 이상이면 방문 수거를 하는 나눔 가게가 있었다. 세 박스를 채우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닫히지 않는 박스를 테이프 여러 겹으로 겨우 동했다. - 난생처음 중고거래 앱을 깔고 판매와 나눔을 해보았다. - 아무리 싸게 올려도 돈을 받고 팔려고 하면 과정이 까다로운 반면 나눔으로 올리면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하는 연락이 순식간에 쌓였다. 빨리 처분하는 것도 중요하니 청소기, 막대 걸레와 청소포, 휴대폰 거치대, 실내 자전거, 공유기를 무료로 나눴다. - 재활용이 까다로운 한국에서는 버리는 것도 일일 때가 많은데 나눔은 편리한 장소로 물건을 찾으러 와주기도 하고 결국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인다는 점에서 보람차게 느껴졌다.


'minimal'은 '최소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를 들으면 텅 빈 방 안 이미지가 함께 떠오른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이라는 한도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인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정리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은 덤이다. 그러나 자취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아무리 1인 가구라도 사람 한 명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짐은 꽤 많다. 가족이 살기 위해 필요한 짐의 양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세탁기, 냉장고 등의 필수 가전, 가장 간단한 요리를 위한 전자레인지, 식기류, 계절별로 바꿔주어야 하는 이불과 옷... 여기에 취미 하나만 있어도 짐은 배가 된다. - 운동 기구나 장비, 악기나 미술 재료 등 대부분의 취미는 부피가 큰 도구를 필요로 하니까. - 그러니 혼자든 함께든,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많은 짐이 꼭 미니멀라이프의 반대, 맥시멀라이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준에 맞는 차를 타면 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이 괜찮은지 먼저 묻지만 능력 밖의 차를 타면 차가 상했을까 화부터 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우선하게 되는 한계가 구매의 기준선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깔끔한 공간과 선순환을 위한 미니멀라이프도 필요 없는 물건을 모조리 정리하거나 생활습관을 180도로 바꾸자는 몇 가지의 원칙을 따라 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과분한지, 어디까지는 적정 시기에 쓸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오히려 상품의 질을 떨어뜨리는지, 싼 값이지만 수명이 한 계절뿐인지 혹은 약간 값이 나가더라도 오랜 기간 함께 갈 수 있는지, 적정과 낭비 사이에서 저마다의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조금 불편하더라도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나만의 미니멀라이프는 시작된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죄책감과 의무감으로 갈 수 있는 곳은 한계가 분명하기에, 나에게 재미있고 유용한 선택을 해보기로 다짐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