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향해 큰 길을 막 건너려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얼룩무늬 고양이가 해피의 앞을 가로막았다. 우람한 체격에 다부진 얼굴, 거친 털과 매서운 눈매가 엄청 사나워 보이는 수컷 고양이었다. 한쪽 눈이 검은 안대를 한 것처럼 까매서 더 험상궂게 보였다.
“캬오오옹!”
얼룩무늬 고양이는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거친 포효를 했다. 해피는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에 멈칫하고 한발 물러섰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군데 허락도 없이 함부로 길을 건너려는 거야, 어?”
얼룩무늬 고양이가 호통치듯 소리쳤다.
“내 이름은 해피, 저 윗동네에 사는데 고, 아니 도서관에 가려고 해.”
해피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뭐? 도서관이면 도서관이지 고, 아니 도서관은 또 뭐야? 이 밤에 도서관엘 간다고? 거긴 왜 가는데? 야한 소설책이라도 보려고? 하지만 도서관은 여섯 시에 이미 문을 닫았어. 윗동네 산다는 자식이 그딴 것도 몰라?”
“어, 모, 몰랐어.”
“그러고 보니 너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희귀꼬물이구나! 그런 기본 상식도 없는 걸 보니…”
해피는 무식한 고양이 취급 당하는 게 좀 억울했지만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삼 년 동안 제 발로 집 밖을 나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도서관엘 대체 뭐하러 간다는 거야, 어?”
얼룩무늬 고양이가 해피를 요리조리 꼬나보며 심문하듯 물었다.
“어, 그, 그게… 거, 거기 산다는 칸슈에게 무, 물어볼 게 있어서…”
해피는 갑자기 말까지 더듬는 자신이 부끄럽고 당황스러웠지만 무서운 동네 깡패 앞에서 몸과 맘이 저절로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칸슈에게 물어볼 게 뭔데? 물어볼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놈한테 뭘 물어볼 게 있다고. 자고로 고양이라면 길을 알고 바람을 알아야 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해피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얼룩무늬 고양이의 기세에 눌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칸슈한테 뭘 물어보려고 하는데?”
“행복… 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해피의 목소리는 점점 더 기어들어갔다.
“뭐? 행복?!”
얼룩무늬 고양이가 거친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갑자기 배가 아픈 거야?”
당황한 해피가 놀라서 소리쳤다. 해피의 걱정이 무색하게 얼룩무늬 고양이가 벌떡 일어나 정색을 하더니 해피를 쏘아보았다. 해피는 더욱 주눅이 들었지만 영문을 알 수 없어 얼룩무늬 고양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제 보니 찌그러진 한쪽 눈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행복이라고?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바보야,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얼룩무늬 고양이가 애꾸눈을 부릅떴다. 그 당당한 기세에 잔뜩 위축이 된 해피는 자신이 뭘 찾아 나섰는지도 까먹을 뻔했다.
“행복이 없어?”
해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따져 물었다.
“난 그런 거 몰라. 그러니까 적어도 나한텐 없는 거지.”
얼룩무늬 고양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해피는 곁눈질로 얼룩무늬 고양이를 좀 더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쪽 눈은 찌그러져 있고 한쪽 귀는 잘리고 다리도 굵기가 다른 짝짝이어서 움직일 때마다 약간 절룩거렸다. 털고르기를 얼마나 오래 안 했는지 거칠어 보이는 털은 여기저기 뭉쳐 있고 몇 군데는 듬성듬성 쥐가 파먹은 것 같이 비어 있었다. 해피가 생각하기에도 행복을 말하기에 쉽지 않은 조건인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넌 집이 어디야? 이름은 뭐야?”
해피가 용기를 내서 물었다.
“여기. 여기가 내 집이야.”
얼룩무늬 고양이가 서 있던 땅 위를 턱으로 가리켰다.
“길고양이가 집이 어딨어? 길이 집이지. 그래서 내 이름도 로드야. 미국말로 길이란 뜻이래. 칸슈란 놈이 이름 하나는 잘 지어 줬어. 로드, 이름 좀 그럴 듯 하지 않냐?”
“로드… 그래, 멋진 이름이야.”
해피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듯 로드는 찌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깐두루 이 세상에 고양이는 세 종류가 있는데 말이야. 하루 종일 집구석에 쳐박혀 있는 집고양이, 집과 길 반반 걸치고 있는 반집반길 고양이, 그리고 나같이 길을 집삼아 지내는 길고양이가 있지. 나는 길에서 태어나 지금껏 길에서 살아왔어. 순수한 길고양이란 얘기지.”
“순수한 길고양이?”
“그래. 한 번도 집고양이었던 적이 없는 순도 백퍼센트 길 위의 고양이!”
로드의 쉰 목소리에서 엄청난 자부심이 뿜어져 나왔다.
“이것 봐, 집고양이! 네 생각에 보통 길고양이가 몇 년쯤 살 거 같냐?”
로드가 갑작스레 질문을 던졌다. 해피는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들어 보지도 않은 주제여서 솔직하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모르겠지. 배부른 집고양이가 뭘 알겠어. 빗물 젖은 사료맛을 알기나 하겠냐고.”
로드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해피는 기분이 나빴지만 꾹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길고양이 평균수명이 삼 년이래. 나도 칸슈한테서 주워들은 얘기야. 근데 내가 몇 살인지 알아?”
해피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로드의 용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양이가 고양이의 나이를 알아맞히는 건 사람이 사람의 나이를 알아맞히는 것 같지 않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삼 년 하고도 삼 년, 그리고 또 삼 년이야. 고양이는 아홉 번 생을 산다고 누가 그러던데 그런 계산이면 나는 벌써 세 번째 삶을 사는 중이라는 얘기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나에겐 하루 하루가 한 번의 삶이야. 나에게 내일은 없으니까. 하루를 살아내면 또 하루가 덤으로 주어지는 거란 말이지. 그러니 행복 따위가 무슨 대수겠냐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알겠냐구, 어?”
로드가 소리치며 해피를 노려보았다. 해피는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간 로드가 또 어떤 호통을 칠지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해피는 이제 그만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난, 그만 가볼게.”
해피가 로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아니,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로드가 갑자기 앞발을 벌리고 덩치를 더 크게 만들며 길을 막아섰다. 해피는 겁이 났지만 화도 났다.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저항심이 불쑥 솟아올랐다.
“비켜줘.”
해피가 당돌하게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안 돼.”
로드도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왜 안 돼?”
“여긴 내 구역이야. 그러니까 내 맘대로야.”
“그런 게 어딨어?”
“어딨긴? 여기 있지. ‘로드에서는 로드의 법을 따르라.’ 그런 말도 모르냐? 넌 집을 나왔다니 집고양이, 난 길이 집인 길고양이, 내 길을 내 길이라 말하는 게 잘못된 걸까?”
로드가 억지를 부렸다.
“어쨌든 난 지나가야 해.”
해피도 고집으로 맞섰다.
“왜? 이 길을 왜 꼭 건너야 하는데?”
로드가 다시 취조하듯 물었다.
“왜냐하면… 고행점에 가야 하니까.”
해피가 담담하게 사실을 털어 놓았다.
“뭐, 고행점?! 아까는 도서관에 간다더니 이젠 고행점이야?”
로드의 애꾸눈이 점점 커지더니 등 근육까지 꿈틀댔다.
“이 밤에 고행점엘 간다고? 야, 그건 내가 평생 들은 거짓말 중 최고의 거짓말이다.”
로드가 거칠게 쏘아부쳤다.
“뭐? 거짓말?”
“그래, 거짓말! 지금껏 그런 허황된 말을 하는 고양이는 하나도 못 봤거든. 고행점에 간다고? 네가 미친 게 아니라면 거짓말을 하는 거지.”
“뭐? 미쳐? 너 지금 나 화나게 했어!”
해피가 인상을 팍 쓰고 씩씩거리며 말했다.
“허허, 화가 나셨다? 그래서 뭘 어쩌려고?”
로드가 야비하게 웃으며 해피를 약올렸다.
“싸울 거야, 네가 원한다면. 난 억울한 건 못 참거든.”
해피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왜 이렇게 전투적이실까? 털에 윤기가 좔좔 흐르고 얼굴에 귀티가 철철 넘치는 부잣집 도련님이…”
해피는 로드의 야유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 좋아. 그럼 나랑 같이 고행점에 가지 않을래?”
해피는 허를 찌르는 방법을 택했다. 로드는 해피의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했는지 손사레를 치며 한발 물러났다.
“아니, 난 그럴 생각 없어. 그럴 시간도 없고.”
“왜? 왜 그럴 시간이 없어?”
“오늘 밤 중요한 일이 있거든.”
“중요한 일? 무슨 일인데?”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 결투가 있을 예정이야.”
“결투? 싸운다고?”
“응. 엄청난 결투가 될 거야.”
로드의 표정은 결전을 앞둔 장수처럼 결연하고 비장했다. 해피는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고 싸움 구경을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호기심은 참을 수 없었다.
“누구하고 싸우는데?”
“열쇠.”
“열쇠?”
“응. 철물점 고양이야. 자물쇠와 열쇠가 고등어무늬 쌍둥이 형젠데 형 자물쇠는 지난 겨울 교통사고로 죽었어. 열쇠만 남았지. 목에 열쇠목걸이를 걸고 다니는데 행운의 열쇠래나 뭐래나 그 열쇠 덕에 자신은 살아남았다고 믿고 있지. 두 형제가 함께 길을 건너다 사고가 난 거거든. 근데 성격이 아주 더러운 놈이야.”
해피는 ‘너보다 더 더러운 고양이도 있어?’라고 묻고 싶었으나 꾹 참고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열쇠하고 왜 싸워?”
“나를 화나게 했으니까.”
로드의 등 근육이 다시 꿈틀댔다.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해피의 호기심이 점점 커졌다.
“나를 모욕했어. 정확히 말하자면 내 사랑을 모욕했어. 내가 사랑에 빠졌거든.”
로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누구와 사랑에 빠졌다는 거야? 설마 열쇠와?”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로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누구?”
“있어. 노래라고 이 구역 최고의 미녀야.”
“뭐? 노래를 부르는 고양이 노래? 파란 리본을 맨 그 노래?”
“어, 어떻게 알아?”
로드가 깜짝 놀라며 경계하듯 물었다.
“오다가 노래의 노래를 들었으니까.”
해피는 노래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음… 어떻게 생각해?”
그 순간 바람에 실려온 꽃향기 때문이었을까. 로드는 갑자기 모드 전환을 한 선풍기처럼 목소리가 부드러워졌고 표정도 온화해졌다. 거칠게 솟아있던 털마저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한마디로 완전 딴 고양이가 된 것 같았다.
“뭐, 뭘 어떻게 생각해?”
해피가 당황해서 물었다.
“노래 말이야.”
로드가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노래? 음… 아름답다고 생각해.”
“너도 그렇지? 그래, 넌 뭘 좀 아는 고양이구나. 내가 노래가 부르는 노래가 좋다니까 열쇠가 ‘너 따위가 노래를 알아?’라며 날 모욕했어. 자기는 노래가 부르는 노래는 거의 다 외우고 있다나 뭐 그렇게 자랑을 해대면서. 정말 되게 재수 없는 놈이야. 가만 안 둘 거야. 그래서 오늘 결투를 하기로 했지.”
분노에 찬 로드의 목소리가 다시 거칠어졌다. 해피는 걱정스러웠다. 기세등등한 로드를 보니 싸움은 열쇠라는 고양이의 패배로 끝날 게 분명해 보였다. 피튀기는 결투를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철없던 시절의 아픈 추억도 떠올랐다.
“오늘은 내 묘생 최고의 날이 될 거야. 그동안 길 위에서 많은 결투가 있었지. 영광의 상처들이 내 몸 곳곳에 남아 있어. 하지만 오늘은 차원이 다른 혈투가 될 거야. 내가 오늘을 위해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알아? 마침 오늘 비건이라는 자식이 최고급 한우라며 내 만찬을 준비해 줬어. 맛이 기가 막히더라.”
로드는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사양한 1등급 한우가 그새 로드의 뱃속으로 들어갔다니 로드는 어쨌거나 먹을 복은 있는 고양이임에 틀림없다고 해피는 생각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를 씹으니 더욱 전투력이 불타올랐어. 내겐 밤새워 싸울 힘이 생겼다구!”
로드가 흥분한 듯 꼬리를 부풀리며 말했다. 로드는 진정 생애 마지막 결투를 각오하는 듯 했다.
“그렇지만… 난 폭력은 싫어해. 어떤 이유에서든…”
해피는 겁이 났지만 성격대로 소신발언을 했다.
“폭력? 폭력을 좋아하는 고양이도 있나? 미치지 않고서야…”
로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해피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싸우려고 해?”
그제서야 해피의 생각을 알아챈 듯 로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이봐 아깽이. 싸우는 덴 주먹만 있는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있는데? 그리고 난 아깽이가 아니야. 난 여섯 살이라구.”
해피가 당당하게 다리를 벌리고 서서 말했다.
“여섯 살? 생각보다 나이는 먹었구나. 철없이 행복을 찾아 나선다기에 세 살쯤 된 줄 알았지. 하지만 아홉 살 길고양이한테 여섯 살 집고양이는 아깽이나 다름없어. 미안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그리 이해해. 알겠냐, 어?”
해피는 자존심이 상해 더 따져묻고 싶었으나 로드의 결투가 더 궁금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주먹 말고 뭘 갖고 싸운다는 거야, 오늘밤 결투에서?”
“노래.”
로드가 비장하게 말했다.
“노래?”
“노래가 부르는 노래 알아맞히기 시합이야.”
“뭐? 정말?”
해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로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너도 ‘너 따위가 노래를 아냐?’고 말하려고?”
“아니, 아니야! 난 그런 고양이가 아니야.”
해피는 서둘러 그렇게 말은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얼굴도 모르는 고양이 열쇠 편을 들고 있었다. 로드와 음악은 그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았기 때문이다.
“난 베토벤을 좋아해. 제일 좋아하는 곡은 엘리제를 위하여.”
로드가 고백하듯 말했다. 해피는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걸 애써 참았다. 처음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로드에 대해 알 수 없는 연민마저 샘솟았다.
“내가 노래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더 나쁜 악당이 되었거나 어쩌면 벌써 세상을 떠났을지도 몰라. 난 엄청 거칠게 살았거든. 길 위에서 살아남자니 도둑질과 쌈박질을 피할 수가 없었단 말이야. 근데 노래의 노래를 듣는 순간 난 완전 다른 세상을 경험했어. 마법에 걸린 듯 갑자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거친 생각, 악한 생각이 사라져 버리는 거야.”
로드는 진심으로 음악에 대한 사랑고백을 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악당의 반전에 해피는 당황스러워졌다. 로드의 결투가 몹시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자신 있어?”
“당연하지!”
로드가 씩 웃으며 명쾌하게 대답했다. 해피는 로드의 자신만만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항상 노래의 노래를 들으니까 당연한 거 아냐? 난 노래에게 제목을 묻곤 했거든. 잊어버리면 묻고 또 물었지. 열 번 백 번… 노래가 유일하게 내게 대답해 주는 게 그거니까. 처음 노래의 노래를 들었던 날을 기억해. 그날도 오늘처럼 달빛이 환한 밤이었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하얀 고양이가 하늘을 향해 뭐라고 하고 있었어. 뭘 하냐니까 보면 모르냬. 노래를 부른대. 노래가 뭐냐니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거래. 난 바로 설득이 되고 말았어. 그렇게 예쁜 고양이도 처음 보는 데다가 그 고양이가 고운 목소리로 뭐라고 하는데 괜히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는 거야.”
로드는 첫사랑의 기억을 불러오느라 꿈꾸는 로맨티스트가 되어 있었다.
“오늘 밤 노래는 밤새도록 노래를 할 거야. 보름달이 제일 높이 뜨는 밤 12시에 결투를 하기로 했어. 어쩌면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몰라, 승부가 가려지려면.”
해피는 어서 그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로드는 예상과는 달리 무척이나 매력적인 악당이었지만 로드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기엔 마음이 바빴다.
“행운을 빌어. 그러니 나도 고행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줘. 그곳을 찾아가려면 칸슈한테 좀 물어봐야 하니까.”
해피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로드는 순순히 길을 열어 주었다.
“세상에 뭐 별난 행복이 있을라구. 난 길 위에서 행복해. 자유로우니까. 길고양인데 길 위에서 행복하면 됐지. 난 집사도 필요없고 집도 필요없어. 몇 번의 입양 기회가 있었지만 내가 거부했어. 내 생리에 맞지 않아서 말이야. 집사들한테 알랑방구나 뀌며 간식 하나 얻어먹는 거, 그게 행복이야?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행복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는 거니까. 하지만 이것 봐.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고 있잖아. 내가 집고양이었다면 이런 바람을 느꼈겠어?”
“그래. 어쩌면 오늘 밤 나도 열린 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이끌려 집을 나온 건지도 몰라.”
해피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고백을 했다. 말을 하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어이쿠, 사악한 봄바람이 멀쩡한 집고양이까지 잡는구나. 하지만 잘했어. 잘한 거야. 그래서 나 같은 멋진 고양이도 만났잖아!”
로드가 짓궂게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건… 그래.”
해피는 로드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내 묘생 모토는 노빠꾸야. 후회할 시간도 없고 머뭇거릴 시간도 없어. 앞으로 계속 나가는 거야. 난 오늘 결투에서 승리한 후 노래에게 고백할 거야. 내가 노래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정말?”
해피는 로드를 두고 떠나기가 아쉬웠다.
“넌 어서 박사님한테 가봐. 책만 보고 입으로만 나불대는 우리들의 박사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맨날 도서관 옆 연구실에 쳐박혀 있는 불쌍한 박사님. 하지만 똑똑한 건 인정해. 고양이가 그렇게 똑똑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야. 게다가 그런 재능을 좋은 데 쓰지. 다른 고양이들한테 도움도 많이 주고. 내 마음에 드는 이름도 지어 줬잖아. 사실 이 동넨 물이 좋아. 귀한 먹이를 나눔해 주는 애들도 있고. 착한 애들이 많아. 오죽하면 나같이 착한 고양이가 별명이 제일악당이겠냐고! 하하하!”
해피는 로드의 호탕한 웃음 소리를 뒤로 하고 길을 건넜다. 자칫하다간 로드의 결투를 구경하고 싶어 모험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서둘러야만 했다.
도서관은 커다란 은행나무 옆에 있는 3층 건물이었다. 은행나무 아래 원목으로 만든 제법 큰 숨숨집이 있는데 그 안에 작은 등불이 밝혀져 있었다. 창밖으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야옹, 실례합니다.”
해피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야밤에 뉘신가?”
아치형의 문에서 커다란 턱시도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며 나왔다. 소문대로 박사님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고양이었다. 해피는 칸슈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몸가짐을 바로 하고 예의를 갖춰 자기 소개를 했다.
“내 이름은 해피, 저 윗동네에 사는데 오늘 밤 집을 나왔어.”
“가출을 했단 소리네!”
“응, 그런 셈이지.”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오늘 밤 문득 행복을 찾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어.”
“오늘 밤 문득이라… 아주 시적이군 그래. 오늘 밤 문득이라… 그래 그럴 수 있지.”
칸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해피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행복을 찾아 어딜 가는데?”
“고행점에 가보려고.”
“고행점에? 거기가 어딘 줄은 알고 가려는 거야?”
“아니 몰라.”
“이거야 원, 그럼 고양이 입장금지라는 건, 그건 알 거 아냐!”
“응.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도 가겠다?”
“가보고 싶어. 난 행복이 뭔지 알고 싶거든. 고행점에 가면 그 행복이 있지 않을까 하고. 여기 오는 길에 만난 친구들이 너한테 가보라고 해서 온 거야.”
“허허, 이것 봐 젊은 친구, 번지수는 잘 찾아왔어. 하지만 말이야, 행복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그런 게 아냐. 그러니까 뭔가 차원이 다른 거라는 얘기지. 게다가 행복백화점에 행복이 있다곤 장담 못해. 백화점이란 데가 원래 뭐든 다 있을 것 같아도 없는 건 없거든. 네가 찾는 행복이 거기 없을 수도 있단 얘기지.”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없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잖아. 가보지 않고 어떻게 알겠어?”
“그거야 그렇긴 하지.”
칸슈는 호랑이무늬 고양이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넌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해피의 당돌한 질문에 칸슈는 잠깐 동안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 딱히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 난 매일 책을 읽느라 바빠서.”
“책을 읽는 게 행복해?”
“음, 그런 것 같기도 해.”
“왜?”
“알아가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지. 책을 읽으면 내가 모르는 걸 알게 되고 그럴 때 느끼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 그래서 또 책을 보고, 책을 볼수록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돼. 그럼 또 모르는 거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고 그러면 또 책을 보고. 그렇게 지식의 폭이 넓어지고 인식의 세계가 확장되는 거지. 우물 안 개구리가 시냇가 개구리가 된 기분이랄까 뭐 그런 거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온 세상인 줄 알았는데 지구는 거대한 우주 속 아주 작고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니 책을 읽고 배우지 않고서야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야. 확실한 건 난 밖에서 뛰노는 것보다 책보는 걸 더 좋아해. 그래서 잠도 줄여가며 책을 읽지.”
“정말?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고양이에게 제일 중요한 잠을 어떻게 줄여?”
잠꾸러기 해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만큼 달콤한 게 어디 있다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지. 그게 세상의 이치야. 난 어려서부터 책냄새를 좋아했어. 난 도서관 지하실에서 태어났거든. 여기가 고향인 셈이지. 이곳을 떠난다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어. 앞으로도 봐야할 책이 아주 아주 많거든. ‘세상은 넓고 볼 책은 많다.’가 내 묘생 신조야. 인생은 길어야 백 년, 묘생은 아주 길어야 삼십 년인데 보고 싶은 책을 다 보려면 시간을 아껴야지.”
칸슈가 은행나무에 기대어 몸을 길게 늘이며 말했다. 해피는 박사 고양이를 존경스러운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넌 여기서 정말 행복한가 보구나.”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불행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으니까.”
“그럼 나한테 고행점에 대해 좀 알려줘. 오는 길에 만난 친구들이 말하길 고행점은 어마무시하게 크고 높은 건물이고 큰 방이 백 개나 있는 도둑소굴이라고 하던데…”
“도둑소굴?! 음, 그렇긴 하지. 누구나 들어가면 돈을 털리는 곳이니까. 그런데 누가 그런 말을 했어?”
“비건이와 노래, 골무와 당분이, 그리고 로드를 만났는데 당분이가 그런 말을 했어.”
“당분이를 어디에서 봤어?”
“길 건너 큰 전봇대 아래서. 거기서 집사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던데…”
“쯧쯧, 불쌍한 당분이!”
칸슈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왜? 왜 불쌍해? 당분이는 기다리는 게 행복하다고 하던데…”
“고도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
“고도? 집사 이름이 고도야?”
“아, 그게 아니고… 있어, 기다려도 안 오는 나쁜 사람, 아니 뭐 그런 게 있어. 그러니까 내 말은 당분이가 오지 않을 집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지.”
“왜? 왜 안 오는 건데?”
“안 온다고 하기 보단 못 온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이야기를 하자면 좀 긴데… 당분이의 집사가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십 년째 병원에 입원해 있어. 머리를 다쳐서 기억을 잃었대. 당분이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집사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뭐? 십 년씩이나 병원에?”
“그야말로 기적이 필요한 일이지. 당분이와 집사에게 그 기적이 여태 안 오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야. 어쩌면 아직 때가 아닌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당분이 이야기는 우리 동네에서 두 번째로 슬픈 이야기야. 가장 슬픈 이야기는 이 동네가 조만간 사라질 거란 얘기고.”
“뭐? 동네가 사라져?”
해피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오늘 밤 처음으로 동네 구경을 나왔는데, 게다가 많은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동네가 제법, 아니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사라질 거라고?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있나!
“당장은 아니야. 하지만 머지 않은 일이야. 사람들은 오래된 골목을 가만 놔두지 않아. 불편을 핑계 삼아 다양한 집들과 골목을 없애버리고 거대한 공동주택인 아파트 단지를 만들려고 하지. 편리함이 사람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정말 슬픈 이야기야. 우리의 놀이터가 사라지는 거니까. 우리 같은 반집반길 고양이들에게 오래된 동네는 그 자체로 천국인데 말이야.”
칸슈는 앞발로 턱을 괴고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옆길로 한참 샜구나. 고행점에 간다고 했지? 그래 너는 나한테서 알고 싶은 게 뭐야?”
칸슈가 크게 기지개를 켜며 이야기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검은 눈이 호기심과 총기로 반짝거렸다. 해피도 자세를 고쳐앉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고행점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말해줘. 난 집사가 가끔씩 그곳에 가서 나를 위한 물건들을 사 오고, 거기만 갔다 오면 행복해 한다는 것만 알아.”
“하긴 나도 가보지 않아서 모르긴 해. 하지만 보고 들은 정보를 통해 꽤 많은 걸 알고 있지. 내가 아는 것만 몇 가지 얘기해 줄게.”
칸슈는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하려는 교수님처럼 은행나무 옆 벤치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해피도 거리를 좀 두고 그 옆에 앉았다.
“우선 고행점의 탄생 배경에 대해 알 필요가 있어. 이 시대에 왜 고행점이 생겨났고 세상사람들의 관심사가 됐는지 말이야. 격세지감이라고 할까. 우리 고양이들이 세상의 중심에 다시 서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고대 이집트 시대 이후 중세시대 꽤 오랜 고난의 시기를 거쳐 금세기에 이런 르네상스가 찾아오다니! 바야흐로 사람들이 우리 고양이를 모시느라 쩔쩔 매는 시대가 왔잖아.”
“그렇긴 해. 우리 집사도 나를 위해 엄청 노력해. 맛있는 걸 사 오고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좋은 음악도 들려주고 깨끗한 화장실과 침구를 챙겨주지. 그리고 매일 내가 행복한지 확인을 해.”
‘해피, 해피! 이리 와, 해피! 어디 가는 거야?’
해피는 아주 잠깐 동안 집사의 외침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얼른 마음을 다잡고 칸슈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사람들이 왜 우리를 좋아하고 키우려 한다고 생각해?”
칸슈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거야 우리가 그럴 만한 존재니까 그렇겠지.”
해피는 별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대답했다.
“맞았어. 넌 자존감이 아주 높은 고양이구나.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야. 지혜롭고 총명하기도 하지. 좀 게으르긴 하지만 자기관리는 철저히 해. 몸단장엔 시간을 아끼지 않고 무엇보다 중요한 화장실도 깨끗이 관리하고. 우리 같은 깔끔이들도 드물 거야. 사람들은 우리한테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스킨쉽을 원하고 아이 같은 애교를 기대해. 우리의 목소리와 웃는 얼굴이 아기들과 가장 비슷해서 좋아한다고들 하지.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우리 고양이들의 독립적인 면을 높이 사지.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동물이니까.”
“솔직히 난 별로 애교가 없거든. 그런데도 우리 집사는 맨날 날 귀엽다고 해.”
“그럴 수밖에. 우린 존재 자체로 귀하고 귀여우니까. 요즘 흔히 하는 말로‘귀여우면 끝 ’이라고 하잖아.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우리를 위해 가진 걸 다 쏟아 부으려 하는 거지. 가끔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말이야. 집은 못 사도 집사 노릇은 하고 싶다는 우스갯소리가 왜 나왔겠어? 1가구 1묘가 보편화되었고 다묘가정도 점점 많아지고 있지. 출산율 저하의 주범으로 우리를 주목하지만 그건 정말 억울한 일이야. 우리만큼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줄 수 있는 동물도 드물 텐데 말이야. 어쨌거나 고행점이라는 거대한 유통공룡은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생겨난 거야.”
“고행점은 공룡같이 커?”
“응, 그럴지도 몰라.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라니까 한번 상상해봐.”
해피는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크고 무서운 동물이 공룡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긴 건물은 어떨까 상상해 보았으나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건축잡지에 실린 기사를 봤어. 전 세계에서 백 명의 건축가가 백 억 상금이 걸린 설계 공모에 참가했는데 이집트의 건축가 모함마드의 피라미드형 설계가 당선됐지. 고대 바빌로니아의 바벨탑에서 모티브를 딴 설계도를 봤는데 정말 기괴하고 환상적이었어. 고행점을 짓는 데만도 백 년이 걸렸다는 거 알아?”
“뭐? 백 년씩이나?”
“응. 고행점엔 백 개의 방이 있는데, 그러니까 방 하나를 짓는데 평균 1년이 걸렸다는 소리야.”
“와, 정말 어마어마하구나!”
“게다가 취급하는 상품들은 모두 비싸고 고급지고 화려하대. 방마다 그런 상품들이 그득하다는 거야. 소확행에서 시작된 소비 트렌드가 결국 하이엔드 럭셔리의 끝판왕으로 가버린 거지. 시장이 왜곡되어 버린 거야. 싼 건 안 팔리고 비쌀수록 잘 팔리거든. 사람들은 자신의 고양이를 뭔가 남들보다 특별하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갑을 아낌없이 여니까. 그런 경쟁 심리를 백화점은 또 이용하는 거지.”
“너는 정말 박사님처럼 말을 하는구나.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네 말을 들으니 더 그곳에 가고 싶어져. 그런데 고행점에 왜 고양이가 들어갈 수 없는 거야? 고양이를 위해서 만든 곳인데 말이야.”
“사실은… 그게 아이러니지.”
칸슈가 공감의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러니?”
“그러니까 좀 부조리하다… 말하자면 말이 안 된다 그 말이지.”
“그런데 왜 아무도 그곳에 가보려고 하지 않는 거지?”
“음, 그건…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네! 난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니!”
칸슈는 검은 눈을 반짝이며 뜻하지 않게 새로운 이론을 발견한 과학자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리 함께 가보지 않을래?”
해피가 얼른 제안을 했다.
“하지만…”
“하지만 뭐?”
“난 봐야 할 책이 쌓여 있어서 지금은 안 되겠다.”
칸슈가 도서관을 가리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그럼 나 혼자라도 가봐야겠어.”
해피는 빨리 단념을 했다. 박사님을 설득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 용기가 부럽구만. 사실 뭔가를 아는 것은 뭔가를 느끼는 것에 비하면 별 게 아닐지도 몰라. 내 작은 지식이 네 모험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게. 하지만 무모한 도전은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 그건 알고 있겠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난 가겠어.”
해피가 굳게 다짐을 했다. 칸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강한 모험심이 불타오르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좋아. 그 정도의 호기라면 가볼 만하겠어. 그럼 어서 떠나. 밤은 길지 않으니… 혹시나 함께 할 길동무가 필요하다면 저 아래 교회 옆 주차장에 사는 고양이를 찾아가봐. 내가 존경하는 친구야. 문학에 조예가 깊은 아주 멋진 친구지. 얼마 전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하던데 혹시 네 무모한 여행에 동행이 될 수 있는지 물어봐. 그 친구한텐 어쩌면 너한테 꼭 필요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내가 그 친굴 추천했다고는 말하지 말아줘. 여행계획이 비밀이라고 했거든. 너도 알다시피 우리 고양이들의 우정에서 비밀보장만큼 중요한 건 없잖아.”
“응, 알겠어.”
해피는 주차장 고양이를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칸슈 같은 박사가 존경하는 친구라면 틀림없이 아주 대단한 고양이일 테니까.
“고마워.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 그럼 이만 가볼게.”
해피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해피, 네가 만약 고행점에 간다면 고행점 1호 고양이가 될 거야. 달을 정복한 우주인이 되는 셈이지.”
칸슈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 달은 백만불짜리네! ‘달과 6펜스’를 읽어 봐야겠어. 언젠가 읽어 보려고 했던 작품이야. 자, 그럼 해피! 건투를 빌어. 네 이름처럼 행복을 찾길 바랄게.”
칸슈는 인사를 하더니 의자에서 내려와 아치형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