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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주 Sep 26. 2024

고양이들의 행복백화점(4)

9. 철학관 고양이 철희

 

 주차장을 향해 내려가던 해피는 또 한 마리의 고양이를 만났다. 소나무가 있는 하얀 2층집 계단에 빨간 목걸이를 한 삼색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열심히 털을 고르던 고양이가 해피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넌 누구니? 처음 보는 호랑이네!”

 “내 이름은 해피, 저 윗동네에 사는데 오늘 처음으로 세상 구경을 나왔어.”

 “축하해. 오늘 같은 밤에 정말 좋은 생각을 했구나.”

 삼색 고양이가 몸을 일으켜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았다.

 “아, 내 소개를 해야지. 내 이름은 철희,‘철학의 기쁨’이라는 뜻이야. 우리 집사가 철학관을 하거든.”

 “철학관? 그게 뭔데?”

 “음,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주는 곳이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그게 뭔데?”

 “음,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 볼게. 사람들이 우리 집사를 찾아와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해. 그럼 우리 집사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또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 그러고 나면 사람들은 행복한 얼굴이 돼. 어둡고 찌푸린 얼굴로 찾아왔던 사람들도 환한 얼굴이 돼서 돌아가거든. 그런데 사람들은 돌아갈 때 꼭 편지 봉투를 주고 가. 그러면 우리 집사는 또 아주 행복한 표정이 돼. 그러니까 철학관은 한마디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곳인 거지.”

 “편지 봉투에 어떤 편지가 들어 있는데 그래?”

 “응, 편지는 아니고 돈이 들어 있어.”

 “돈? 그러니까 말하자면 행복을 파는 곳이네!”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을 필요로 하니까.”

 “그렇구나. 난 행복을 찾아 고행점에 가는데…”

 “뭐, 고행점에 간다고?”

 “난 정말 행복이 거기 있는지 가볼 거야.”

 해피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힘주어 말했다.

 “와, 너 정말 멋지다! 모험심이 대단한 걸!”

 “나랑 같이 갈 마음 있어? 혹시 너도 관심이 있다면…”

 “하지만 난 안 돼. 내가 가버리면 우리 집사가 불행해질 거야. 고양이 철학관에 고양이가 없으면 사람들이 안 올 테니까. 난 사람들이 얘기할 때 집사 옆에 앉아 있거든. 정말 별 사람들이 다 있다니까. 가족, 친구, 사돈의 팔촌까지, 울고 불고 별의별 얘기를 다하고 나선 마지막에 웃고 가지. 우리 집사 말에 의하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게 나라는 거야.”

 “네가? 어떻게?”

 “나는 가만히 있어도 내 존재 자체가 그렇대. 집사가 가끔 내게 뭔가 의견을 물으면, 예를 들어 ‘올해는 이 손님 운수가 아주 좋을 것 같은데… 우리 철희는 어떻게 생각해? 그럴 것 같니?’ 하면 내가 ‘야옹!’ 하고 대답해줘. 그럼 손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지지. ‘내년엔 이 손님이 따뜻한 남쪽으로 이사를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철희는 어떻게 생각해?’ 하면 또 내가 큰 소리로 ‘야옹!’ 하고 대답해줘. 그럼 손님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크게 웃지. ‘참 신묘한 고양이도 다 있네!’라면서.”

 “그런 일이 좋아?”

 해피는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좋지! 사람들이 행복한 건 우리 고양이들한테도 좋은 일이잖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해피도 그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었지만 철희의 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무엇보다 철희가 그 일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홀로 버려진 나를 거둬준 사람이 우리 집사야. 눈을 떠 보니 차가운 길바닥에 나 혼자 있었는데 안경을 낀 한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어. 그때만 해도 우리 집사는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는데 나를 만나고 난 후 자신의 철학이 완성됐대. 그래서 고양이 철학관을 차린 거고. 이렇게 우리가 함께 살아온 게 몇 년인지 모르겠어. 아마도 이십 년쯤은 된 것 같기도 해. 청년이었던 우리 집사가 중년의 배나온 아저씨가 됐으니 말이야. 우린 함께 늙어가는 거지. 요즘은 눈도 잘 안 보이고 소화도 예전 같지 않아. 세월엔 장사가 없다는 말이 딱 맞아. 그래도 마음은 편안해. 눈이 잘 안 보여도 보이는 게 있거든.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보여. 행복을 바라는 마음 말이야. 내가 작으나마 그 바램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해피는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십 년이라니!’ 철희의 나이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이십 년이라니!’ 이십 년을 산다면 자신은 어떤 고양이가 돼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으나 해피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루가 몇 개가 모이면 이십 년이 될까 생각해 보았으나 그저 막연하고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난 나의 행복을 찾아 떠나겠어. 혹시 주차장이 어디 있는지 알아?”

 “저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돼.”

 철희가 빨간 십자가 불빛이 보이는 곳을 가리켰다.

 “저기 교회 보이지? 지붕 위로 커다란 불빛이 보이는 곳 말이야. 주차장은 그 옆이야. 그런데 거긴 왜?”

 “도서관 고양이 칸슈가 거기 사는 고양이에게 가보라고 해서.”

 “럭키를 말하는구나! 얼마 전 곧 여행을 떠날 거라고 들었는데… 주차장이 조만간 헐릴 거라서…”

 “이름이 럭키야?”

 “응. 운이 좋다는 뜻이래. 우리 집사가 그러는데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게 운이 좋은 거래. 럭키를 보면 그게 꼭 맞는 말인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행운을 빌게.”

 철희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마워. 행운을 빌어 줘서.”

 해피는 철희에게 인사하고 교회의 십자가 불빛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10. 럭키와의 조우


 어디선가 폐타이어 고무냄새와 화장실 냄새가 났다. 해피는 코를 벌룸거리며 꼬리를 잔뜩세우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넓은 주차장에 몇 대의 낡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구석진 곳에는 군데군데 알 수 없는 짐더미들이 쌓여 있었다. 주차장 한쪽 구석에 커다란 벚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옆에 사무실로 보이는 자그마한 가건물 한 채가 있었다. 그 옆 한 귀퉁이에 고양이 한 마리가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낡은 지붕이 있는 숨숨집 옆에 요람이 있고 그 옆에 화장실로 보이는 플라스틱 박스가 놓여 있었다. 

 초라한 행색의 고양이 한 마리가 누더기 요람에 앉아서 털을 고르고 있었다. 털빛은 누르스름하고 털은 군데군데 뭉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피는 예상치 못한 럭키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요람에서 천천히 이곳 저곳 털을 고르고 있던 럭키는 그 순간 바람이 불어 벚꽃잎이 흩날리자 시선을 위로 향하더니 하던 일을 잊은 채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해피는 그 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아 가만히 멈춰섰다. 하얀 꽃잎들은 지면에 닿으려다 다시 어디선가 불어온 한 줄기 바람에 위로 들어올려져 공중제비를 하다가 사뿐히 바닥에 내려 앉았다. 럭키의 시선은 춤을 추고 있는 듯 보이는 꽃잎들을 쫓고 있었다.

 어느 순간 럭키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무런 경계심도 없는 고요한 눈빛이었다. 

 “넌 누구니? 처음 보는 아이구나!”

 럭키가 작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 이름은 해피야. 저 윗동네에 살아.”

 “그런데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니?”

 “그냥 달빛이 고와서 산책을 나왔다가…”

 생각지도 않은 말이 해피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래, 그럴 만하지”

 럭키가 하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무심히 털을 고르기 시작했다.

 “저 한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고양이들의 행복백화점’이라고 알아?”

 해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 모르는 고양이도 있나?”

 럭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가봤어?”

 “아니. 고양이들의 행복백화점에 고양이들은 입장금지야. 모르니?”

 럭키가 철없는 아이 보듯 해피를 쳐다보았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왜 고양이들의 행복백화점에 고양이가 못 들어가냔 말이야!”

 “그건… 글쎄?!”

 럭키는 뭐라고 대답할지 한참 생각을 하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왜 아무도 거기 가볼 생각을 안 하는 거지?”

 “글쎄…”

 “나랑 한번 가보지 않을래?”

 “어딜? 행복백화점에?”

 “응. 진짜 행복이 거기 있는지 한번 가보잔 말이야.”

 “하지만 난 지금 좀 바쁜데…”

 럭키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여행을 떠나려는 중이어서.”

 “여행? 어디로?”

 “그건… 비밀이야.”

 “비밀?”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이 있는 거잖아. 너도 그 정도는 알 텐데… 그리고 사실 난 행복에 별로 관심이 없어.”

 “행복에 관심이 없다고? 왜?”

 “왜냐하면… 난 지금 행복하니까.”

 “뭐? 정말?”

 해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동네에서 만난 고양이 중 제일 불행할 것 같은 고양이가 행복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행복해서 행복에 관심이 없다니! 해피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폐타이어와 알 수 없는 짐더미들이 쌓여 있는 주차장 한 구석 허물어져가는 낡은 집에 넝마 같은 요람, 초라한 식기와 화장실… 이렇게 형편없는 곳에 살면서 행복하다고? ‘운이 좋다’는 뜻의 럭키라는 이름은 이 고양이와 제일 안 어울리는 이름 같았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내 말이 안 믿기니?”

 해피는 맑고 푸른 눈의 고양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넌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럭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겠어. 그래서 한번 찾아가 보고 싶은 거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고행점은 고양이들이 갈 수 없는 곳이야.”

 “그래서 가보겠다는 거지.”

 럭키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나타나 터무니없는 고집을 피우는 호랑이무늬 수컷 고양이를 자애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랑 같이 가보지 않을래?”

 해피가 용기를 내서 다시 물었다.

 “하지만 난…”

 “망설일 시간 없어. 난 사실 고행점이 얼마나 먼지 어디 있는지 몰라. 그냥 이 도시의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 뿐. 그래서 혹시 넌 뭘 좀 알까 하고 물어본 거야.”

 “운이 좋았네.”

 럭키가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 내 소개가 늦었구나. 내 이름은 럭키야. 운이 좋다는 뜻이래.”

 “그럼 내가 운이 좋다는 얘기네! 운 좋은 친구를 만났으니까.”

 해피가 얼른 추임새를 넣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겠다. 내가 네 모험의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을지 아닐지는.”

 “나랑 같이 가자. 네 도움이 필요해. 넌 척 보기에도 보통 고양이 같지 않아. 뭔가 아주 특이한, 아니 특별한 고양이 같아.”

 “세상에 보통 고양이는 없어. 고양이들은 다 특별한 존재니까.”

 “그래. 그러니까 우리 특별한 고양이들끼리 여행을 떠나 보자. 모험을 떠나 보잔 말이야.”

 해피는 집요하게 요구했다. 럭키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호랑이무늬 고양이의 설득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 세상에 여행을 떠나는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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