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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맑음 Oct 01. 2024

[에세이] 내 팔레트에 담은, 그린

15화 내 팔레트에 담은, 그린


오늘 소개할 컬러는 내 팔레트에 담긴 그린, 초록이다. 나에게 초록색이라는 색은 눈이 편안해지고 마음을 정화해주는 컬러이다.


차그린과 나는 25살의 봄에 만났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던 연구소, 그 안에 동갑내기 친구가 차그린이었다. 나와 그녀의 첫 직장은 같았다. 졸업을 유예한 나는 아직 대학생이었고, 차그린은 막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이었다.


동갑의 나이, 하나의 부서에서 분리된 옆 부서에서 근무하던 그린. 그녀와 나의 입사는 일주일 터울이었다. 동그란 안경을 쓴 차그린은 그때에도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첫 사회생활, 우여곡절도 눈물도 많았다. 우리는 점심을 같이 먹었으며, 가끔 연구소 부지를 산책하였고, 퇴근 후에는 어울려 카페라떼와 떡볶이를 먹었다. 아직도 차그린과의 일탈이 생각난다.


성과관리 일을 하던 나는 연구부서의 박사님들에게 연락할 일이 많았다. 나는 정중한 톤으로 차그린에게 위장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xx 부서의 김맑음입니다. 제출하신 성과 관련해서 자세한 안내 사항을 만나 뵙고 설명해 드리고 싶은데 30분 후에 뵐 수 있을까요?”


그러면 수화기 너머로 억눌린 웃음소리가 들렸다. 곧 근엄한 그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안녕하십니까, 박사님. 그 건에 대해선 만나서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은데 30분 후에 보시죠.”


지금 생각하면 좀 얄팍했던 것 같기도 하다. 완전히 일탈은 아니었던 것이 부서의 막내인 우리는 행정동이라고 불리던 건물에 갈 일이 많았고 기왕이면 함께 다녔다.


아직도 내 가장 좋은 친구 중의 하나인 그린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맑음이는 일도 잘하고, 추진력도 있어서 부러웠어.”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 그냥 아등바등 살았던 것 같은데 차그린은 늘 나를 칭찬해주었다. 그러는 나도 차그린이 나와 다른 스타일로 차분하게 할 일을 척척 해낸다고 생각했다.


첫 회사를 반년만에 그만둔 다음에도 우린 친구였다. 매일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서로의 얼굴을 잊기 전에 늘 만났다.


차그린은 내가 그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을까? 내가 충분히 표현했는지 의문이 생겨서 써보기로 했다.


때는 2018년의 가을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저주에 걸린 것처럼 아팠다. 몸의 면역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어떤 질병으로 약물을 복용해야 했는데 약물의 부작용으로 뇌의 기능이 억눌렸다. 한 달간 입원했고, 퇴원 후에 한 달 동안 나는 30kg이나 살이 쪘다.


내 얼굴 같지 않은 얼굴. 내 몸 같지 않은 몸. 그리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뇌 기능으로 인해서 나는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힘겨워했다.


뇌의 기능이 억눌린다는 것은 지능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졸업생 대표였던 나는 간단한 설명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조립설명서를 노려보며 애를 쓰다가 눈물을 터트렸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문서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해방구처럼 가끔 차그린을 만났다. 부가적으로 얻은 우울증 때문에 서울에서 열리던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청취했고 차그린은 기꺼이 내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차그린은 알고 있을까. 나는 서울역에서도 길을 잃었다. 도저히 이정표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서울역의 분주한 사람들을 보면서 눈물을 꾹 참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서웠다.


그런 나에게 차그린은 늘 슈퍼맨이었다. 언제나 나를 마중하러 나왔던 친절한 친구는 내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서울역을 떠날 때까지 내 손을 꼭 잡고 날 이끌어줬다. 그녀는 나의 길잡이였고 슈퍼맨이었다.


차그린은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는다. 나는 차그린이 누군가를 나쁘게 말한다면 상대방이 아주 큰 잘못을 했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첫 직장생활은 쉽지 않았다. 나는 일을 시작하고 6개월 동안 매일 울었다. 그래도 시간을 돌린다면 나는 차그린을 만나기 위해서 그곳을 찾았을 것이다.


이토록 다정한 친구를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


그런 그린도 최근 고민이 많아 보였다. 그린이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이유는 누군가는 그린만큼 상냥하지도 인내심이 있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삶에서 방황하게 되는 시간이 있다. 내가 그랬듯이, 그리고 그린이 그렇듯이 인생은 어쩌면 고비 넘어 새로운 고비를 맞아들이는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가는 동안 밟은 땅만큼이 내 소유의 땅이 될 것이다.


내가 최근 읽은 책에 관해서 이야기해주고 싶다. 김유진 작가의 [매일 하면 좋은 생각]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주변 사람들은 매일 크고 있는데 자기 자신은 늘 제자리인 것 같을 때 드는 생각은 한 가지뿐이다.

“나는 왜 맨날 이 모양, 이 꼴일까?”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는 주인공 채송아가 다른 전공을 하다가 바이올린이 좋아서 뒤늦게 음대에 진학해서 겪는 이야기이다.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린 나이부터 시작되는 음대 정규코스를 밟지도 못한 그녀가 바이올린 세계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기란 녹록치 않았다.


드라마 속 송아의 모습은 누가나 한 번쯤 꿈 앞에서 겪어야 하는 시련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역경을 견뎌낸 끝에 성공한 바이올리니스트 채송아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바이올린과 헤어져 클래식 공연을 기획하는 회사로 들어간다. 그리고 면접 자리에서 상사는 이렇게 말한다.


“송아씨, 음악 용어 중에 크레셴도라는 말은 ‘점점 크게’라는 뜻이잖아요. 점점 크게라는 말은…반대로 생각하면 여기가 제일 작다는 뜻이기도 해요. 내가 제일 작은 순간이, 바꿔말하면 크레셴도가 시작되는 순간이 아니겠어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이다. 책갈피로 담아둔 이 구절을 차그린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우리가 가장 작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의 음악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차그린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작은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슈퍼히어로인 그녀인데 작다니 말도 되지 않는다.


겨우 직장동료였던 우리는 이제 십년지기 친구가 되었다. 함께했던 짧은 직장생활보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친구는 흔치 않다.


나는 아이스바닐라라떼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서 늘 내 아이스 아메리카노 옆에 그녀의 메뉴를 올릴 것이다.


25살의 내가 어떠했길래 차그린은 내 친구가 되어줬을까. 첫 직장에서 평생 친구를 얻은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차그린을 보면서 나는 힘든 누군가에게 나도 슈퍼맨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차그린은 내가 자라는 햇살이 되어준 사람이다. 내 팔레트에 담은 초록이 가진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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