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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맑음 Oct 08. 2024

[에세이] 내 팔레트 담긴, 노랑

16화 내 팔레트에 담긴, 노랑


오늘 소개할 컬러는 내가 팔레트에 담기로 결정했던 노랑이다. 나는 노란색을 떠올리면 갓 태어난 병아리나 봄볕에 몸을 터는 민들레, 혹은 여름 태양 빛을 쫓는 해바라기가 생각난다.


아마도 희망이라는 단어에 색을 붙인다면 나는 노랑을 떠올릴 것이다.


노랑은 유관기관의 담당자로 처음 만났다. 흔히 공기관이라고 불릴 수 있는 기관은 크게 사업파트와 경영파트로 구분할 수 있다. 정부 사업을 주로 담당했던 나는 최근 직장에서 경영팀으로 입사하게 되었고 모든 일을 까닭을 알아야 하는 문제에 부딪혔다.


사업파트에서 일할 때는 ‘이런 식으로 일한다.’를 알면 되었지만 경영파트에서는 ‘왜 이런 식으로 일하는가.’에 대한 의문의 답을 혼자 찾아야 했다.


맨땅에 헤딩을 반년가량 하다가 한 단톡방을 만나게 되었는데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담당자들이 모인 방이었다. 그곳에서 유독 컬러로 다가온 분이 내 노랑이 되었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고작 한 시간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90km를 달리면 그녀를 볼 수 있었고, 좀 더 가깝게 전화 한 번이면 그녀와 연결되었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에서 나는 창립멤버였다. 맨땅 위에 뼈대를 세워야 했고 벽돌을 쌓아 올려야 했는데 구원자처럼 등장한 것은 노랑이었다. 나는 정신력이 붕괴할 것 같을 때 정신줄을 잡아채고 그녀에게 전화했다.


그녀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아래의 말이었던 것 같다.


“어이구, 어쩌다... 저런...”


나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텐트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기분이었는데 그녀는 자기의 취미처럼 바느질을 잘했다. 그녀 덕분에 우리 회사의 구멍을 잘 기워낼 수 있었다.


처음에 조력자였던 그녀는 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노랑이 되었다. 보살핌을 받는다는 기분을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그녀와 함께 있을 때였다.


새벽에 늘 깨어있던 나. 어두워진 창밖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핑 돌 만큼 외로웠다. 노랑은 그런 나의 새벽을 함께해주었다. 잠이 적은 편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녀가 쉽게 잠들지 못했던 이유 중에서 내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했다.


덕분에 나의 새벽은 어둡고 푸른 밤이 아니라 노랑으로 물든 대화의 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나와 만나기 위해서 90km의 거리를 성큼 뛰어넘어주었다. 식사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서 늘 밥을 사주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내가 좋아하는 간식과 차를 늘 선물해주었다.


나는 그녀가 세심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그리고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음식을 그녀는 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철저한 J 성향으로 메모장에 나에 대해서 기록해두었던데 치토스, 꼬깔콘 등으로 기록된 나의 취향 리스트를 발견하곤 웃음이 나왔다.


이토록 긍정적인 스토커가 있다니!


세상에는 필요한 때에, 필요한 장소에 있어 주는 친구가 정말 드물다. 그녀는 나에게 늘 곁에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무서워하던 어떤 소망을 선물해주었다.


부인과 질병을 앓고 있던 36세의 김맑음은 아기가 싫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었다. 삐뚤어진 심정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때엔 견딜 수 없이 싫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이는 달랐다. 배 속에 있을 때 첫 만남을 했던 아이는 참 잘 웃었다. 낯설고 첫인상이 서늘한 편이라는 김맑음을 보고도 티 없이 밝게 웃었다. 손을 내밀면 손가락을 움켜잡았고 발가락을 간지럽혀도 싫어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 아이를 안아보는 것이 무서웠다.  내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온기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랑의 아이를 품에 안아보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때는 수술을 한 달 앞두었으며 장소는 도립공원의 한옥 카페였다.


세 번째 만남에서 나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보드라운 살결과 아이 특유의 우유 냄새가 났었다. 나는 포옹에는 힘이 있다고 믿는데 아이와의 만남에서도 그랬다.


아이를 품에 안아보는 순간, 나는 내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무사히 수술받고 나아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삶에서 이 온기가 없는 것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내 아이의 이름은 이미 정해두었다. 그, 혹은 그녀의 이름은 ‘박 새벽.’이다. 내가 외로운 밤을 수없이 견뎌내면서 기다린 것은 내 아이일 것이다. 외롭고 힘겨웠던 내 새벽을 아이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힘이 들 때마다, 혹은 주저앉을 때마다 나는 내 ‘새벽.’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리고 노랑의 아이가 좀 더 자라서 내 말을 이해하게 된다면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너를 품에 안아보고 나는 새벽을 기다려볼 용기가 생겼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노랑이 해주었던 이야기 중에서 인상 깊었던 말이 있었다.


“내가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늘 고마워해 줘서 고마워.”


그녀는 선물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해주는 어떤 것도 사소하지 않았으며, 당연하지 않았다. 요즘 늘 고민 중인 어떤 생각이 있었다.


‘표현이 서툰 것은 잘못일까?’


잘못은 아니겠지만 진심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와 나는 표현이 서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느 날, 나와의 카톡 대화창을 캡처해서 보여주었다.


배경에는 흐드러지게 핀 봄날의 벚꽃이 있었다. 나를 보면 생각나는 이미지라고 했다. 그토록 예쁜 이미지로 나를 기억해주는 것이 좋았다. 어떤 비싼 선물보다 그 말 한마디를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녀에게 [예쁜 말]을 선물 받은 날 썼던 내 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적어도 나는 고래보다 나은 지성체이기에 때문에 춤은 추지 않기로 결정했다. 늘 향기 나는 사람이 되고 싶던 나에게 너무나 듣기 좋은 칭찬이었다.]


이쯤에서 내가 향기 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를 말해보겠다. 내 손으로 만지는 것에선 내 향기가 나게 되는데 내가 똥이라면 구린내를 풍기고, 꽃이라면 향기를 풍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닿는 것마다 황금이 되었다는 미다스의 손은 탐나지 않았다. 그러나 닿는 곳마다 은은한 꽃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적어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을 나는 얻었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서 내가 36세의 나를 떠올린다면 기억하게 될 목록 중에는 이노랑씨가 있었다.


수술대, 외로운 새벽, 그리고 이노랑씨의 토마토 마리네이드.


작은 병에 담긴 토마토 마리네이드에는 그녀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잘 먹으면 언제든 또 해줄게요.”


그녀의 토마토 마리네이드는 무려 무한 리필 시스템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내 삶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먹는 순간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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