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집단 치료. 그리고 나의 제철행복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다. 잠에서 깰 때마다 꿈과 공상들이 뒤섞여 망상에 다시 빠지는 것은 아닐지 두려웠다.
정신병동에선 수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모두 취침 전 약을 먹고 잠에 든다.
저녁 9시가 되면 약 시간이 되고 다들 취침 전 약을 먹고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잠에 든다.
나는 일찍 잠에 들었지만 새벽까지 자꾸 깨어났다.
밤 사이, 로비를 지키는 보호사와 간호사들이 그때마다 나를 안심시켜 주면서 수면제를 더 주었다.
영원히 나을 수 없을까 봐, 이곳에서 버티는 것이 의미 없을 까봐 두려웠다.
결국 밤 11시, 새벽 2시에 수면제를 추가로 먹고 잠에 들었다가 일어났다.
다음 날, 그러니까 입원 둘째 날이 밝았다. 6시에 국민체조, 7시에 식사를 마치고
전화카드를 통해서 집에 전화를 했다. 병동에선 핸드폰 사용이 제한되기 때문에 아침시간에는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내가 입원한 병원은 다행히도 핸드폰 사용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지만, 디지털 기기로 인한 망상에
빠졌던 나는 핸드폰 사용을 5일 정도 제한했기에 계속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괜찮다고, 잘 지낸다고 말하는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진짜로 잘 지내고 있는 걸까. 괜찮은 걸까 자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침 10시. 첫 번째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그림 치료 시간이었다.
첫날, 얼굴도 잘 볼 수 없었던 청소년 환자까지 3명의 남자 환자와 나. 학생 간호사 둘이 모여서
6명이서 첫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에 대해서 그려보고 설명하는 시간을 가질게요.”
사회복지사는 인상이 유독 좋았다. 나긋나긋하면서도 상냥한 목소리와 얼굴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내가 그렸던 작품은 김신지 저자의 “제절 행복”이었다. 늘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자,
인생에서 행복의 의미를 바라보는 방식이 비슷한 작가의 작품이었다. 행복에도 제철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나이, 그 계절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작품이었다.
나는 내가 제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의 렌즈를 그렸다. 나의 다정한 남편과 고양이 둘, 그리고 적당히 내리쬐던 4월의 햇살과
풀, 그리고 세 잎클로버와 네 잎클로버. 나에겐 행운도 행복도 모두 중요하다는 의미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고, 환자들이 작품을 발표했는데 나는 그 순간 힐링이라는 의미를 다시 알게 되었다.
나의 햇살도우미, 대학생인 박경제(가명)는 인상적인 색상으로 그려진 추상화를 보여주었다. 자주색과 붉은색, 그리고 노란색으로 그려진
추상화의 의미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다른 것보다 제 작품을 제일 좋아해요. 그래서 제 그림을 그려보았어요. “
내가 그림에서 느낀 감정은 느긋함에 대한 열망과 편안함. 그리고 내리쬐는 햇살이었다. 나중에 비타민 합성을 위한
우리의 햇빛샤워 중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행을 가고 싶은데, 미국.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어요.”
나는 그의 그림에서 이미 캘리포니아를 느꼈다. 그는 자신의 이상향을 가장 자기답게 표현했다.
이번엔 배우 지망생인 최푸름(가명)차례였다. 그는 짱구 그림과 ‘정신병동에 아침이 올까요?’라는 드라마를 크레파스로 표현하였다.
“제가 인상 깊게 본 두 작품이에요. ‘정신병동에 아침이 올까요?’란 작품은 아마 우리같은 환자들이 모두 좋아할거예요.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우리에 대해서 이해받고 싶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의 말은 옳았다. 아마 정신병이 있는 모든 환자는 ‘정신병동에 아침이 올까요?’란 작품을 사랑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잘생겼다 했더니 배우지망생이었구나. 나중에 나 사인해줘.”
내 말에 그는 활짝 웃었고, 나는 정말로 그의 사인을 내가 들고 온 책의 표지에 받았다. 내가 병원에 들고 갔던 책은 누군가 내가 생각난다며 선물했던 책으로,
당시엔 정말 싫었는데 내 모든 근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인을 받고 나니 그 책은 나에게 더욱 특별해졌다.
청소년이었던 환자는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으로 우리와 잘 대화하지 않았기에 그의 작품에 대해서 들을 수는 없었다. 다만 그가 이 자리에 참여했다는 것이
우리에겐 더욱 중요했다. 학생 간호사들의 작품 발표와 함께 우리의 첫 번째 집단치료는 끝났다.
그날의 솜씨왕은 박경제 씨가 되었다. 자신의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 그의 당당함이 멋있었기 때문에
내가 추천했고 모두가 동의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의 작품을 추천하면서 서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내 제철행복도 꽤나 많은 표를 받았으나
내가 내 작품에 손을 들지 않았기에 그의 작품이 솜씨왕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집단치료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서로의 흥미와 관점, 그리고 그의 인생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을 공유함으로 우리는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 후에 이어진 치료에서도 우리는 모두 긍정적인 화학작용을 하면서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오늘도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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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경험을 적어내면서 저도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