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울메이트
병동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을 손에 꼽으라면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을 때이다.
꽤나 자주 발생하는 사건이면서도 늘 긴장되는 순간이다.
2일 차 저녁이 되기 전,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여성 환자였다.
여자 환자가 없어서 독방을 쓰던 내 병동의 한편에 새로운 보금자리가 꾸려지는 것을 보면서
조금 불안했던 것 같다.
정신병이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다. 어떤 상호작용이 서로에게 일어날지를 알 수 없기에 더 겁이 났다.
동생들과 실컷 놀다 보니 문 틈 사이에서 이쪽을 경계하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 보였다.
눈에는 경계가 가득했고 살펴보는 눈길은 날카로웠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면 내 착각이었다.
그녀는 상냥했고, 사려 깊었기 때문이다.
잠시 말을 걸까 고민했지만, 같은 방을 쓰게 되었으니 인사를 하기로 했다.
“저랑 같은 방 쓰셔야 하는데 저 코를 많이 고는데 괜찮으세요? 방 바꾸고 싶으시면 간호사한테 이야기하시면 돼요. “
낯선 상대에 한층 경계심이 심해지더니, 이내 말의 내용에 경계를 내려놓은 그녀를 보면서 친해지기 위해 접근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벽을 낮추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괜찮아. 여기 입원한 지 오래되었어? “
“저도 며칠 안 됐어요. 근데 저는 재입원이라서 병실생활은 간호사나 보호사님이 이야기해 주실 텐데 혹시나 모르면 저한테 물어보셔도 돼요.”
그녀의 이름은 김정숙(가명)이었다. 우울증으로 입원했다는 중년의 여성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잘 통하는 면이 있었다. 특히 성격적인 부분에서
나랑 공통점이 많았는데 분위기를 잘 살핀다거나,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잘 못한다는 면이 비슷했다.
타인을 너무 배려하다 보니 상처 입은 사람이 바로 우리였다.
“저는 살면서 남에게 욕하면 안 돼, 누굴 상처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너무 지나쳤던 것 같아요.”
“그래. 우리는 그게 문제야. 욕하면 왜 안돼? 해도 돼. 화나면 욕하는 거야.”
“맞아요. 우리 이제 화나면 욕해요! 화도 내고, 험담도 할 거예요! 욕해! 험담해! “
우리가 나눈 대부분의 대화 내용이었다. 우리는 건설적 이게도 앞으로 타인에게 상처받으면 욕도 하고, 뒷담화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것이 병실 이후의 생활에서 꽤나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입원하면서 폐쇄병동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강철 문이 닫힐 때부터 꽤나 놀랐다고 했다.
폐쇄병동.
이미 겪어본 나에겐 아무렇지 않은 단어지만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사람에게, 그리고 밖의 사람에게 너무나 무서운 단어일 것이다.
“폐쇄병동이라고 하지만 요즘엔 보호병동이라고도 해요. 그냥 우리를 최대한 외부에서 단절시켜서 보호한다고 생각하세요.”
내 말은 정론에 가까웠다. 그리고 우리가 입원한 병동은 정말 보호병동의 의미에 부합했다. 그제야 그녀는 마음을 놓은 듯 나와 함께 제자리 바퀴 같은
병동을 산책하면서 요가를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나의 첫 요가선생님이었다.
우리는 종교적, 인격적으로 성숙한 성인의 이야기를 같이 하기도 하고, 개인의 가정사를 이야기하면서 빠르게 가까워졌다.
병실에서 만난 또 한 명의 친구였다. 우리는 소울메이트처럼 병동을 휘저어가면서, 친구처럼 때론 조증 동료처럼 신이 난 채로 이곳저곳을 누볐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부모에 대한 깊은 원망과 새로운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내가 내 남편을 사랑하듯이 정숙언니는 아들을 사랑했다. 우리는 꽤나 오랫동안 여자병실의 창밖으로 불 켜진 투썸플레이스를 바라보면서 커피에 대해서 토로하기도 했으며,
아침에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없는 것에 분노하기도 했다. 카페인, 그것은 환자들에겐 적이자, 현대인에겐 주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단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싫다는 그녀는 내가 그린 제철행복에 대한 그림이 붙어있는 게시판을 보고 그 의미를 물었다. 나는 내가 아는 선에서 집단 프로그램의 의미와 우리가 나누었던 의미 있던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정숙언니가 다음 시간부터 집단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내가 잘 설명했을지도 모른다. 폐쇄병동의 규칙을 모르던 그녀는 꽤나 자주 분노했고, 특히 씻는 횟수까지 기록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토로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병원을 대신해서 변명했는데, 왜냐면 내가 중증환자였기 때문에 그 의미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환자는 자신이 씻었는지 또한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첫 입원에서 일주일 동안 샤워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일주일이 지나서야 알았다.
겪어본 만큼 병실의 규칙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게 내 비극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대부분의 병실 규칙을 이해할 만큼, 첫 입원에서 중증 환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입원에선 나만큼이나 중증 환자들과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병실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문을 닫았었다.
그래서 두 번째 입원은 나에겐 더 뜻깊었다.
폐쇄병동은 규칙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 이해하기 힘든 어떠한 이유가 함께한다.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대부분의 규칙이 정신병동 환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서 재정되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선 서로 친해지기를 권장하지 않는다. 친해지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후에 서로에게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병동에 입원하는 이유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가 아니다. 2주 혹은 4주에 달하는 시간 동안, 나에게 맞는 약을 의료진의 관찰과 상담 아래에서
맞추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나 어디에나 예외는 있고, 우리는 훌륭한 어벤저스처럼 서로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언니, 밥 반이상 먹어야 간식 먹을 수 있어요. 저도 잘 몰랐거든요. 얼른 먹어요.”
“아... 진짜 큰일 날 뻔했다. 맑음아, 진짜 고맙다.”
밥을 먹지 못하는 자, 간식도 먹을 수 없는 우리의 세상에서 나는 그녀의 간식지킴이였다.
폐쇄병동, 모두에게 겁이 나고 고정관념이 생기는 단어입니다.
이 글을 읽는 보호자 분들이나 환자분들이 있다면 폐쇄병동이라는 말 보단 보호병동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 치중한 병동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병동 생활은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두 번째 입원이었던 저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극복해 간다면, 마음을 열고 나를 치유하고자 결정한다면 그것이 제일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것도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