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말
“요즘 어떤 일을 하느냐”라고 물으면 “봉사를 한다”라고 했다. “무슨 봉사를 하느냐”라고 물으면 “월간지를 만든다”라고 했다. “매달 월간지 만드는 게 봉사로 가능한 일이냐”라고 물으면 어깨에 살짝 힘주고 “3년째 하고 있어”라고 굳이 기간을 강조하며 뽐내듯 말한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퇴직 후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저 막연함을 안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중 아카이브를 접했다. ‘디지털기록지원단’이란 이름은 강렬한 유혹이었다. 아카이브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수업에 참여했다. 다만 뭔가 의미 있는 봉사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는 있었다. 수업을 모두 마친 후 통일의집을 방문하고 우린 늦봄을 만났다. 잊고 있던 그 이름, 문익환. 그리고 살면서 애써 외면했던 그 시대의 정신....
늦봄과 봄길의 편지를 직접 만지고 본다는 건, 내 안 깊은 곳에서 여전히 자리했던 젊은 날의 나를 소환하는 계기가 됐다. ‘스무 살의 나’에게 창피하고 싶지 않았다. “넌 지금 잘살고 있는가?” 목사님이 꿈꿔왔던 세상.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늦봄에게 모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편지와 기록들이 수장고에서 여전히 잠자고 있었다. 잠자고 있는 기록들을 깨우고, 이 시대의 공기를 마음껏 숨 쉬게 하고 싶었다. 『월간 문익환』을 만든 이유다.
다행히 젊은 아키비스트들이 퇴직한 노장들과 기꺼이 호흡을 맞춰주며 함께할 수 있었다.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의 협업, 그리고 조합. 사회 어느 곳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조합이 『월간 문익환』을 통해 매주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아무런 보상도 없이, 자비를 들여가며 열정을 쏟아붓는 그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다 월간 문익환’ 그랬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책을 만들면서 우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라며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같은 말을 듣고 싶다. “요즘 어떤 일을 하느냐”라고 물으면 “봉사를 한다”라고 하고 싶다. “무슨 봉사를 하느냐”라고 물으면 “월간지를 만든다”라고 하고 싶다. “매달 월간지 만드는 게 봉사로 가능한 일이냐”라고 물으면 어깨에 살짝 힘주고 “13년째 하고 있어”라고 굳이 기간을 강조하며 뽐내듯 말하고 싶다.
콘텐츠플러스를 대표하여, 백총
(사진)
◇2023년 2월 21일 (사)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총회에서 『월간 문익환』 발간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장을 받는 콘텐츠플러스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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