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 번데기의 냄새. 운동회가 열리는 초등학교 앞에서 솜사탕과 함께 팔던, 구수하고 진득한 냄새. 번데기보다는 '뻔데기'라고 불러야 제 맛인 간식. 천 원어치 달라고 하면 종이컵에 가득 담아 주고, 이쑤시개로 콕콕 찍어 입으로 가져가면 잊혀지지 않는 그 국물. 어릴 적 향수.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 들어간 회사는 전화외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외국어 교육업체였다. 처음 출근하는 날 파티션 너머로 멋진 목소리의 영어소리가 들렸다. 외국인 선생님들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직원이었다. 그 사람의 첫인상은 얼굴이 아닌 목소리였다. 그의 이름은 Oliver, 우리는 그를 '올리'라고 불렀다.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 국적의 외국인. 생김새는 한국인이었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학교를 나온 그는 한국어가 완전히 유창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를 동경했는데, 멋진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혹은 내가 못하는 영어를 유창하게 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일에 능숙했고, 사람들을 기분으로 대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침착하고 여유로웠다. 화가 나는 상황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차분하고 멋진 목소리, 인자한 미소만 있을 뿐이었다.
-한국 음식 중에서 못 먹는 음식이 있어요?
-번데기. 먹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직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가볍게 물어본 질문이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때 올리의 표정과 말투를 잊지 못한다. 마치 먹을 게 그렇게 없냐는 식의 어투랄까, 올리에게서는 처음 보는 냉담함과 혐오의 순간이었다. 올리에게도 저런 표정이 있구나, 생각한 동시에 번데기의 모양과 냄새를 떠올렸다. 이쑤시개로 번데기의 몸을 통과시키던 나의 손과 종이컵 속 국물까지 탈탈 털어먹던 모습까지도.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그 이후로 번데기를 먹지 않았다. 물론 번데기가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니지만 간혹 바닷가 근처로 놀러 갔을 때 만나는 번데기 장사에서도, 횟집에 기본반찬으로 나오는 번데기탕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어느 주말 아침, 장을 보러 엄마와 함께 재래시장을 방문했을 때 엄마는 번데기를 구입하면서 물었다.
-너도 먹을래?
-아니, 나 번데기 안 먹어.
-번데기를 안 먹는다고?
-응.
-원래 좋아했잖아.
-전에 같이 일했던 외국인 직원이 번데기를 못 먹는다고 하더라고, 왜 먹는지 모르겠다고. 그 얘기 듣고 뭔가 먹기 싫어졌어.
-그 사람 때문에?
순간 줏대가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원래 번데기를 좋아했었나? 정말 올리 한 명 때문에 좋아하던 번데기를 못 먹게 된 것일까? 분명 학창 시절에는 잘도 먹었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 때문에 취향이 변한 것일까. 나의 취향이 타인에게 이토록 영향을 받는 것이라니. 엄마도 올리도 나에게 자신들의 취향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온전한 나의 취향이라는 것이 있을까.
나는 번데기를 좋아한 적이 없다. 번데기를 좋아하던 건 엄마였다. 그게 맛있는 거라고, 국물까지 탈탈 털어먹던 엄마를 보면서 번데기가 맛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싫어하지도 않았다. 싫어진 것은 올리의 그 표정과 어투 때문이었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너는 ENFP를 사람으로 빚어놓은 것 같아.
내가 친구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그만큼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다.
-우리 손녀딸 요새 친구는 좀 있니?
우리 할머니는 이따금씩 엄마에게 물었다고 했다. 그만큼 할머니가 생각하는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내 성격은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달라졌다. 학창 시절의 나는 화장실이 급해도 손을 드는 게 창피해서 참던 아이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활발한 성격으로 변하기 시작했는데, 성격이 변했다기 보단 새로운 친구들과 환경에 잘 적응한 것이다. 사람의 성격은 평생에 걸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조각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신과 같은 영화를 좋아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나도 즐겨 듣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런 모습이지만, 몇 년 후의 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를 줏대 없다고 설명하기보단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라 칭하고 싶다.
나는 번데기를 여전히 먹지 않는다. 여전히 번데기의 모습은 징그럽고, 한알 콕 집어 입으로 넣었을 때를 상상하면 기분이 별로다. 그렇다고 싫어하진 않는다. 번데기는 어린 시절 엄마와 놀러 간 유원지나 즐겁게 뛰놀던 운동회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좋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이, 좋은 사람들이 미래에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