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씹어 삼킨다. 음식은 식도와 위, 기나긴 창자를 지나며 이리저리 소화되고 분해되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먹은 것과는 아주 다른 형태, 다른 냄새로 탄생(?)한다. 그토록 화려하고 행복한 냄새가 이토록 달라지다니. 대체 내 몸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똥이란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질 중 하나이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하루에 한 번 똥을 쌀 것이다. 먹는 것이 당연하듯 싸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이란 대부분 창피하게 여기고,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수행(?)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큰일을 보는 것을 들킬까 노심초사하며 용변을 보던 일들이 떠오른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화장실에서 수다를 떨곤 했다. 문제는 내가 화장실 안쪽 칸에 있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다른 친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어떤 소리(!)도 냄새도 나지 않게 조심했더랬다. 그게 조심한다고 될 일도 아니지만, 그건 30대가 된 지금도 여전하다. 소리를 숨기기 위해 물을 두 번 내리기도 하고, 냄새가 나는 것 같으면 괜히 손을 휘휘 저어 보기도 한다.
영화 [광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가짜)왕이 변을 보는 장면이다. 이때 왕의 변은 똥이나 변이 아닌 매화라고 부른다. 왕은 용변이 급하면 측간(화장실)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매화틀이라 칭하는 요강형태의 변기를 방으로 들이며, 신하가 보는 앞에서 용변을 보고, 용변을 마치면 신하들이 축하를 해주며 궁녀가 뒤를 닦아준다. 그리고 그 매화는 내의원으로 보내져 색과 냄새와 맛(!)을 확인하여 왕의 건강상태를 확인한 후 진단과 처방을 하기도 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한참을 웃다가 생각했다. 저런 게 왕의 삶이라면 절대권력을 준다 해도 거절해야겠다고.
몇 년 전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암 진단을 받은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서둘러 찾은 장례식장에서 이모와 언니, 오빠와 인사했다. 이모부의 암투병에 함께 싸웠던 그들은 더없이 수척해져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임종 직전에 모두와 인사를 나누었다고 했다. 살아생전 표현한 적 없던 이모부는 모두에게 사랑한다 말했다고, 그게 계속 기억난다고 했다.
- 또 하나 기억나는 건 똥냄새야.
이모가 말했다. 이모부는 한동안 컨디션이 좋았다고 했다. 내내 못 먹던 밥도 잘 먹었고, 완치의 희망도 키워갔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용변을 보고 나온 이모부를 부축해 나오던 이모는 아주 지독한 냄새를 맡았다고 했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아주 강하고 충격적인 냄새였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부는 돌아가셨다.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엄마가 소화시킨 최종 영양분을 받기 때문에 똥을 싸지 않는다. 배변활동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똥이란 탄생과 소멸 사이, 그 생명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다. 아기를 키우는 건 또 어떤가. 말 못 하는 아기의 건강을 살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똥이다. 엄마는 매일같이 기저귀를 갈고, 기저귀 안의 아기 똥을 살핀다. 마치 영화 광해의 명장면과도 같다. 그 아기는 크면서 스스로 배변활동을 하게 된다. 똥이란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똥이란 여전히 부끄럽지만, 여전히 당신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은밀한 행위이지만, 그래도 내일아침에 우리가 아주 건강한 똥을 싸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를 바란다.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