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그냥 서점 아니고 교보문고에서 나는 냄새. 나무나 풀잎의 냄새와 목욕탕에 비치되어 있는 남자 스킨 냄새의 중간. 어느 가을밤, 시원한 바람과 둥근달의 냄새.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어느 독서모임에서였다. 온라인에서만 친목을 다지던 우리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나누었다. 몇몇 사람들과 근처 작은 노포에서 장작으로 구운 통닭에 맥주 한잔을 하고 헤어졌다. 너와 나는 가는 길이 같았다. 함께 걸었다. 너와 나는 말을 섞은 적은 없었지만 서로의 글과 서로의 글씨로 한 달을 만나 처음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지하철 역 게이트 안을 통과한 후, 스크린도어를 마주 보고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렸다.
- 커피 한잔 하실래요?
지하철이 도착했을 때 네가 물었다. 우리는 지금 막 도착한 지하철을 등지고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왔다. 역 근처 작고 아늑한 카페에 앉았다. 우리는 서로가 좋아하는 책과 작가와 요새 읽는 것들을 공유했다. 좋아하는 음식과 자주 가는 장소에 대해서도 말했다. 한 달 넘게 알고 지낸 사이었어도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 다음엔 서점에서 봐요.
지하철 안에서 작별인사를 마친 후 내가 내리기 직전에 네가 말했다. 너는 그렇게 머뭇거리다 끝의 직전에서 시작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몇 주 뒤 교보문고에서였다. 교보문고에 들어서면서부터 어떤 향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은은한 풀냄새, 강한 남자 향수의 냄새, 그리고 미세한 책의 냄새가 한데 섞인 냄새, 그건 교보문고에서 출시한 룸스프레이의 냄새였다. 우리는 서로 책을 선물해 주기로 하고 각자 선물할 책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손미시인의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를 골랐고, 멀리 있는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여전히 책을 고르는 데 골몰했다. 나는 교보문고 안에 구비된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너를 기다렸다.
책을 구매한 후 서점 밖으로 나섰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둥근 보름달을 발견했다. 나는 그 달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 달 봐요. 엄청 밝아요.
너는 둥근달 사진을 찍고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신호등 파란불이 켜졌다.
- 이런 순간을 지나칠 수 없지요.
네가 말했다. 우리는 파란불에도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한동안 멍하니 그 둥근달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저녁바람이 우리 사이를 맴돌았다.
우리는 서로 선물한 책을 나누어 가지고는 헤어졌다. 나는 네가 선물한 책이 궁금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쇼핑백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책이 아닌 교보문고의 룸스프레이였다.
내가 골라 선물한 시집의 제목이 떠올랐다. 나의 질문과 너의 대답 사이에 거대한 빈칸이 느껴졌다. 나는 룸스프레이를 꺼내 뿌려보았다. 우리 사이의 공간은 채워지지 않았다.
지금도 이따금씩 당신이 떠오른다. 당신이 오랫동안 고르다 멈추었던 책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선물한 책을 읽었을까, 궁금하다. 그럴 때면 당신이 선물한 교보문고 향을 달빛에 뿌려본다. 넘실넘실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