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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Nov 26. 2024

핫도그

별 것 아니어서 스쳐 지나가 사라지는 장면들이 나에게 오면

핫도그. 밀가루 반죽이 뜨거운 기름에 빠져 어두운 갈색이 되면 건져낸다. 잘 익은 탄수화물과 고소한 기름의 냄새를 기는 통통한 핫도그를 한 입 베어 물면 케챱의 달고 새콤한 맛과 소시지의 짭조름한 맛까지 한 데 섞여 궁극의 감칠맛을 낸다. 취향에 따라 설탕에 굴려도 좋고 머스터드소스를 더해도 좋다. 갈색 바탕 위로 하얗고 빨갛고 노란 것들이 더없이 먹음직스럽지.


고등학교 급식시간, 점심 메뉴 중 하나로 핫도그가 나왔다. 밀가루반죽을 둘러 갓 튀긴 핫도그가 아닌, 작고 밋밋한 공장에서 나온 냉동핫도그였지만 특식이라고 나를 포함한 친구들 모두가 좋아했었다.

나는 핫도그 꼬챙이에 붙은 반죽부스러기까지 깨끗이 뜯어먹고는 교실로 올라갔다. 화장실에서 이를 닦은 후, 교실로 들어가 내 책상에 앉아 영어단어를 노트에 적으면서 외우기 시작했다. 내 앞자리에 앉던 친구도 이를 닦았는지 칫솔케이스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바가지머리에 아주 작고 하얀 친구였는데,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친구는 무심히 나에게 말했다.


 - 트림을 했더니 핫도그 냄새가 나.

놀랍게도, 그 말을 하는 친구가 너무 귀여웠다. 트림을 했다는데 이렇게나 귀여울 수 있나? 내가 남자였다면 지금 방금 반해버렸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더불어 나의 트림냄새도 떠올렸다. 나도 그 냄새를 안다. 같은 걸 먹었으니 냄새도 같겠지. 하여간 작고 하얀 친구가 트림을 한다는 것도, 트림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귀여운 것도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 트림을 했다니 00 냄새가 나.

그 이후로 나는 이따금씩 이 말을 하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어본 적은 없다. 그 말을 하는 내가 귀여울 리 없었으니까. 십 년도 더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핫도그 하면 그 친구가 생각난다. 가끔은 트림을 하다가도 그 친구를 떠올린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그 친구의 말투와 하얀 얼굴과 귀여운 표정은 생생하다. 그건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그 기억을 꺼내보았기 때문이다.


 - 그때 걔가 그랬었잖아.

 - 그래? 나는 전혀 기억 안 나는데.

나에게만 유독 특별한 장면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니어서 스쳐 지나가 사라지는 장면들이 나에게 오면 찰칵, 하고 사진처럼 찍힌다. 사진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한 사람의 시각으로 찍는 것이어서 아무리 비슷하게 찍는다 해도 세상에 유일하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오직 내 눈과 내 마음으로 촬영되어 나만의 기억으로 저장된다. 이 별것 아닌 작은 기억이 나의 머릿속에 저장된 이유는 아마도 그 친구를 부러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까맣고 큰 편에 속했으므로, 내 앞에 앉아있는 그 찹쌀떡 같던 아이가 신기했다.


친구들과 양평을 놀러 간 적이 있다. 양평해장국만큼 유명하다는 두물머리 핫도그를 줄 서서 샀다. 잘 튀긴 핫도그를 설탕에 굴리고 케챱과 머스터드도 맛깔스럽게 뿌려주셨다. 통통해서 한입 베어 물기 어려운 핫도그를 후후 불어 씹어먹고 또다시 그 친구를 떠올렸다. 내가 지금까지 기억을 되새기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는 알까. 알게 된다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누군가 나도 모르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면, 순간의 장면을 찍어 사진으로 저장하고 있다면, 부디 좋은 기억이길 바란다. 조금 웃긴 기억이어도 좋겠다. 내가 이따금씩 당신을 떠올리는 것처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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