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
별 것 아니어서 스쳐 지나가 사라지는 장면들이 나에게 오면
핫도그. 밀가루 반죽이 뜨거운 기름에 빠져 어두운 갈색이 되면 건져낸다. 잘 익은 탄수화물과 고소한 기름의 냄새를 풍기는 통통한 핫도그를 한 입 베어 물면 케챱의 달고 새콤한 맛과 소시지의 짭조름한 맛까지 한 데 섞여 궁극의 감칠맛을 낸다. 취향에 따라 설탕에 굴려도 좋고 머스터드소스를 더해도 좋다. 갈색 바탕 위로 하얗고 빨갛고 노란 것들이 더없이 먹음직스럽지.
고등학교 급식시간, 점심 메뉴 중 하나로 핫도그가 나왔다. 밀가루반죽을 둘러 갓 튀긴 핫도그가 아닌, 작고 밋밋한 공장에서 나온 냉동핫도그였지만 특식이라고 나를 포함한 친구들 모두가 좋아했었다.
나는 핫도그 꼬챙이에 붙은 반죽부스러기까지 깨끗이 뜯어먹고는 교실로 올라갔다. 화장실에서 이를 닦은 후, 교실로 들어가 내 책상에 앉아 영어단어를 노트에 적으면서 외우기 시작했다. 내 앞자리에 앉던 친구도 이를 닦았는지 칫솔케이스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바가지머리에 아주 작고 하얀 친구였는데,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친구는 무심히 나에게 말했다.
- 트림을 했더니 핫도그 냄새가 나.
놀랍게도, 그 말을 하는 친구가 너무 귀여웠다. 트림을 했다는데 이렇게나 귀여울 수 있나? 내가 남자였다면 지금 방금 반해버렸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더불어 나의 트림냄새도 떠올렸다. 나도 그 냄새를 안다. 같은 걸 먹었으니 냄새도 같겠지. 하여간 작고 하얀 친구가 트림을 한다는 것도, 트림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귀여운 것도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 트림을 했다니 00 냄새가 나.
그 이후로 나는 이따금씩 이 말을 하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어본 적은 없다. 그 말을 하는 내가 귀여울 리 없었으니까. 십 년도 더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핫도그 하면 그 친구가 생각난다. 가끔은 트림을 하다가도 그 친구를 떠올린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그 친구의 말투와 하얀 얼굴과 귀여운 표정은 생생하다. 그건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그 기억을 꺼내보았기 때문이다.
- 그때 걔가 그랬었잖아.
- 그래? 나는 전혀 기억 안 나는데.
나에게만 유독 특별한 장면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니어서 스쳐 지나가 사라지는 장면들이 나에게 오면 찰칵, 하고 사진처럼 찍힌다. 사진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한 사람의 시각으로 찍는 것이어서 아무리 비슷하게 찍는다 해도 세상에 유일하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오직 내 눈과 내 마음으로 촬영되어 나만의 기억으로 저장된다. 이 별것 아닌 작은 기억이 나의 머릿속에 저장된 이유는 아마도 그 친구를 부러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까맣고 큰 편에 속했으므로, 내 앞에 앉아있는 그 찹쌀떡 같던 아이가 신기했다.
친구들과 양평을 놀러 간 적이 있다. 양평해장국만큼 유명하다는 두물머리 핫도그를 줄 서서 샀다. 잘 튀긴 핫도그를 설탕에 굴리고 케챱과 머스터드도 맛깔스럽게 뿌려주셨다. 통통해서 한입 베어 물기 어려운 핫도그를 후후 불어 씹어먹고 또다시 그 친구를 떠올렸다. 내가 지금까지 기억을 되새기고 있다는 사실을 그 친구는 알까. 알게 된다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누군가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면, 순간의 장면을 찍어 사진으로 저장하고 있다면, 부디 좋은 기억이길 바란다. 조금 웃긴 기억이어도 좋겠다. 내가 이따금씩 당신을 떠올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