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심각했던 2년 동안 말을 한 양이나 횟수가 활발히 활동했던 때의 1%도 안 될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몇 주 동안 말 한마디 안 할 정도로 말의 무용함을 느끼기도 했었는데, 컨설턴트이자 강사로서 십여 년을 많은 말들을 하며 목을 썼으니 몇 년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덕분에 목 컨디션도 더 나아질 테니 말을 하지 않는 지금이 더 좋다고 합리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되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성대도 굳는다는 것을. 움직이지 않는 성대, 떨림이 없는 성대는 운동 기능이 퇴화되어 오랜만에 말을 하게 될 때면 목소리가 갈라지고 둔탁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오기 시작하더니 약 한 달간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나올 정도로 목이 잠겨버리게 되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차도가 없어서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성대가 부어있을 뿐 큰 이상은 없는데 말을 너무 안 하면 장기적으로 성대 관리가 어려울 수 있으니 목을 풀어주는 운동이라도 조금씩 해보라고 했다.
심리적인 영향이었을까?
정말 기능이 퇴화하려던 것이었을까?
그 뒤로 성대를 보호하기 위한 운동과 따뜻한 물, 그리고 통화를 가끔 하면서 목을 풀어주었더니 상태는 호전되었지만 2년의 묵언 생활의 여파로 현재도 목소리가 쉽게 잠기고 갈라지는 후유증이 남아버렸다.
“쏘지 않으면, 명중 확률은 0퍼센트다.”
캐나다 아이스하키계의 전설인 웨인 그레츠키(Wayne Gretzky)가 한 말이다.
바꿔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번아웃을 벗어날 확률은 0퍼센트라는 말이다.
조금 더 해 봐야 알 것 같았다. 내가 본업이 싫어서 번아웃이 온 것인지, 유학에서 지쳐 번아웃이 온 것인지. 2024년 올해는 다양한 일들을 시도해 보고 있다. 번아웃 극복을 위해 자기 계발을 하겠다며 처음으로 수강했었던 퍼실리테이션을 실전에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외교부 산하 준정부기관에서 경영 목표 전략 워크숍의 테이블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하여, 정책 변화에 따른 부서별 전략 재설정 논의가 열띠게 벌어지는 곳에서 토론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역할이었다. 스펙이며 능력이며 마인드이며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들의 언어와 자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각자의 전문 영역이 다를 뿐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번아웃을 핑계로 4년 이상을 낭비한 것 같아서 더 분발해야겠다는 긍정적인 자극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 본업과 관련하여 공공기관 면접 질문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정부산하 기관들에 대해서 자료를 수집하면서 세상에는 배워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면서 배움에 대한 부담과 함께 기대가 동반되었다. 다시 뭔가에 열중하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일은 기업 또는 기관이 후보자의 업무 능력 등을 주변 인물을 통해 확인하는 평판 조회(Reference check)였다. 보고서 작성 초기 작업들을 경험하며 이렇게 나의 업무 영역을 넓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년 사이 가장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배우는 것은 많아서 바쁜데, 돈은 못 번다고 하니 동생이 물었다.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냐고, "
이 일이 나에게 앞으로 돈이 될지 안 될지 그것은 확신할 수 없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살리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번아웃으로 본업에 대한 회의감과 무기력이 왔다면 본업이 아닌 다른 일을 시도하고 내가 갈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만약 본업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저 모든 것에 지쳐서 다 내려놓고 싶어서였다면 언제든 본업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이유와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과정이며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뜻깊은 시도라고 생각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