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면접 평가위원을 시작으로 한 달에 한두 번씩 서서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 뒤, 나의 유튜브를 보고서 연락했다며 특성화고등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유망직업에 대한 2시간 특강을 요청해 왔다. 생각지도 못하게 다시 시작하게 된 강의, 약 3주 전에 연락을 주어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기에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보고 연락을 주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튜브로 말하자면 대학원 유학 중에 워킹홀리데이 및 유학 과정, 장학지원 등의 정보들을 공유하는 영상을 올리다가 잠시 중단한 뒤, 졸업 후 나의 커리어를 살린 채널을 운영하기 위해 가장 관심 있게 보던 주제였던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직업이라는 내용으로 글로벌 동향 자료들을 정리하여 올렸었다. 채널명 "커가 채널 Career Guide Channel", 커리어 설계에 도움이 될 채널이라는 것과 성장하며 점진적으로 커가는 채널을 만들고 싶다는 취지의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이후 직업 관련 채널 중에서는 나름 상위권을 유지하는 듯했으나 2019년 코로나로 해외 취업이 무산되며 번아웃이 시작되는 시점에 활동을 중단해서 그때의 구독자 9천 명이 새로 유입되고 취소되는 것을 반복하면서 5년이 지난 지금까지 9천 명대로 남아있다. 영상은 많이 올리지는 않았지만 미래 유망직업과 감소직업 영상들이 인기 영상으로 추천되어 시청자는 계속유입되었고, 1년에 한 번씩 의무감에 짧은 영상을 업로드했을 뿐 잠자는 채널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중 몇 가지의 영상을 보고 연락을 했다니 반가우면서도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채널 이름만 그럴듯하게 지어두고서 정작 나는 커가지 못하고 퇴보하고 있는데... 강의 의뢰를 수락해도 될지 고민도 됐었지만, 최신 트렌드를 담아서 양질의 강의를 하겠노라 다짐하고 수락했던 것이다.
강의 준비기간 3주
세계경제포럼 World Economic Forum, 포브스 Forbes, US News & World Report, 국내외 HR 저널, 경제 뉴스 등을 리서치하여 2030년까지의 유망직업과 감소할 직업 트렌드에 대해서 준비했다. 2019년도에 만들었던 영상의 유망 직업 리스트들은 해가 거듭하면서 더 세분화되었고, 감소 예상 직업들은 블루칼라 직종에서 화이트칼라 직종까지 확대된 것을 보며 2~3년 사이에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AI 기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꾸준히 관련 뉴스들을 접해왔기에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으나 오랜만에 만들어 본 강의안에 디자인적으로 업그레이드된 형식을 담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강의의 질이다. 첫 강의는 형식보다 퀄리티에 집중하여 3주간 집중하여 그렇게 준비를 마쳤다.
몇 년 만에 선 강단
강의 당일은 금요일 오후 3시. 1~2학년 대상으로 미래유망직업을 알아보는 교육을 진행했다. 다들 집에 가고 싶을 시간임에도 학생들은 착실히 교육 내용에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나는 준비한 내용들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눈빛으로 육성으로 제스처로 학생들과 교류했다. 초반 집중도는 좋았으나 강사의 재량이 부족했던지 학생들은 하나둘씩 잠에 빠졌다 깨기도 했고, 집중력이 흐려지는 모습이 보여서 강의 후반에는 계획에 없던 실습을 추가하면서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직접 원하는 직업을 서치하여 진로 플랜을 작성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었고,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진로 계획을 구상해 갔다. 그리고 나는 강단 아래로 내려가 학생들이 적어둔 내용과 계획들을 들으며 추가하면 좋을 플랜과 새로운 방법들을 알려주며 참여형 강의를 마무리했다.
몇 년 만에 진행하는 강의인만큼 현장에서 떨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으나, 마치 얼마 전까지 강단에 섰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고등학생들이 더 집중하고 흥미로워 할 수 있는 효과들과 교수법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던 강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메일로 강의를 요청했던 선생님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리며,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에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강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인사한 뒤 학교를 나왔다. 부디 참여 학생들 중 한 명이라도 그 강의를 통해서 자신의 진로 설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계속 남는다. 그리고 방과 후에 피곤하고 집에 가고 싶었을 텐데, 강의 시간 내내 잘 견뎌주어 고맙다는 말도 함께 남기며, 그렇게 첫 복귀 강의를 마쳤다.
기억해. 그날의 느낌을.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학생들의 눈빛과 강의에 임했던 나의 자세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강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뒤로 미루는 일이 반복되었다면 강의 복귀는 더 어려워졌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일단 시도해 봐야 한다는 것을 그 덕분에 깨닫게 된 것도 있다. 비록 뛰지 못해 걸어서 넘은 장애물일지라도 한 번 넘어보니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그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인생책 중 하나인 양순자 선생님의 <어른 공부>에서는 이런 문장이 실려있다.
"풀어서 풀릴 수 있는 것은 괴로움이 아니요,
참고 기다려서 해결되는 것이면 고통이 아니더라.
세상 살아가면서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자.”
어차피 100% 만족하는 강의는 없다. 잘했지만 스스로 조금만 더 했으면, 이거 하나 더 했으면 하는 부분들이 항상 있었다. 첫 복귀 강의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진실과 과장 어디쯤에 있을 나의 마음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보완하는 시간을 가지고, 과장된 자기 비하적 생각에 대해서는 빨리 잊고 털기로 했다. 다행히도 몇 달 뒤 대학교 신입생들 동기부여 및 학교 생활을 계획하는 3시간 강의에서는 첫 복귀 강의 때보다 더 재미있고 몰입감 있는 내용들로 채워서 스스로를 조금은 위안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