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격상 나의 힘든 상황을 남들이 아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번아웃이 심각해질 즈음부터 대인관계를 피하고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갔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폐쇄적으로 변했고, 대인기피증으로 눈도 마주치기 힘든 상황이 되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안 만나면 문제 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부정적인 생각이 극에 달하고, 매일 어떻게 죽는 것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방법일까에 대해서 고민했다. 만약 그 시기에 아무도 나의 동굴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나의 결말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내게 말벗이 되어주는 사람, 나에게는 감사한 사람이자 삶을 다시 살아야겠다 생각하게 해 준 은인은 바로 한 살 아래 동생이었다. 대학원 유학시절부터 조금씩 시작된 번아웃 증상, 그때부터 동생은 알아차렸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카톡을 보내며 일상대화를 하고 한 달 내 카톡 대화가 동생밖에 없었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졸업 후 더 무기력해진 몸을 이끌고 귀국했을 때 초췌해진 나의 모습을 보며 동생은 확신했을지도 모른다. 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내색 한 번 없이 일상대화를 걸어오며 하루의 시작을 함께하고, 고향 집에서 산에 갈 때가 아니면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도 서울에 있던 동생은 내게 일상대화를 걸어왔다.
그 누구와의 대화도 싫고 귀찮아서 단절했지만, 내가 아끼고 사랑하고 미안해하는 동생의 연락만큼은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었던 것인지갑자기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상담을 좀 받아보는 게 어떨까?”
그 말에 무슨 상담이냐며 버럭 화를 냈고 감정은 다시 요동치며 불쾌해졌다.
“대체 나를 뭘로 보고! 나 정상이라고! 그저 사람도 만나기 싫고 일이 하기 싫고 삶에 대한 의욕이 없을 뿐 멀쩡하다.”라고 대답했지만
“그게 이상한 거야”라고 말하는 동생.
“왜? 뭐가 이상하냐?”라고 되물으니
예전의 언니는 집에 있는 날이 드물 정도로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고, 일이나 목표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서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지금은 정반대라며자신을 제대로 보라고 했다. 매일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회의적인 말만 늘어놓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채 자기 안에 갇혀 버린 듯 보인다며...
동생도내가 정신적 고통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느낀 것 같았다. 그래서정신의학 상담을 받으면서 속내를 털어놓다 보면 속이 시원하거나 혹은 약을 통해서라도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 제안한 것인데 내가 버럭 화를 낸 것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나도 인지하고 있었던 정신적 문제들이 타인에 의해 드러나게 될 때 그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더욱 ‘정상’이라고 우겨댔는지도 모른다.
동생도 아마 처음 경험하는 누군가의 번아웃 상황이었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는지 몰랐으니 내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번아웃을 극복할 즈음 책을 통해서 나의 증상이 다른 것들보다 번아웃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스스로 번아웃을 겪었다 말을 하는 것이지 누구도 그때 나의 정확한 병명은 알지 못한다.
어쨌든 그 후로 다시 정신과 상담을 권하는 동생에게
“세 번 말했으면 충분하니 그만하라며, 내가 더 정신 붙들고 살아 볼 테니 걱정 말라.”는 말로 정신과 이야기는 끝이 났다.
몇 년 동안 내가 겪는 정신적 변화를 지켜보고 알아차려준 동생, 그것을 말하면 기분이 상할까 몇 달을 두고 보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을 그 마음을 알기에 나를 더 현실적으로 인지하게 한 것 같다.
믿고 마음 나누는 세상 가장 친한 사람이자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칠흑같이 어두운 늪지대에서 허덕이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 한 번만 정신 차리고 살아보자는 마음이 생긴 것이 그즈음부터였다.
내가 번아웃을 이겨내는 데는 지속적인 관심과 연락을 취해 줄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했던 것이 이 때문이다.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입을 꽉 다문 채로 살아가는 시기에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들리지도 보이지도 대화하고 싶지도 않아 진다.그리고 가끔 여유 있을 때 들러 나태한 나를 보며 이래라저래라 말한다고 한들 그것이 마음에 와닿을 리 만무하다.
진심이 전해질 수 있는 한 사람의 마음,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진정성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이 매달린 절벽이 어디인지 인지할 수 있는 때가 온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안 좋았던 그 시기를 떠올려 보면 어떻게 살아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매일 스스로의 능력을 한없이 낮게 평가하는 루저 마인드가 깊숙이 박혀서 최종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력자로 인정해 버리고,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니 살아서 무엇을 하겠나” 답이 막힌 질문만 반복되는 상황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끝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런 순간순간마다 동생이 있었고, 꾸준한 관심 덕분에 감정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톡을 보내 일상대화를 걸어준 것이다.
내가 일상대화라고 계속 말하는 이유는 그 당시의 내 상태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나 지적하는 부분 없이 그저 나도 ‘평범하게 하루를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시답지 않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 있었던 무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었음을 번아웃을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혹은 주변에 누군가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힘든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고 평범하게 삶에서 나눌만한 가벼운 이야기로 지속적인 연락과 관심을 줘야겠다고 말이다.
"오늘 날이 좋은데 산에 다녀온 건 어때는지",
식사 메뉴, 날씨, 일정, 회사 생활 이야기 등 일상 이야기 속에서 감정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진심을 담은 마음이 전해지는 그날은 꼭, 반드시 온다.
다만 마음이, 정신이 많이 닫힌 사람에게는 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기다려준다면 그 덕분에 한 사람이 새로운 인생을 살 기회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