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졸업 전 취직한 첫 직장에서 뼈를 묻고 사장까지 되겠다던 호기로움을 뒤로하고 입사 3년 차에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떠나야 했던 적이 있다. 기업에 채용 일정에 맞춰 온라인 광고를 게재해 주는 영업을 했었는데, 입사할 때부터 기울어지던 회사 이미지가 점차 더 자리를 잃어가며 인원 감축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내부실정은 모르고 열심히만 하면 평생직장이 될 줄 알았던 그때, 순수했고 무모했던 첫 직장의 기억이다. 그 후 취업컨설턴트로 몇 곳의 직장을 거쳐 사회생활 6년 만에 정부지원을 받아 창업을 하게 되면서 1인 사업가, 프리랜서로 독립하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나를 고용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2년 만에 처음으로 본업을 시작하던 날.
오랜만에 일을 한다는 것에 부담은 있었지만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공기업 입사서류 평가위원으로 참여하여 신분 확인 후 휴대폰을 반납하고 자리를 안내받은 뒤, 전체 참석자 명단 호명을 하는데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조ㅇㅇ님, 나의 첫 직장같은 부서, 다른 팀의 팀장님 이름과 같았다. 몇 년 만에 다시 들어보는 그 이름. 흔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설마 하는 생각으로 혼자 휴식하던 그 순간 반가운 목소리로 누군가 나를 불렀다.
“J 씨!맞네!, 이름 듣고 왠지 J 씨 일 것 같더라.”. 팀장님은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J 씨 옛날이랑 하나도 안 변했네, 어쩜 이렇게 똑같아!, 대학원 유학 갔다는 소식 건너 들었는데 한국 왔나 보네. 반갑다 이렇게 다시 만나고.”
그 말에 나는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17년 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똑같아 보인다니!”,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없었지만 해보겠다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열정으로 패기가 넘치고 역동적인 삶을 살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나 다른 모습인데... 어떻게 똑같다고 할 수 있을까? 믿기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예전처럼 보인다는 말에 안도감도 들었다. 번아웃으로 지치고 무기력하게 있던 모습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평범해 보이는 모습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밝아 보이려고 한 염색이 빛을 발한 것일 수도 있고, 어두운 얼굴빛을 숨기기 위해 덮은 메이크업이 효과가 있었던 것 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들키지 않았으니 성공이었다.
그리고 십수 년 만에 다시 만난 첫 직장 인연에 반가운 마음이 들던 차에 팀장님의 한 마디에 울컥해 버렸다.
“J 씨 신입 때도 대학원 유학 갈 거라고 말을 했었는데 진짜 갔다는 얘기 듣고 역시 실행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유학을 가기 전까지 나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던 경주마 같았고 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가였다. 그런 모습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고 잊고 있었던 내 모습을 다시 찾아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유학 후 망가져 버린 듯한 내 모습.
감정 기복이 심했던 시기에 다시 만난 팀장님,
사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날은 눈물이 가득한 상태로 반나절을 보냈던 것 같다.
예전에 우리는 다른 팀이었고 그리 친하지도,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다고 기억하는데,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에게서 나의 옛 흔적들을 찾으니 왠지 모를 친밀감도 들었다. 나는 원래 친한 사람들,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 무리 안에서 나의 모습을 보여줄 뿐, 다른 곳에서는 형식적으로 잘하지만 나의 본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러나 그날은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참아야만 했다. 내가 그리 가깝게 생각하지도 친하지도 않았던 사람의 한 미디일 뿐이었는데…
니 태주 시인의 <풀꽃 2>가 떠올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도 관심이 있어야 그 예쁨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를 다시 만난 팀장님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그 후 우리의 공통분모인 첫 직장 멘토님과 함께 만나게 되면서 그녀의 진면목을 알아갈 수 있어 내게 의미 있는 풀꽃이 되었다. 다시 살아 보겠다고 사회로 나온 나에게 열정과 의지란 무엇인가를 상기시켜 준 고마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