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중기와 말기부터 무력감이 심해지면서 모든 것에 손을 놓게 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생각 또한 내 안에 갇히게 되고 암울한 질문에는 항상 암울한 답들만 뱉어내고 있었다. 에너지가 넘쳤던 사람이 몇 년 사이 그야말로 폐인 수준으로 망가지면서 벼랑 끝으로 스스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태. 한국에 돌아온 이후 2년 넘도록 동생의 지속적인 관심과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말들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조금씩 번아웃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서 실천했다. 처음은 운동으로 시작해서 다음은 면허증 3가지를 취득하는 버킷리스트 도전, 그다음은 가정집 청소라는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것들을 시도해봤다. 그러나 한 번에 모든 것을 번아웃 이전처럼 되돌릴 수 없었고 때로는 더딘 변화에 화도 나고 실망도 하면서 "그냥 번아웃의 덫에 걸린 채로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지금까지 노력했으니 그래도 한번 더 해보자는 작은 의지가 나를 붙잡았고, 이번이 마지막, 이번이 마지막을 거듭하며 미미한 변화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네 번째 시도였던 ‘새로운 분야 교육 수강’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낱 같은 의지에 기대어 교육을 들어 본다
공부하는 것은 싫어하지만 배우는 것은 좋아한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배움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싫어하는 공부도 하게 된다. 대학원 유학을 마치고 새로운 것을 배워본 적이... 3년 사이에는 없었던 것 같다. 공부에 질려서 배움도 포기하게 됐던 번아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배움에 대한 의지가 실낱 같지만 그래도 살아나고 있으니 무엇이라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처음으로 교육을 수강했던 것은 3일 과정에 120만 원 대의 퍼실리테이션 교육이었다. 번아웃이 있기 전까지 취업컨설턴트로 일하면서 강의와 컨설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MBTI, STRONG, 에니어그램, 웃음치료, 리더십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했고 업무에 유용하게 활용했었기에 교육과 자격증의 힘을 믿고 있었다. 첫 회사에서부터 이끌어 주셨던 멘토님의 추천으로 퍼실리테이션을 알게 되었고, 부담되는 가격만큼 양질의 교육과 개인의 발전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참여하게 되었다.
교육은 하루 8시간씩 3일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오랜만에 새로운 교육을 받으니 활기가 도는 것 같기도 했다. 번아웃 이후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집단 교육에서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반복하다 보니 “예전에 나는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나누는 것을 좋아했었는데”하는 씁쓸함도 느껴졌다. 최대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또 눈을 맞추려고 애를 썼었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나의 컨디션보다 자신들의 교육 목적에 집중했기에 우려했던 돌발상황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했던 첫 째날, 조금은 나아진 둘 째날, 그래도 불편함은 남아있던 셋째 날까지 무사히 코스를 마치고 수료를 할 수 있었는데, 만약 몇 시간 코스의 짧은 교육이었다면 아마 나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혼자 강의를 듣다가 집으로 갔을 것이다. 대인기피 증상이 단시간에 완화되지 않기 때문에 자주 보고 오래 볼수록 그 분위기에 적응하고 마음의 벽도 조금씩 낮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퍼실리테이션 교육을 들으면서 각자의 아이디어를 모으고,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을 하면서 해당 조에서 나온 결과물들을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는 시간도 있는데, 본업을 할 때도 긴장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서니 목소리의 떨림과 시선을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옛날에는 어떠했든 현재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의 모습이 영원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 순간을 견뎌야 한다.” 이런 생각을 반복하며 마치 극기 훈련을 하듯 하루하루를 보냈더니 3일 과정이 모두 끝난 것이다. 사실 그 순간에는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불안하고 떨림이 심했을지라도 지나고 나면 기억이 순화되어 그리 힘든 일이 아닌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는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하는 일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다시 그 순간을 마주하고 보니 “나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지”라는 생각에 찡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첫 교육은 내용도 충분히 훌륭했지만, 대인기피증에서 조금은 더 벗어나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새로운 배움을 택한 것은 결론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워도 바로 적용할 수 없는데 계속 교육을 받아야 할까?
어떤 것이 나에게 새로운 직업으로 연결될지 모르니 일단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듣고 싶은 교육이 없어서 수개월이 지나도록 집에만 있었다. 그리고 얼마쯤 후 또다시 멘토님을 통해 면접 평가위원에 대한 교육 정보를 듣게 되어 신청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멘토님은 나에게 있어 ‘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든 시기에 나에게 필요한 양분이 되어 줄 교육들을 알려주시니, 그 덕분에 사회로 조금씩 발을 내딛을 수 있었으니 감사한 분임에는 틀림없다.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번 교육은 국가지원으로 비용은 무료이며 1일 과정으로 기본과정과 심화과정으로 나뉘었다. 심화과정까지 빠르게 수료하고 싶었지만 교육 일정이 6개월 뒤에 계획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기본과정 수료 후 6개월 뒤 심화과정까지 마쳤다. 교육 내용은 취업컨설턴트로서 접점이 많아 어렵지 않아서 본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새로운 노동 관련 법규들과 면접 평가 위원으로서 지켜야 할 부분들에 대해 알 수 있어서 나름 유익했다.
일과 관련 없는 분야 교육도 듣자
그리고 세 번째 교육은 본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부동산 투자 초급 과정’이었다. 한적한 시골에 저렴한 집을 마련해서 혼자 지내고 싶었지만, 첫 경매 낙찰 실패로 인해서 그 꿈은 조용히 사그라들었고 지금껏 부동산에 대해 관심도 지식도 없었다는 것이 후회가 되어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5일 과정을 듣게 되었다. 사실 이 과정을 신청했던 이유는 5만 원의 저렴한 수강료도 있었지만, 교육 후기를 블로그에 올리면 그 5만 원 마저도 돌려준다고 해서 나의 후기와 수강료를 맞교환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돈도 안 벌고 쓰기만 하고 있으니 적은 금액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부동산 투자 교육을 받고서 경매 사이트들을 매일 찾아보았지만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다 보니 가지고 있던 자본금은 주식 손실과 생활비로 바닥나고 있던 실정이라 실전투자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교육 내용은 이미 경매를 준비하면서 온라인에서 찾아봤던 기본적인 내용들이 대부분이어서 사실 교육 효과는 크게 없었지만, 그 계기로 Wealthy 웰씨킴 블로그를 시작했기에 나름 그 또한 의미 있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특색 있는 블로그로 성장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총 4가지 교육 과정을 수료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무기력과 대인기피증상들이 한 번에 개선될 수 없기 때문에 천천히 변화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교육들을 들으려고 했었다. 다행히도 그 전략이 잘 맞았는지 이제는 사회로 나가 보자는 마음이 더 커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행운처럼 다가온 업무 제안 덕분에 진짜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본업으로의 복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