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한국직업방송에서 패널로 1년간 자리했을 때 경력단절여성들을 위해 시간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적합한 일들을 찾아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가능한 프리랜서처럼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소개해주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직업이 ‘정리수납컨설턴트’였는데, 그 이유는업무 시간은 2시간~10시간 이내로 정리 규모에 따라서 조율할 수 있어서 스케줄 관리에도 용이했고, 특히 시급이 기본 5만 원 이상으로 파트타임으로 시작하기에 좋은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이 직업을 소개한 이후로 직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현재는 프리랜서 직종에서는 인기직업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어서 소개한 것이 보람있었던 직업이기도 하다.
나는 전공과는 무관한 HR분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17년의 경력을 쌓으며천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번아웃이 오면서 일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이 짙어지니 가장 하기 싫은 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사회생활을 해야겠다 결심했을 때는 HR분야만 아니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 방송에서 내가 소개했던 직업들 중 꼼꼼한 성격을 활용해서 혼자 일할 수 있는 직업들을 나열해 보고 그중에서 관심 직업 1순위였던정리수납컨설턴트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초기 교육과 실습 과정을 이수하기에는 대인기피증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부담이 되었고, 방향을 틀어 이와 유사한 직업을 찾아 보았다.
얼마 후 집단 교육과정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교류가 적은 일, 그러면서 정리수납컨설턴트와 연결될 수 있는 일, 그것은 가정집 청소였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앱을 통해 의뢰인과 청소 용역인을 매칭해 주고 비대면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상황과도 잘 맞을 것 같아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업무는 청소 어플에서 청소원으로 신상을 등록 후 본인 거주지 인근에 리스트업 된 의뢰건 중 시간과 시급을 확인 후 선택하는 간단한 과정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2년간의 무직 생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시작한 일,청소 파트타임 시급은 10,800원에서 15,000 내외로 급한 경우 의뢰인이 시급을 더 높여 제안하기는 하지만 평균 12,000원 내외였다. 사전에 어플에서 해야 할 업무 내용과 청소 도구함 위치, 그리고 주의할 점에 대해서 안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교육도 별도로 필요하지 않았고, 현장 방문 시 의뢰인이 부재중인 경우도 많아서 혼자서 2시간~3시간 정도 일을 마치고 나오면 끝나니 할만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정집 청소는 어땠어?
일을 해보니 파트타임 청소를 의뢰한 가정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하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회성으로 밀린 청소를 대신해 달라는 경우가 많았다. 첫 청소할 집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는데, 곰팡이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청소상태가 최악이었다. 가만히 숨을 쉬기에도 쾌쾌 묵은 냄새와 먼지에 견디기가 힘들어서 가져간 마스크를 바로 착용해야 했다. 내 평생 이런 집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했었지만 그 뒤로도 그런 집은 아니 더 심각한 집들도 많았다. 첫 방문 가정은 싱크대에 주황색, 푸른색, 갈색 곰팡이가 뒤섞여 젤리처럼 뭉쳐져 있었고, 욕실에 미끌한 곰팡이 덩어리가 퍼져있어서 발을 헛디디면 남의 집에서 장사를 치를 것 같았다. 세면대에는 머리카락이 가득해서 물은 내려가지 않고 반쯤 남은 것이 몇 개월 된 것처럼 물때가 끼어있는데, 머리카락을 빼낼수록 딸려 나오는 이물질들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나려는 걸 참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내가 이렇게 설명을 하는 이유는 ‘그 어떤 것도 쉬운 일은 없다’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으나 삼가키로 한다.
2시간 내로 그 많은 청소를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는 생각으로 청소를 시작하며 먼저 빨래를 돌려두고 욕실과 찌든 때에 곰팡이 제거제를 가득 뿌려두었다. 그리고는 옷방과 거실 정리부터 진행한 뒤 청소기를 돌리고 스틱 물걸레 질을 했다. 빠르게 한다고 했지만 어느덧 1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남은 시간 동안 욕실과 주방, 빨래 널기 등을 다 마쳐야 했다. 땀을 비 오듯이 흘려서 가져간 수건으로 닦고 머리에 두건을 한 채 쭈그려 앉아서 욕실 변기 청소를 하는데, 세상 속상한 마음이 밀려오는 것이다. “내가 항상 일을 할 때는 돈값을 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이런 업무 강도라면 2시간에 2만 원이 아니라 20만 원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푸념을 하면서 과거 본업을 하며 열정적이었던 모습과 번아웃으로 무기력했던 모습, 그리고 토할 것 같은 상태를 참으며 남의 집 청소를 해주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면서 내 인생도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쓰는 일은 육체는 고되지만 정신노동보다 스트레스가 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컨디션이 안 좋은 집을 보면 스트레스는 물론 곰팡이균에 감염되어 병을 얻을 것 같았다. 실제로 청소를 끝낸 뒤부터 피부가 울그락불그락 이상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청소일은 끝냈고 앱을 통해 청소 종료를 누르면 하루 뒤 2시간 일한 시급이 입금되었다. 정말 몇 년 만에 땀 흘려 번 돈이다. 금액을 떠나서 일단 오랜만에 노동의 대가를 받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이후 여러 집을 청소하면서 겉으로 보면 외제차를 몰고 고가의 집에 살면서 외관은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집 내부는 이렇게도 엉망으로 해두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과 내면까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대면이 대부분이었지만 현장에 의뢰인이 있었던 집들은 나의 청소 스타일이나 청결 상태에 만족하며 한결같이 다시 와줄 수 없냐고 물었으나 정기적으로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서 혼자 할 수 있는 청소일을 한 것인데 집에서 계속 만나면 불편하다. 아직은 온전히 홀로 회복하며 재기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평생 직업으로 괜찮을까?
나름 내 성격과도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청소 전과 후가 확연하게 달라지고 깨끗하게 탈바꿈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하기도 했고, 고객 만족도 100%를 유지하며 성실하고 깔끔한 성격을 인정받은 것 같아 보람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가정집 청소는 좋은 경험으로 남기고 그만하기로 했다. 기본 시금보다 조금 높긴 하지만 2~3시간 정도의 단시간 내 해내야 하는 업무 강도를 본다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라고 생각되었다. 더욱이 일회성 일이다 보니 오가는 교통비와 2시간 내외 시간 소요까지 생각하면 최저시급보다 못할 때도 있어서 장기적으로 할 일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내가 방문한 의뢰인들 복 받은 거요! 나는 앞으로 내 집을 더 잘 청소하기로 했소. 굿바이."
그래서 나는 본업으로 돌아갈 것인가?
여전히 그 기로에 서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그야말로 경력 단절된 채 2년을 넘게 보냈고,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의욕이 없다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든 상황이니.
참 쉽게 돌아오지 않는 마음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일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되살아 날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던가.
본업이든 본업과 관련된 분야이든 교육을 통한 리스킬링과 업스킬링이 필요한 시점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