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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althy 웰씨킴 Oct 10. 2024

번아웃 극복을 위한 웜업 3. 청소하러 왔습니다.

새로운 일을 도전하면 마음의 변화가 생길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해


12년 전, 한국직업방송에서 패널로 1년간 자리했을 때 경력단절여성들을 위해 시간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적합한 일들을 찾아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가능한 프리랜서처럼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소개해주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직업이 ‘정리수납컨설턴트’였는데, 그 이유는 업무 시간은 2시간~10시간 이내로 정리 규모에 따라서 조율할 수 있어서 스케줄 관리에도 용이했고, 특히 시급이 기본 5만 원 이상으로 파트타임으로 시작하기에 좋은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이 직업을 소개 이후로 직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현재는 프리랜서 직종에서는 인기직업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어서 소개한 것이 보람있었던 직업이기도 하다.


나는 전공과는 무관한 HR분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17년의 경력을 쌓으며 천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번아웃이 오면서 일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이 짙어지니 가장 하기 싫은 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사회생활을 해야겠다 결심했을 때는 HR분야만 아니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 방송에서 내가 소개했던 직업들 중 꼼꼼한 성격을 활용해서 혼자 일할 수 있는 직업들을 나열해 보고 그중에서 관심 직업 1순위였던 정리수납컨설턴트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초기 교육과 실습 과정을 이수하기에는 대인기피증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부담이 되었고, 방향을 틀어 이와 유사한 직업을 찾아 보았다.


얼마 후 집단 교육과정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교류가 적은 일, 그러면서 정리수납컨설턴트와 연결될 수 있는 일, 그것은 가정집 청소였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앱을 통해 의뢰인과 청소 용역인을 매칭해 주 비대면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상황과도 잘 맞을 것 같아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업무는 청소 어플에서 청소원으로 신상을 등록 후 본인 거주지 인근에 리스트업 된 의뢰건 중 시간과 시급을 확인 후 선택하는 간단한 과정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2년간의 무직 생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시작한 일, 청소 파트타임 시급은 10,800원에서 15,000 내외로 급한 경우 의뢰인이 시급을 더 높여 제안하기는 하지만 평균 12,000원 내외였다. 사전에 어플에서 해야 할 업무 내용과 청소 도구함 위치, 그리고 주의할 점에 대해서 안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교육도 별도로 필요하지 않았고, 현장 방문 시 의뢰인이 부재중인 경우도 많아서 혼자서 2시간~3시간 정도 일을 마치고 나오면 끝나니 할만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정집 청소는 어땠어?


일을 해보니 파트타임 청소를 의뢰한 가정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하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회성으로 밀린 청소를 대신해 달라는 경우가 많았다. 첫 청소할 집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는데, 곰팡이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청소상태가 최악이었다. 가만히 숨을 쉬기에도 쾌쾌 묵은 냄새와 먼지에 견디기가 힘들어서 가져간 마스크를 바로 착용해야 했다. 내 평생 이런 집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했었지만 그 뒤로도 그런 집은 아니 더 심각한 집들도 많았다. 첫 방문 가정은 싱크대에 주황색, 푸른색, 갈색 곰팡이가 뒤섞여 젤리처럼 뭉쳐져 있었고, 욕실에 미끌한 곰팡이 덩어리가 퍼져있어서 발을 헛디디면 남의 집에서 장사를 치를 것 같았다. 세면대에는 머리카락이 가득해서 물은 내려가지 않고 반쯤 남은 것이 몇 개월 된 것처럼 물때가 끼어있는데, 머리카락을 빼낼수록 딸려 나오는 이물질들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나려는 걸 참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내가 이렇게 설명을 하는 이유는 ‘그 어떤 것도 쉬운 일은 없다’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으나 삼가키로 한다.


2시간 내로 그 많은 청소를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는 생각으로 청소를 시작하며 먼저 빨래를 돌려두고 욕실과 찌든 때에 곰팡이 제거제를 가득 뿌려두었다. 그리고는 옷방과 거실 정리부터 진행한 뒤 청소기를 돌리고 스틱 물걸레 질을 했다. 빠르게 한다고 했지만 어느덧 1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남은 시간 동안 욕실과 주방, 빨래 널기 등을 다 마쳐야 했다. 땀을 비 오듯이 흘려서 가져간 수건으로 닦고 머리에 두건을 한 채 쭈그려 앉아서 욕실 변기 청소를 하는데, 세상 속상한 마음이 밀려오는 것이다. “내가 항상 일을 할 때는 돈값을 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이런 업무 강도라면 2시간에 2만 원이 아니라 20만 원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푸념을 하면서 과거 본업을 하며 열정적이었던 모습과 번아웃으로 무기력했던 모습, 그리고 토할 것 같은 상태를 참으며 남의 집 청소를 해주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면서 내 인생도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쓰는 일은 육체는 고되지만 정신노동보다 스트레스가 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컨디션이 안 좋은 집을 보면 스트레스는 물론 곰팡이균에 감염되어 병을 얻을 것 같았다. 실제로 청소를 끝낸 뒤부터 피부가 울그락불그락 이상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청소일은 끝냈고 앱을 통해 청소 종료를 누르면 하루 뒤 2시간 일한 시급이 입금되었다. 정말 몇 년 만에 땀 흘려 번 돈이다. 금액을 떠나서 일단 오랜만에 노동의 대가를 받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이후 여러 집을 청소하면서 겉으로 보면 외제차를 몰고 고가의 집에 살면서 외관은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집 내부는 이렇게도 엉망으로 해두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과 내면까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대면이 대부분이었지만 현장에 의뢰인이 있었던 집들은 나의 청소 스타일이나 청결 상태에 만족하며 한결같이 다시 와줄 수 없냐고 물었으나 정기적으로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서 혼자 할 수 있는 청소일을 한 것인데 집에서 계속 만나면 불편하다. 아직은 온전히 홀로 회복하며 재기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평생 직업으로 괜찮을까?


나름 내 성격과도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청소 전과 후가 확연하게 달라지고 깨끗하게 탈바꿈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하기도 했고, 고객 만족도 100%를 유지하며 성실하고 깔끔한 성격을 인정받은 것 같아 보람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가정집 청소는 좋은 경험으로 남기고 그만하기로 했다. 기본 시금보다 조금 높긴 하지만 2~3시간 정도의 단시간 내 해내야 하는 업무 강도를 본다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라고 생각되었다. 더욱이 일회성 일이다 보니 오가는 교통비와 2시간 내외 시간 소요까지 생각하면 최저시급보다 못할 때도 있어서 장기적으로 할 일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내가 방문한 의뢰인들 복 받은 거요! 나는 앞으로 내 집을 더 잘 청소하기로 했소. 굿바이."



그래서 나는 본업으로 돌아갈 것인가?

여전히 그 기로에 서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그야말로 경력 단절된 채 2년을 넘게 보냈고,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의욕이 없다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든 상황이니.


참 쉽게 돌아오지 않는 마음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일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되살아 날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던가.

본업이든 본업과 관련된 분야이든 교육을 통한 리스킬링과 업스킬링이 필요한 시점임에는 분명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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