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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_박완서 저

by Wealthy 웰씨킴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다가가기 어려운, 어려운 글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글을 썼을까.

40세, 예전으로 보자면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40년간 글을 써오면서 어떤 경험을 했을까.

첫 책, <와썹 번아웃! What's up Burnout!>을 출간하고 나서 나와 비슷한 나이였던 그녀의 작가로서의 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보니, 나의 두려움은 선입견(先入見)에서 기인한 오판임을 깨달았다.

역시 내가 아는 선에서만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이 맞았다.

다독을 하면서도 여전히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하며, 다문다독다상량 (多聞多讀多商量)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할 것을 다짐해 본다.


오늘의 1독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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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완서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일곱 살에 서울로 이주했다. 숙명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이 일어나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마흔의 나이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여든에 가까운 나이까지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며 소설과 산문을 쓰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 담낭암으로 투병하다 2011년 1월 22일,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 세계는 유년의 기억과 전쟁의 비극, 여성의 삶, 중산층의 생애 등으로 압축된다. 장편소설 『나목』 『목마른 계절』 『도시의 흉년』 『휘청거리는 오후』 『오만과 몽상』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서 있는 여자』 『미망』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을 썼으며,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배반의 여름』 『엄마의 말뚝』 『너무도 쓸쓸한 당신』 『그 여자네 집』 『친절한 복희씨』 『기나긴 하루』와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살아 있는 날의 소망』 『한 길 사람 속』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두부』 『한 말씀만 하소서』 『호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노란집』『세상에 예쁜 것』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기행문 『모독』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등이 있다.





중고등학교 땐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성공한 인생을 반쯤 달성한 줄 알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이 알아주는 대학을 나올수록 가족이나 세상 사람의 기대치도 높아집니다.

기대에 못 미칠 때 일류 학벌이 도리어 열등감이 됩니다.

열등감처럼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게 없는데,

그건 그 사람이 처음에 우월감의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으스대는 쾌감을 알기 때문에 아무도 안 알아주는 입장을 참아내지 못하는 겁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에서


<인사이트>

잘나 보이는 사람들의 열등감,

혹은 잘나 보이려는 사람들의 열등감을

몸소 느껴 보았기에 더욱 공감하는 부분이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나면 더 큰 성장과 함께

성숙한 사람이 될 것이라 기대하지만,

막상 한 발치 더 나아가도 이전의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낄 때

좌절감과 열등감이 밀려올 수 있다.


그것은 나보다 나은 타인과 비교할 것도 없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1차적인 감정이다.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은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보는 관점과 생각보다 더 앞선

생각과 기대를 가진 타인이 부담을 안겨준다면

열등감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어진다.


그런 때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

"이만하면 충분해, 지금도 아주 잘하고 있어."

그동안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은 그 누구보다 앞서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관점을 지키며

긴 삶을 살아 낼 수 있다.




이렇게 최근의 기억이 형편없이 희미해지는 반면 오래된 젊은 날의 기억은 변함없이 생생하고, 어린 날의 기억 중에는 미세한 부분까지 놀랄 만큼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도 있다. 때로는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일까,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상일까 의심스러울 적도 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에서


<인사이트>

기억의 편린은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되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한다.


안 좋았던 기억이 안 좋은 것만은 아니었음을

좋았던 기억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음을.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현재가 행복하고 만족스러우면

과거의 힘든 기억은 현재의 감정에 의해

순화 또는 희석되는 것처럼,

인간의 감정과 기억은 온전히 믿을만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영광과 보람은 짧고 고통은 긴 것이 삶이라지만,

박완서 작가의 말처럼 짧은 순간의 결과만 좇지 말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즐길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의 삶은 무수한 과정으로 이루어지기에

그 과정들을 힘들고 고통스럽게만 생각한다면

인생의 전반을 둘러볼 때 '고통'이라는

키워드로 채워질 수도 있다.


억지로 행복해지려 하지도 말자.

행복에 대한 강박이 삶을 압박할 수 있다.

가능하면 불행보다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안 좋은 것들은 오래 담아두지 않으려 노력하면

그것만으로도 불행하지 않은 삶이 될 수 있다.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에서


<인사이트>

혼자만의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누군가가 앞서고, 때로는 뒤따를 때도 있다.

본인만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같은 길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매 순간이 똑같지 않을 수도 있다.

본인만 알 수 있는 속도와 보폭이 있을 뿐.


인간 세상의 이치는 동일한 원리로 적용되고

그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삶이 외롭다 느껴질 때면

누군가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위안하고,

자신의 삶이 벅차다고 느껴질 때면

나만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위안하면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면 된다.





전형적인 보통 사람을 찾긴 힘들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고 또 그렇게 생각할 때 가장 마음이 편안한 것 같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큰 욕심 안 부리고 노력한 것만큼만 잘살아보겠다는 게 과연 보통 사람의 경지일까?

요새는 어쩐 일인지 죽기 전에 노망이 드는 노인네가 많다.

아마 수명의 인위적인 연장 때문에 정신은 천수를 다했는데 육신은 살아 있어서 그런 현상이 생기지 않나 싶다. 육신의 한계의 속절없음을 아직도 승복 못 하는 일흔이란 나이는 그래서 누추할 수밖에 없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마냥 꼬장꼬장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어느 틈에 허물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에서


<인사이트>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 중에

"세월에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다.

왜 어른들은 세월에 핑계를 대려고 하는 것일까..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들어서고 보니

반쯤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조금씩 육체의 변화를 체감하고,

예전에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조금씩 어려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세월에는 장사가 없을지라도

사는 동안은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유지하며

나의 의지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무너지면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고,

나 자신에게는 견디기 힘든 존재가 될 것이기에

'나를 위하는 삶, 나를 챙기는 삶'이

우선되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심신이 건강하지 않다면

천수를 누려서 무엇하겠는가.

희로애락도 건강할 때 고루고루 향유할 수 있다.

작가로서의 삶, 어른에서 노인으로 가는 여정을

박완서 작가의 스토리로 엿볼 수 있었던 시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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