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 작가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 1일 1독 Day 182일 차에 읽었던 프리드리히 니체의 글을 옮겨서 만든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를 통해 니체의 철학에 대해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찬란한 문학의 문장들>은 니체, 박완서, 헤르만 헤세, 김소월, 양귀자 등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는 작가들의 글을 모아 자신의 생각을 덧대었다.
각 작가들의 일대기와 사상, 글에 담긴 의미까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어서 유익하면서도 김욱 작가의 글에 매료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의 1독 <찬란한 문학의 문장들>과 함께한다.
저자 - 김욱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서울신문, 경향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서 30년 넘게 신문기자로 근무했다. 사회부 기자로 살아온 인생 덕분인지 역마살이라도 들린 것처럼 뛰어다니던 시절부터 글을 쓰는 일을 정말로 좋아했다. 퇴직 후 한국 생산성본부 간행 월간지 『기업 경영』에서 일반 사원 및 중간 관리자의 자질 향상을 위한 기획 기사를 집필했다. 또한 현대, 삼성, 농심, 대우 코오롱, 제일제당 등 기업 홍보지에서는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희망과 행복의 연금술사』, 『탈무드에서 마크 저커버그까지』. 『그들의 말에는 특별함이 있다』, 『취미로 직업을 삼다』 등 다양하다. 옮긴 책으로는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무인도에 살 수도 없고』, 『약간의 거리를 둔다』, 『황홀한 사람』, 『지적 생활의 즐거움』, 『지식생산의 기술』 등 100권이 넘는다. 2023년 93세의 일기로 타계하셨다.
인생의 공통점은 불행이다.
살면서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 못 느껴본 사람은 있어도 자신이 불행하고, 지금이 바로 절망의 때임을 깨닫지 못해 본 사람은 없다.
드넓은 세상에서 내 발부리를 아프게 하는 시련은 어쩌면 작은 돌멩이 하나쯤 인지도 모른다.
산소통도 없이 해발 8,000미터의 에베레스트를 올라가는 것보다는 오늘의 시련과 절망을 담담히 인내하고 극복하는 일이 더 쉬울 수도 있다.
현재의 고통과 실망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극복해봐야 한다.
<찬란한 문학의 문장들> 중에서
<인사이트>
좋은 것, 행복한 것보다
안 좋은 것, 불행한 것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다.
위기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생명을 유지해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유전자적 기질이라고도 본다.
그러나 우리는 선천적 기질과 더불어
후천적 기질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생각하는 동물이다.
비록 오늘의 고통이 클지라도 그 언저리에 있는
감사한 순간을 외면하지 않기를.
사실 그 자체로 판단하고 감정에 매몰되지 않기를.
그렇게 긍정의 후천적 생존 본능을
진화해 가기를 바라본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이육사 시 <절정>, 1939년 북간도 체류 후 조선으로 송환되는 중에 쓴 옥중 시
부스러지기 직전의 흑연에 침을 발라 손톱이 다 빠진 손끝으로 연필을 쥐고 시를 써 내려갔다.
온몸이 난도질당한 피투성이의 몸으로도 이육사는 청춘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떨리는 그의 오른손에서 태어난 시들은 의심하며 쓰러지는 법을 모르는 청춘의 찬가였다.
절망과 좌절과 포기를 강요하는 세상으로부터 이육사가 목숨을 걸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냈던 젊음의 저항이었다.
젊은 자의 분노는 권리가 아니다.
의무와 책임이다.
<찬란한 문학의 문장들> 중에서
<인사이트>
이육사李陸史의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이다.
일제가 운영하는 은행 폭파 시도가 실패하고
1년 7개월간 옥살이 후, ‘264’라는 수인 번호
시인의 이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치가 떨려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감옥살이를
시로 승화하는 정신력에서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안위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
그와 같은 독립투사들의 저항과 의지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당당하게 '우리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감사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가득해지는 한편,
나는 과연 우리나라, 우리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발전적인 미래가 있는 대한민국,
부강한 국가로서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지금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욕조 위에 걸린 싸구려 그림 취급을 받았다.
실력과 능력, 노력에 반하는 결과는 ‘타화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남들이 그린 내 얼굴에 지레 실망하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있다.
행방불명되어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천상병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서 이름 없는 노숙자로 발견되었을 때, 그는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약봉지에 시를 쓰고 있었다. 그 시는 모과차처럼 달고, 또 한편으로는 맵고 서글펐다.
《새》는 천상병의 첫 번째 시집이다.
고문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사람이 썼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순수하고 깨끗한 인간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歸天>
<찬란한 문학의 문장들> 중에서
<인사이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천상병 작가뿐만 아니라.
빈센트 반 고흐, 프란츠 카프카, 김유정 등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작가들이 많이 있다.
예전부터 작가라는 직업에는
'배고픔과 빈곤'이라는 말이 함께 했다.
살아 있을 때는 누려보지 못했던 부와 인정을
죽어서 얻는다고 한들 빈곤으로 고통스러웠던 삶이
보상되는 것은 아니다.
빈곤한 현실을 감내하면서 완성하고자 했던
작품에 대한 의지가 더 컸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빈곤과 정신적 피폐함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사람들도 있기에
결코 결핍과 고통이 작품성을 높여준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특히 시인 천상병의 일대기와
김욱 작가의 코멘터리를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한다.
그 후에 천상병의 시, <귀천歸天>을 읽게 된다면
소름이 돋도록 서글픈 반전의 삶과
고통 속에서 정신병자가 되어가면서도
순수하고 깨끗한 시를 표현해 낸 것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생전에 박완서는 여자의 한계를 언급하는 인간적인 모욕보다도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모욕을 더 참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존중하고 사랑했다. 소설가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그녀는 비로소 여자가 아닌 인간 박완서로서 자립을 성취했으며, 자존심의 근거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그저 뭔가가 되기에 급급하다.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는 모른다.
관심도 없다.
<찬란한 문학의 문장들> 중에서
<인사이트>
아이 한 명도 키우기 어렵다고 말하는 시대,
자녀 5명을 키워 내고, 아내로서의 역할을 하며
늦깎이 작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박완서 작가.
과연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나는 아이 한 명도 고사하고,
나를 키워내는 것에도 벅차하고 있다.
그것을 보자면, 나의 직업에 대한 열의와 열정이
한 참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던 것을 재확인한 셈이다.
무엇이 되기에 급급하기보다
왜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답을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가난은 무서운 것이다.
가난은 타고난 살결과 마음씨를 여지없이 망가뜨릴 수 있다. 가난은 순수를, 열정을, 꿈과 진실을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 있다. 오직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정주는 굶주림에 대한 염려 없이 시를 쓰기 위해 친일을 하고 독재의 편에 섰다. 그 결과, 서정주의 삶이 서정주의 시를 무너뜨렸다.
스물아홉 서정주가 배고픔을 못 이겨 ‘마쓰이 히데오’를 노래하던 순간,
서른 살의 내가 생계라는 명분으로 정권을 위해 거짓 기사를 펜으로 옮기던 순간,
절대로 회복되지 않는 인생의 상처가 생겼다.
그날의 기억에서 내가 배운 한 가지는 거짓은 달콤하지만 그 달콤함은 언젠가는 독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영원토록 쓰리고 괴로운 독이 된다는 것이다.
<찬란한 문학의 문장들> 중에서
<인사이트>
좋은 말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것이 왜 좋은지는
진짜 알지 못하고 있을 때가 많다.
문학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의미보다
드러나지 않은 의미들이 더 많다.
그것까지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은
문학적 소양이 깊거나 경험적 깨달음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소설류를 견디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해석하고 인정하는 의미를
나는 그 속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아주 조금씩은
이해되는 글들이 있다.
김욱 작가의 책은 두 번째이지만,
그의 삶과 생각에 대해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수 백 년 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들의 일대기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와 함께 이어지는 김욱 작가의 인생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수많은 작가들의 삶의 여정을 들어 보지만,
시련과 고통, 고난이 없었던 사람은 없었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의 힘겨움을
감내하며 살았다는 것에 유대감을 갖게 된다.
에피소드. 나는 몰랐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인 소설가 박완서 작가와 화가이자 작가인 천경자 님까지.
김욱 작가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우습다.
아무리 유명하고 훌륭하다고 해도 내가 알아보려 하기 전까지는 가치를 모른다.
그러나 짧게나마 그들의 인생과 작가로서의 스토리를 알게 되니 새삼 그들이 달리 보이고, 가깝게 느껴진다.
찬란한 문장들 속에 묻어나는 작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
오늘의 1독 <찬란한 문학의 문장들>를 통해 그 가치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