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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_한강 저

by Wealthy 웰씨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중학생 동호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내 지금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환기해 주는 책

오늘의 1독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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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강

1970년 겨울 광주에서 태어났다.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네 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을 출간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대산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산클레멘테 문학상, 메디치 외국문학상,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노르웨이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다. 2024년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다섯 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 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이었습니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들은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 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울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내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묵묵히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갔어.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를 쏟아낸 내 얼은 습자지같이 얇고 투명했어.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게 보였어.

(··· ···)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소년이 온다> 중에서


<인사이트>

어느 시대에나 악마보다 더한 인간들이 존재했다.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잔악무도한 행위를

그저 재미의 일환처럼 활을 쏘아 죽이고,

살려달라는 애원에도 무참히 목숨을 끊어 버린.


우리는 이미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 없이

이러한 잔혹한 장면들을 접해왔지만,

영상이 지나가는 순간처럼

장면이 잠시 스치고 지나갈 뿐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책으로 접하는 잔혹한 장면들은

읽는 내내 눈과 머릿속을 오가며

현실에서 보는 듯, 피부로 느껴지는 듯

더 와닿아 가슴이 저려왔다.


생명을 경시하고 무참히 파괴하는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는 틀에 포함할 수 있을까.

그들에 의해 거둬진 숭고한 생명들에게

애도의 마음과 함께 현재의 세상이 올 수 있도록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교차한다.


그 희생에 대한 보답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소년이 온다> 중에서


<인사이트>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도 나서서

총탄을 맞으며 지켜낸 민주주의.

그 시절의 시민의식과 애국심이 지금과 다를까?


양심, 그 양심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다.

내 안 깊은 곳에 있는 그 양심을 꺼내어

수시로 빛을 보며 힘을 키우고 있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양심,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지나치지 않는 양심,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숭고한 양심.

목숨을 내놓지 않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지원하려는 양심.


같은 상황을 맞닥뜨려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양심의 크기와 방식대로 행동한다.

그 옳고 그름의 판단은 오로지 '나의 양심'

기준에 근거하여.


그리고 위급한 상황 또는 위험한 상황일수록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혹은 더 작은

양심의 크기를 마주할 수도 있다.


아주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

대한 독립을 위해 나섰던 것처럼,

5.18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것처럼,

그리고 12.3 비상계엄 사태를 진압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육체적으로 나서서 힘을 더하고,

누군가는 정보전으로 나서서 힘을 더하고,

누군가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한국인의 양심은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해도

핏속에서 이미 발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곳의 한끼 식사는 식판에 담긴 밥 한줌과 국 반그릇, 김치가 전부였습니다. 그것을 우리들은 2인 1조로 나눠 먹었습니다. 김진수와 한조가 되었을 때, 서서히 혼이 빨려나간 짐승과 같은 상태였던 나는 안도했습니다. 그는 많이 먹을 것 같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얼굴이 창백하고 눈언저리는 병자처럼 어두웠으니까요. 두 눈은 생기도 표정도 없이 공허하게 번쩍였으니까요.

한 달 전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그 눈이었습니다.

멀건 콩나물국에서 콩나물을 골라 먹다 말고 멈칫 나를 보던 눈. 그가 콩나물을 다 먹어버릴까 봐 긴장하고 있던 나를, 우물거리는 그의 입술을 혐오하며 쏘아보고 있던 나를 묵묵히 마주 바라보던,

나와 똑같은 짐승이었던

그의 차갑고 공허한 두 눈.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 됩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소년이 온다> 중에서


<인사이트>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날의 기억에서 사는 사람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처참히 무너진 삶 속에서

잔혹한 기억들을 안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사람들.


큰 용기를 내어 의미 있는 일을 해냈음에도

잘한 것보다 타인의 희생까지 마음속에 담고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

그때 용기를 낸 것을 오히려 후회하지는 않을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존중은 묵살된 채

서로를 바라보는 짐승같은 눈 빛을 기억에 담고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삶.

무엇으로 그 기억을 희석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고,

그들의 노력과 희생, 가치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우리의 양심을 위한 책.

<소년이 온다>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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