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고민하게 되면서 항상 현재보다 나은 삶을 살겠다며 나를 다독이기 위해 일기를 쓰려고 했던 이유도 있었다. 하루를 보내고 반성하는 일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고, 좋았던 일을 기록하고 싶은 날들도 있었다. 그렇게 학창 시절부터 쓴 일기장들을 짐정리를 하며 찾게 되었고, 그 시절의 생각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세울 것이 없었기에 자존심을 내세우며 애써 멋진 척 보이려고 했던 그 시절의 나는, 때때로 찌질한 모습과 비겁한 모습도 보였지만 애써 숨기려 노력했다. 그러나 모두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은 잊었다 해도 나 자신만은 잊지 못하고, 오히려 가슴 깊이 그 기억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2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몇몇의 흑역사는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 걸"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아마 나는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 같아서 다시 가슴에 기억을 묻어두기로 했다. 완전히 털어낼 수 없는 과거의 추억은 한 번씩 나약해진 마음을 비집고 나와 어리석은 나와 마주하게 한다.
내게 일기장의 추억은 꿈 많은 나와 겁쟁이 나의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는 고백록과 같아서 나조차도 쉽게 들춰볼 수 없다. 그러나 언제고 어느 순간에고 일기장을 읽게 된다면 항상 반성 뒤에 묻혔던 열정과 의지를 실어준다. 그래서인지 일기장에 담긴 이야기가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나는 그 기억을 딛고 다시 일어나 잘해보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성실하게 쓰던 일기장은 대학교 시절부터 뜸해지기 시작했다. 살만해서인지 기록할만한 것이 없어서인지 아아 니면 학창 시절보다 더 게을러져서인지 나의 기록은 여기저기 흩어졌다. 노트에 기록하는 일기장보다 노트북이나 휴대폰 메모장에 떠오르는 생각을 쓰는 형태로 변했고, 수시로 메모장을 열어 기록했지만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그 기록들도 대부분 버려졌다. 그나마 노트북 메모장은 백업해 둔 것들이 있어서 메모형식의 일기들을 읽어볼 수 있다.
오늘은 2012년 연말에 썼던 기록들을 만났다.
사회생활 7년 차에 독립하여 서울시청년창업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두배러컨설팅'이라는 취업컨설팅 회사를 창업했고, 경력개발/해외취업 컨설팅 전문으로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보겠다는 포부가 있었던 그 해. 취업컨설팅 및 강의,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경험을 내세워 잘해보리라 다짐했지만 신생업체가 업계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았다. 큰 포부에 비해 경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지원사업 평가 A등급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4분기에는 B등급으로 마무리를 했다. 성장이 아닌 퇴보를 했다는 생각에 메모장에는 나의 실력과 노력 부족에 대한 자책을 많이 담겨 있었고, 내실을 탄탄하게 다지기 위해 여러 활동들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쓰여있었다. 그리고 지원사업 1년을 마무리하고, 해외 일자리를 경험해 보겠다며 유학을 떠났다.
치타가 될 수 없는 거북이
내가 보는 나는 항상 부족하기에 채워야 하고, 고쳐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항상 과거에는 열정과 의지가 더 강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내가 과거를 떠올리며 과거보다 열정이 덜해졌다고 느끼는 그대로 말이다. 아마 10년 뒤의 내가 이 기록을 본다면 2024년의 열정을 더 그리워할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 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폭풍적인 성장을 기대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누구보다 빨리 달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의지가 찬 눈 빛과 좋은 체격, 그러나 매번 순위는 중간 정도에 그쳤다.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과 달리 단거리스퍼트를 내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왜 나는 빨리 달리지 못할까"에 대해 항상 고민했지만,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채근만 했다. 그러나 달리 보니 나는 단거리보다 장거리에 장점이 있었다. 오래 달리기에서만큼은 근육이 아파도 버틸 정신력이 있었기에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었었다.
치타처럼 재빠르게 달려서 목표지점에 도달하고 싶었지만, 나는 치타가 아닌 거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낼 수 없지만 나만의 페이스로 꾸준히 나아갈 수는 있다는 것을. 기대에 못 미치는 나와 충돌하며 항상 자책하던 날들, 그 순간에도 나는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스스로를 채근하며 자책하다 마음이 부러졌고 다시 붙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나는 성장했을 것이다. 10년, 20년 뒤의 내가 알아볼 그 성장을 말이다.
부러진 마음을 회복하고 다시 맞은 연말, 새해에 대한 기대로 큰 목표를 설정하려다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마음을 바꾸었다. 2025년은 발걸음에 맞는 목표와 급하지 않은 계획으로 맞는 첫 해가 될 것이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반성하고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기에 거북이처럼 내 갈 길을 가는 것으로 충분하니 더 이상 채근과 좌절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지나고 나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응원과 기다림을 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