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ealthy 웰씨킴 Dec 31. 2024

번아웃 에피소드 -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마주하기.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기


죽을 만큼 힘들었던 날도 지나고 나면 기억이 되고, 또 잘 살아 내다보면 그 시절의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지난했던 번아웃 시기를 지나고 보니 절감하게 된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지하 동굴에도 끝은 있었고, 컴컴하고 막막하게만 느껴져도 빛이 드는 날이 있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은 살아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다 보면 감정의 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암울한 감정이 켜켜이 쌓여 한 번에 걷어낼 수도 없다. 그럴 때가 온다면 감정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이 어디로 흐르는지, 왜 이러한 감정까지 도달하게 되었는지, 자문하며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 


나는 감정을 부정하는 시기를 너무 오래 거쳤다. 번아웃, 우울증, 무기력, 자존감 상실 등 생각해 보지 않았던 감정과 상태를 경험하게 되면서 "나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정상이다."라고만 되풀이했다. 그럴수록 외면받은 감정은 내면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고, 멍울진 마음은 그대로 곪아 절망과 나락 같은 날들을 선사했다. 이 모든 것은 내 감정을 제때 살피지 못한 것에서 비롯됐다.


번아웃에 심각하게 잠식되어 있던 지난 몇 년간의 시간에 우울증도 함께였다는 것을 심리/정신 관련 책들을 읽으며 뒤늦게 인지하게 된다. 분명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이 평범한 것은 아니리라 확신했었지만, 정신에 병이 생겼노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회피하고 부정하며 번아웃은 무기력과 우울증을 오가며 더욱 심각하게 오래 지속되었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그때 조금만 더 빨리 인정하고,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더라면"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상적인 생각과 판단이 어려웠던 것 같다. 아니,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에 무의미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번아웃과 우울증은 없었다가 갑자기 100이 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서서히 정신과 육체에 스며들고 있음에도 그것을 부정하다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서야 깨닫게 되는데, 그때는 곪아 터져 버린 정신을 부여잡고 있기에도 벅찬 상황이 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번아웃, 무기력, 우울증은 시한폭탄과 같아서 시간이 임박해 터져 버리기 전에 멈추는 것이 가장 안전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고. 그러니 내 안의 소리를, 살려달라는 외침을 너무 늦게 듣지 않기를 바란다고.  




감정의 산을 넘어보라 권하고 싶다


번아웃이나 트라우마 등 정신적 대미지에 대해 느끼고 인지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과 믿음이다. 당연히 정신적 고갈로 인해 마주한 순간이기에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감정과 생각이 오래가지 않도록 하루만,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본인이 이겨낼 수 없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 넘을 수 없는 산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앞에 놓인 산은 내 산이다.

타인이 넘는다고 하여 내가 넘은 것이 되지 않는다. 

산을 넘고자 하는 의지도 내 선택이다. 

산을 넘어서기까지 느끼는 갈증과 통증, 회의, 포기하고 싶은 유혹들을 지나고 나서야 반대편으로 내려올 수 있다. 비록 어렵게 넘어온 산의 반대편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넘어선 그 자체만으로 가장 큰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절망의 끝에서 '포기와 죽음' 사이를 오가던 부정적 감정을 저 산 너머에 내려놓고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넘어선 산을 돌아보면 아득히 여정을 거쳐온 것처럼 느껴지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것이다. 


산을 넘어서면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은 넘기 전까진 좌절 속에 파묻혀 드러나지 않은 성장의 보석과도 같다.




나의 마음을 이해하니

너의 마음도 이해된다.


암울함이 걷히지 않을 것 같던 삶에도 밝아오는 해를 마주하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인해 삶이 승화될 수도 있다. 나는 번아웃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나와 다른 감정으로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만한 생각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에서는 "정서적 공감이 타인이 지금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는 과정이라면, 인지적 공감이란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행위이다‘나’를 ‘타인’의 자리에 놓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이 연습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생각과 그가 느끼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라고 했다. 이 말은 정말이었다. 나 또한 정신적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고 보니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공감을 통해 위안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공감을 받지 못해 자책과 자괴감에 빠진다.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시선에서의 무조건적인 공감은 나쁜 결과를 도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타인의 신발을 신어 본 이상 타인의 감정을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폭이 넓어진다. 마치 믹스 커피의 황금 비율이라는 2:2:2처럼 정서적 공감 2스푼에 인지적 공감 2스푼, 그리고 객관적 시각 2스푼을 더하면 달라질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동안 경험한 감정과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인생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깊이 자아성찰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오롯이 나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내 상처가 아물었기에 몇 년간 경험한 번아웃의 여정을 나와 같은 상황을 겪는 타인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열심히 살아온 이에게는 언제고 번아웃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수시로 자신의 정신과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고 재정비 상태를 가진다면 스쳐 지나갈 수 있다. 혹시라도 번아웃이 다가오더라도 너무 두려워하지도 너무 오래 물들어 있지도 않기를 바란다. 번아웃의 산은 작을수록 빨리 넘을 수 있고, 높을수록 고단하지만 한 줌의 의지만 남아 있다면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나를 눌러온 짐을 내려놓고 자신을 둘러보라. 그리고 휴식이 필요하다면 쉬어주고, 다른 동기가 필요하다면 시도하면 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는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