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날의 시

죽은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

by 이서

엄마는 우리가 죽은 줄도 모르고


죽어야 해

우리는 오래전에 죽었는데

엄마는 왜 또 죽고 싶어할까?


넌 잘살아라

엄마보다 더 오래전에 죽은 자식에게

미래가 있다는 듯이 말하는

쭈글쭈글 철없는 엄마


밥 먹자

오래전에 죽었는데도

나쁜 습관은 버릴 수가 없다


죽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오래전에 이룬 소원을

자주 잊어버린다


너무, 자주, 잊 · 어 · 버 · 린 · 다


안주철 『불안할 때만 나는 살아 있다』# 052


안주철 시인의 시집이 힘들었던건 감정의 동요랄까, 소모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기 때문인데,

이 시는 한겨울, 위태로운 비틀거림으로 언덕을 오르는 것 같은 감정의 경사를 더욱 가파르게 했다.

“죽어야 해 / 우리는 오래전에 죽었는데”

죽었는지도 모르고 사는 삶. 살아 있으나 이미 죽은 마음으로 견뎌내는 사람들.

그 말을 이렇게 조용하게, 덤덤하게 건넬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무섭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은 삶에 대한 소망의 반어법일지도 모른다.

“넌 잘살아라” 자식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은, 죽고 싶을 만큼 고단했던 시간과 삶이 배어 있는 한마디.

엄마는 그것을 그저 살아내고는, 그 고통을 짧은 습관처럼 말한다.

현실은 더 이상 바뀌지 않을 것만 같고, 다가올 미래 또한 달라지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는데,

무너질것만 같은 지금, 또 지금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쩌면 엄마가 소원을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이유는, 비록 지난한 삶이였지만,

그.럼.에.도. 살 만한 순간들이 기억의 닫힌 서랍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비단 엄마만의 이야기일수 없는 시의 절망이 비가 오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게 만든다.

담담해서, 더 아프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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