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잘라서 만든 너
혀가 긴 무덤
내 그림자를 잘라서
너를 만들고 말았어
내 그림자를 한줌 잘라서
너를 만들고 말았어
너를 잘라서
부족한 내 그림자를 다시 메우려고 하는데
너를 자르자마자
내가 무덤이 되네
내 그림자를 잘라서
너를 만들었는데
너를 자르면 왜 나는 무덤이 될까
자꾸 나는 무덤이 되네
너를 자를 때마다 나는
무덤이 되네
혀가 긴 무덤이 되네
안주철 『불안할 때만 나는 살아 있다』# 091
그림자를 잘라 만든 너, 그리고 무덤이 된 나
나의 일부인 그림자를 잘라 만든 너는 누구일까. 시인의 표현을 보면, 너를 만든 것은 내가 원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어떤 당위나 의지가 아닌, 피할 수 없었던 감정의 흐름 속에서 비롯된 결과 같다.
그림자는 나의 일부이지만, 나의 실체는 아니다. 그렇지만 잘라낸 자리의 허전함은 결국 메워져야만 채울수 있다. 나는 너에게 건넨 내 일부를 통해 다시 나를 채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너를 통해 돌아온 것은 무덤 같은 공허한 공간 뿐이었다.
시가 말하는 ‘혀가 긴 무덤’은, 관계가 끝난 뒤에도 내가 홀로 되뇌는 말들, 끝나지 않는 질문, 그리고 메워지지 않는 결핍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관계는 나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너’는 처음엔 나를 채워주는 존재인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더 비워내게 만든다. 너를 자를 때마다 내가 점점 더 작아지고, 결국은 무덤에 이른다. 무덤은 단순히 끝났다는 의미를 넘어서, 되돌릴 수 없다는 감정을 품고 있다. 나는 이해 할 수 없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점점 말이 많아지고, 혀가 긴 무덤이 된 내 말들은 누구에게도 가 닿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내 그림자를 잘라내 준 적이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