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겨울방주의 생각
저는 오늘 저녁에 말하기 공부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4주간 강의를 들을 예정입니다. 다만 다음 주 수요일은 토론 일정이 잡혀 있어 참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강의는 어떻게든 성실히 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사람의 세계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적절한 표현이 될 수도 있고, 혐오 발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흔히 쓰던 언어들이 지금 시대에는 혐오 발언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러한 발언을 일삼다가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저 또한 언어를 사용할 때 혐오 표현이 될 수 있는 말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가 몰랐다고 해서 그것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저의 업보이자 사용하는 언어 수준의 한계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요리를 배울 때는 이러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화려한 요리와 기술만 배우려고 했습니다. 또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만을 배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실패했습니다. 화려함에만 주목하여 많은 부분을 놓쳤습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한 것입니다. 좀 더 많은 인문학 책을 읽었더라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제 주장을 커뮤니티에 올려 다른 사람들을 피곤하게 했습니다. 그 대가로 커뮤니티 사람들(교회 청년부)에게 배척을 당했습니다. 이 또한 저의 업보입니다. 그 일로 상처를 받은 저는 두 번 다시 교회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오전 예배만 드리고 나옵니다. 괜히 교회와 엮이기 싫어서입니다.
또한, 제가 사용한 언어를 이해해야 할 책임이 상대에게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상대를 이해시켜야 할 책임이 저에게 있습니다. 이는 상대의 언어 수준, 지능, 이해력, 문해력 등을 총체적으로 배려해서 설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결코 난해하게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상대의 지적 수준을 파악한 뒤 그 수준에 맞춰 설명하여 상대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십니다.
저도 이러한 생각을 하지만, 실천이 잘 안 될 때가 많아 부끄럽습니다. 저는 은행 경비로 근무하고 있는데, 외국인이 은행에 와서 통장을 만들겠다고 하면 근처 다른 지점으로 안내해야 합니다. 우리말로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영어로 가는 방법을 설명해 줍니다. 다만 그조차 이해하지 못할 때는 속에서 짜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톤이 조금 격해질 때도 있습니다. 이는 제 속에 화가 많고, 저의 업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외국인들에게 미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즉, 언어는 잘 사용해야 합니다. 잘못 사용하면 혐오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용한 언어에 대해 상대를 이해시킬 책임은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늘 상기해야겠습니다.
P.S. 우리나라에도 외국인이 많이 들어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특히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인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사람을 보던 서양인들(미국, 유럽인들)의 시선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퇴근 버스를 타면서 외국인 옆자리에 앉으며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을 경원시했던 제 마음을 반성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