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기에는 아직 고통스러운 나의 과거
잠언 3장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교훈을 잊지 말라!”
이 말을 가만히 곱씹어보면 이미 경험하고 체득한 것들을 토대로 후대에게 삶의 길잡이가 되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네. 과거에는 그 교훈이 통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천천히 이루어졌었던 시기라 서서히 적응해 나가는 데 무리가 없었죠. 사람들의 사고관도 급격히 변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과거의 교훈이 통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너무 달라졌습니다. 기술이 너무나 급격히 발전한 것도 있지만 AI시대가 도래하고 말았습니다. 급격한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사고관마저 급격한 변화를 부르게 된 것이죠. 그래서 과거의 교훈이 통할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가 온 것입니다. 게다가 다원화된 시대에서는 사람들의 가치관마저 다양해지고 있으니 갈피를 잡기 어려워진 것이죠. 이른바 다양성의 시대가 온 것이죠.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과거의 교훈을 토대로 다양성을 가진 세대에 그 사고관이 잘못되었다고 지적을 할까요? 아니면 다양성을 존중해야 할까요? 사실 지금의 이 시대는 오히려 다양성을 존중해 주면서 과거의 교훈과 잘 조화시키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나 자신에게 어떠한 해코지를 하지 않는 경우 굳이 싸우려 할 필요는 없죠. 왜냐하면, 세상은 사람들과 모든 생명들이 어우러져 사는 곳이죠. 다양성이 극대화된 이 세계에서 굳이 시비를 건다? 조금 넌센스가 될 듯합니다.
제가 제일 가슴에 남는 구절은 잠언 3장 5절과 31절입니다.
3장 5절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3장 31절은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
왜 이 두 구절이 마음에 남느냐? 5절의 경우 저는 제 어쭙잖은 계획을 의지하여 서울에서 자취를 했습니다. 성공하겠다는 불명확하고 공허한 목표를 말이죠. 서울에 살면 성공이 주어질 것이라는 공허한 환상에 빠져 살았죠. 그리고 1년 동안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일했던 경험 하나만 가지고 서울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어쭙잖은 실력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환상에 빠져 살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 그 자체였습니다. 더군다나 저 자신도 당시에 이해하지 못했던 증상(ADHD)이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갖은 트러블에 가스라이팅에... 정말 괴로웠습니다. 직장도 그만두고 여러 알바를 전전하다 다시 본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31절의 경우 어떻게 받아들였느냐... 저는 어쭙잖은 성공을 갈망하여 서울에서 자취를 하다 ‘픽업아티스트’라는 것에 대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도 픽업아티스트라는 것에 대해 약간의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금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그렇습니다. 그러다 서울에서 남자답게 되는 교육을 한다고 하길래 호기심이 생겨 살펴보았습니다. 알파메일, 극강의 바이브, 아우라 등등... 그 커뮤니티의 글을 읽어보다 한번 교육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목소리 굵게 하고, 호흡, 발성, 생각하는 법 등등...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픽업아티스트도 한번 만나보았습니다만, 글쎄요... 그런 사람들과 교분을 해도 되는지 의심을 하게 만들 정도로 제 속에서 강렬한 거부감이 올라온 것 같네요... 또한 교회사람들과 사귀려고 해도 잘 사귀어지지 않는 것이... 저들에게 있어서 ADHD를 가진 저는 그저 이물감일 뿐이었나 봅니다. 정말 고통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제 부끄러운 과거를 끄집어내기 고통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