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세스단, 윤석열 체포, 1월 19일 서부지법폭동
윤석열이 탄핵되고 우리는 신속한 재판으로 파면되고 단죄되는 줄 순진하게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착각을 비웃기라도 하는지... 헌법재판관은 임명되지 않았지요. 그렇게 시간을 질질 끌다가 한덕수 당시 권한대행은 탄핵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상목이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되었습니다. 헌정사상 유례없는 일이죠. 한덕수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했고, 최상목은 여야 합의가 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마은혁을 빼고, 나머지 2명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했습니다.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 벌어진 제주항공참사... 그 사건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저는 그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저도 큰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추모식이 있는 날에 당연히 추모를 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지요.
이듬해인 2025년 올해... 저는 큰별쌤인 최태성 선생님의 역사강의를 듣고 딱 제 가슴속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큰 원칙은 바로 국민의 손으로 지도자를 세울 수 있어야 하고, 지도자가 잘못할 경우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 강의가 있던 날... 윤석열 체포가 불발되었습니다. 경호처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당연히 국민들은 뒤집어졌고, 국회는 공수처장을 질타하기 시작했습니다. 1월 4일부터 키세스단이 집회를 이어갔습니다. 그러고 그다음 주 주말, 11일부터 12일에는 극우세력들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제가 민주진영세력과 함께 윤석열 탄핵 및 체포 촉구를 위한 밤샘농성집회에 참여했습니다. 같이 집회에 참여했던 어느 아주머니는 저를 보고는 완전 홈리스가 다 됐다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에 윤석열 체포를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정의가 세워지나 싶었습니다.
저는 1월 18일 토요일에 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오리엔테이션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최 측에 양해를 구한 뒤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행진까지 한 뒤에 다시 오티장소로 되돌아와 원우님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숙소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였습니다. 새벽 5시 정도에 깨서 유튜브를 보았는데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네. 모두가 아시다시피 1월 19일에 서울서부지법 폭동이 벌어진 겁니다. 저는 보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이 듭니다. 오티행사 마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지하철을 타고 바로 서부지법으로 달려갔습니다. 경찰차벽으로 둘러쌌는지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내부도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주변에는 극우시위대들이 온갖 쌍욕을 하며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배회하다가 저는 경찰차벽 틈새로 깨진 법원 창문을 보았습니다.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지금도 큰 유감으로 남습니다만, 제가 눈에 담은 그 장면은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틈새로 본 그 처참한 모습은 저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더 이상 그 처참한 광경을 목도할 수 없었던 저는 도망치듯 그 현장을 빠져나와 김포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기다린 뒤 비행기를 타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