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적으로 의식주 해결이 쉬운 곳에서 마을이 발달한다. 이것이 인간의 생존을 결정하는 요소로 비옥한 토양과 안전한 은신처를 마련에 최적의 장소라면 으레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런 축복의 땅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할 만큼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을 보면 그렇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극복하며 삶을 이어갔을까.
분명 그들에겐 혹독한 환경을 이겨냈던 놀라운 이야기가 없을 수가 없다. 영웅담 못지않게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주는 아주 특별하고 가슴 찡한 이야기가 있을 게 분명하다.
대표적으로 제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제주는 화산섬 특성상 비를 가두지 못하고 금세 물이 빠져나가기 때문에서 벼농사가 불가능하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벼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제주도의 땅 1%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제주도 사람들이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해결책이라고는 육지에서 쌀을 가져오는 것인데 어찌 그 일이 쉬웠겠는가. 돛단배로 실어 나르는 일도 힘들었겠지만 육지 사람들도 춘궁기에 먹지 못해 죽어나가는 판이니 제주도까지 가져갈 쌀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니 제주도 사람들이 항상 배를 곯아야 했고 주린 배를 틀어 쥐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런 그들에게 메밀은 아주 소중한 작물이 아닐 수 없었다. 메밀은 몽골인들이 전해주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몽골인들이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왕래를 하면서 메밀 씨앗을 가져왔던 것이다. 굶주리는 제주도 사람들을 살리기위해서가 아니라, 제주도 사람들의 기를 눌러 지배를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원나라가 메밀을 전해준 배경이 꼭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절대로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동의보감>에도 메밀에 대한 기록이 있는 데, 찬 성질이 있어서 많이 먹게 된다면 사람의 기를 빠져나가서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음흉한 몽골인들의 속내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오리지널 제주 빙떡과 다양한 채소로 구성된 새로운 빙떡
완성된 빙떡
요즘 현대인들의 기회에 맞게 만들어봤어요. 색감이 식욕을 돋구지요!
원나라의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긴 하지만 메밀 자체는 제주도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식량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수확한 메밀을 이용하여 국수를 만들어 꿩고기 육수에 말아먹었는데, 감칠맛이 혀에 착착 감길정도 맛이 좋다.
특히나 메밀은 장소를 탓하지 않고 어느 곳에서든지 잘 자라고 거름기가 없어도 자라기 때문에 특별히 관리할 필요도 없고 3달 정도 자라면 수확할 수 있다. 게다가 제주도 기후 덕분에 일 년에 두 번을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이처럼 좋은 작물은 없을 성싶다.
제주도 사람들은 쌀밥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메밀을 아주 많이 먹었다. 메밀범벅, 메밀수제비 심지어 국을. 끓일 때도 메밀가루를 넣어 조리한다. 육지에서 된장국에 콩가루를 넣어 간장으로 빠진 단백질을 보충하고자 지혜를 발쉬한 것처럼 제주도사람들도 그런 것 같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메밀은 찬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많이 먹게 된다면 도리어 해가 될 수 있다. 찬 기운을 중화시킬 조리법이 있어야 할 텐데, 다행스럽게도 제주도 사람들은 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빙떡만 보아도 그렇다.
빙떡은 메밀가루를 묽게 물에 타서 팬에 얇게 펴 발라 전을 부친 후, 채 썬 무를 소금에 절여 물기를 꼭 찐 후 파마늘을 넣어 살짝 볶아서 만든 무나물을 부쳐 낸 전에 둘둘 말아 만든 음식이다. 간이 세지 않고 심심하기 때문에 옥돔구이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직접 만들어 먹어보니 아주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느껴졌다. 포만감도 느껴지면서 아주 속이 편한 음식이었다.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젊은 친구들에겐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건강에 아주 유익한 음식이다. 다이어트에도 좋고 당뇨에도 좋을 성싶다.
젊은이들의 취향을 고려해서 다양한 야채를 소를 이용하여 빙떡을 만들어봤다. 채소 각각의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어서 좋고 컬러풀한 색이 식욕을 자극해서 애피타이저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 취향을 고려해서 더 새콤달콤한 간장드레싱을 곁들인다면 젊은이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야채를 싫어하는 청소년들도 찾게 되는 음식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에도 제주도 빙떡과 아주 비슷한 요리가 있다. 바로 크레페이다. 크레페 역시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이 너무 척박해서 밀이 자리지 않았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다행스럽게도 십자군이 중국산에서 메밀을 가져와서 농사를 짓게 되었고, 덕분에 그들은 배고픔을 이겨냈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메밀가루에 소금과 물을 넣어 죽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소녀가 죽을 달궈진 돌 위에 뚝하고 떨어뜨리고 말았는데, 아주 고소한 갈레트가 구워졌다. 실수로 때문에 훌륭한 음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실수 때문에 곤란한 일을 당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훌륭한 발명과 발견에는 실수로 이뤄졌던 것들이 아주 많다. 나일론을 비롯해 우리가 잘 쓰고 있는 포스트잇가 모두 실수가 낳은 발명품들이다.
그러니 실수를 하여 자책을 소낙비 주루주룩 내리는 것처럼 하고 있다면. 이젠 그만 장마를 시원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장마는 오는 걸 막을 수도 없지만 시간이 가면 그치게 마련이다. 다만 장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꼭 챙기는 태도는 필요하다. 그러니 재차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를 살핀다면 이미 발전의 첫걸음은 뗀 셈이다.
그렇게 크레페가 생겨난 크레페는 17세기 안느 왕비가 너무 좋아해서 궁중 디저트로 채택되기까지 한다. 세월이 가면서 크레페의 변주곡이 시작됐다. 메밀가루가대신에 밀가루를 사용하게 됐고 우유, 달걀, 설탕, 럼주, 꿀까지 넣어 반죽을 만들고 팬에 맛깔스럽게 구운 갈레트 아주 다양한 토핑을 얹어 변신의 마술사가 되었다.
여기에 베샤멜소스, 크렘 드 마롱, 레몬소스, 캐러멜 소스 등등을 발라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 기가 막힌 디저트로 자리를 잡았고, 프랑스 거리엔 크레페를 파는 곳이 많다.
크레페는 따뜻한 음식으로 차가운 음식으로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론 멋진 그릇으로 때론 걸쭉한 소스나 마멀레이디를 덮는 뚜껑으로 사용한다. 그릇까지 먹을 수 있는 요리이니 환경에도 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크레페를 재미있는 놀이로 삼을 수 있기도 하다. 샹들뢰르에는 크레페를 이용해서 점을 치는데, 크레페를 잘 던져 뒤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꽤나 흥미로운 얘기다. 나폴레옹 1세 역시 도전했는데 그만 크레페를 제대로 뒤집지 못해서 모스크바 원정을 패배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여행과 음식을 시식하는 재미를 더해주는 양념같은 이야기이기에 충분하다.
이와 같은 배경을 알고 음식을 먹게 되면 뭔가 특별함이 있는 것 같고, 잔 재미가 있어서 음식도 한층 더 맛있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프랑스엔 성촉절이 있다. 2월 2일인데 일명 크레페 먹는 날이기도 하다. 성촉절에 크레페를 먹으면 행복이 온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프랑스인들은 크레페를 대단히 사랑한다.
이토록 사랑받게 된 음식이 만들어졌던 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굶주림때문이었다. 인간에게 가해진 혹독한 고통, 배고픔이 마침내 인간의 의지와 지혜로 극복됐으니 얼마나 경이로운가. 결국 위대한 일은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결핍을 극복하려는 강인한 정신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읽어본다.!